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light] 상실에서 시작되는 성장담

in #kr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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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여덟 소녀는 가족을 떠나 도망치듯 이모의 펜션이 있는 섬마을로 온다. 채현선의 소설 <207마일>은 열여덟 소녀가 이모의 펜션에서 머물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린 성장담이다. 펜션 207마일과 펜션이 있는 외딴 섬마을의 풍경들이 마치 소녀처럼 여리고 섬세하게 묘사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한동안, 소녀가 보고 걸었던 곳의 풍경들이 눈앞에 불쑥 불쑥 떠올랐다. 쇠락이 예정된 쓸쓸한 섬마을의 거리, 창밖으로 보이는 눈 오는 풍경, 오래된 타자기 앞에 앉은 소녀의 뒷모습. 아마도 소녀는 많은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후에도,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상실감을 매만졌던 그 풍경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소녀의 눈을 통해 그 곳을 보았던 내 마음에도 그 풍경들이 어느새 각인되었다.

 소녀는 날마다 예전에 죽은 동생 미조를 본다. 자신에게만 보이는 동생의 존재는 소녀에게 분명 그리움이기도 하지만 아픔이며 짐이기도 하다. 소녀는 죽은 동생을 보듬는다. 동생이, 자기가 죽었다는 사실에 의기소침해지지 않도록 마음을 쓴다. 죽은 동생과 더불어 살아가는 소녀를 보면서, 우리도 누군가를, 늘 어깨 위에, 가슴 속에 올려놓고 지내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올려놓고 지내는 대상은, 그리움의 대상일수도, 내 마음을 한없이 무겁게 만들어 떨쳐내고 싶은 대상일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우린 늘 어떤 존재와 함께 밥을 먹고, 씨름하며, 길을 걷는다. 어쩌면 성장은, 그런 존재를 견디는 걸 넘어, 찬찬히 매만지는 것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 싶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난롯가에서 나직이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들었는데, 후반 어느 지점에 숨어있던 반전이 드러나면서, 찬바람이 얼굴에 닿은 듯 정신이 번쩍 깼다. 여운이 긴 소설이었다.

*인상 깊었던 책 속 한 구절-

“엄마는 언젠가 '삶은 곧, 팥'이라고 했다.
썰렁한 농담이라며 짜증을 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틀린 말이 아니다. 엄마에게 삶은 곧 팥이다. 팥이 뭉근하게 물러지는 동안 그 앞을 지키고 저으며 함께 뭉근해졌을지 모른다. 팥 알갱이들이 불을 견디듯, 엄마도 뜨거운 알갱이의 시간을 견뎌내며 여러 지점들을 지나왔겠지. (...) 그래서 끝내 엄마에게 삶은 곧 팥일 것이다. 팥으로 살다 팥으로 죽는 일, 그것은 뭉근하게 물러지지만 오히려 단단해지는 어떤 생물로 자기 자리를 견디는 일이다.”

-소설 <207마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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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곳에서 찾을 수 있는 흔적이라고는 보팅이 전부군요. 오랜만에 기별 남깁니다. 잘 지내고 계신가요?

반가워요. 우유에퐁당님^^ 이웃들과 글로 즐겁게 교류했던 옛 기억을 잊지못해 가끔 들릅니다.
아이는 많이 컸겠네요~ 한창 엄마 아빠를 즐겁게 해줄 시기지요?ㅎ 이 시기 건강하게 나시길 바랍니다!

뭉글하게 물러지지만 오히려 단단해지는...

삶이란 점점 뭉글하게 물러지지만 오히려 단단해지는 그런 것일까요...

네 삶이란 딱 그런 거 같아요~~^^
기가 막힌 표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메가님의 삶도 뭉글하게 물러지지만 오히려 단단해지고 있겠지요?ㅎ

그러게요... 단단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뭉글어지는 그 과정이 사실은 단단해지는 과정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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