주말이 지나간 후 단상

in #kr3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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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난 아침, 일어나니 어머니가 쪽파를 다듬고 계셨다.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한채로 식탁에 앉아 예쁘게 쌓여있는 쪽파들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파에 묻은 흙을 터는 일에 슬그머니 합세했다. 파김치를 담글거라고 어제 얘기하셨던 것 같긴 한데 이렇게 아침부터 하실줄은 몰랐다. 근데... 시계를 보니 11시였다. 새벽 내내 미미한 복통에 시달리다가 선잠에 들었던 나는 11시를 아침이라고 착각한 것이였다. 부랴부랴 파 머리를 까는 나를 보며 어머니는 잠이나 깨고 도우라며 구박을 주신다. 시원한 커피나 사와서 마셔. (집에는 드립퍼밖에 없으므로) 나를 밖으로 쫓아냈다. 주섬주섬 마스크로 얼굴을 덮고 아파트 동을 걸어 나오는데, 머리위로 쏟아지는 햇볕에 골이 울렸다.

  2. 일,이주일에 한 번 부모님과 짧게라도 시간을 함께 보낸다. 그들의 말을 듣고, 그간 매일을 잘 보낸 이야기를 나눔으로서 일말의 걱정을 줄여드리려 노력하는 것이다. 해보니 괜찮더라, 라는 배짱이 태도는 귀국 후에 가지게 된 마음가짐인데... 부모님은 그런 날 늘 걱정한다. 청년들의 현실, 이상의 괴리 그리고 그에 속하는 내가 안쓰러워 보이는가보다. 별것 아닌것들에 시달리며 늘 한계에 부딪혀 넘어지긴 하지만 그럼에도 난 “해보니 괜찮더라” 라고 말하면서 버티며 산다. 요새 내가 외는 주문이다. 괜찮을거야, 괜찮을거야. 그렇게 애쓰는 나를 품어주는 것이 또 부모님의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듯.

  3. 파를 모두 다듬고 방에 들어와 루도비코의 ‘seven days walking’을 틀었다. 밤새 뒤집어지는 장을 달래려 들었던 음악이었다. 그의 피아노 연주와 페데리코의 바이올린과 비올라, 레디 하사의 첼로 트리오가 꽉 찬 이 앨범은 ‘컨템포러리 클래식 음악’ 장르에 속한다. 가끔 틀곤하는 클래식 라디오에서 듣는 곡들은 몇 세기 전에 쓰여진 것들이 대부분이라 그런지 마냥 어렵기만 했는데, 최근에 컨템포러리라 하는 장르로 발매되는 음악은 진행이 어느정도 들리기 때문에 더 선호하게 되는 것 같다.

  4. 이 앨범에서 가장 즐겨듣는 곡은 ‘view from the other side’ 이다. 전에도 글을 썼듯이, 크로매틱으로 떨어지는 진행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크로매틱 진행 또는 2-5-1 같은 편한 진행은 어떤 곡에서든 들리면 마음이 편해지는데, 처음 듣는 곡이라도 익숙한 부분이 들리면 곡과 친밀감이 느껴진다. 나의 한결같은 취향, 그리고 그 취향을 저격하는 내 뮤지션. (전에는 ‘내 ㅇㅇ’ 같은 어구를 멀리했는데, 처음 써봄) 세계관과 연주가 너무나 내 취향인 ‘내 뮤지션’으로 꼽는 대표적인 인물로는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라스 다니엘슨, 티그란, 방상 페라니 정도다. 그들 덕분에 배에서 끓어오르는 고통이 조금은 완화된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2021.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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