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essay] 고전읽기의 괴로움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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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문학이 어떻게 여타의 책보다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그것은 고전이 사람을 괴롭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물론 삶의 정수가 들어있고, 오랜 시간동안 사람들에게 검증된 사상과 간접 체험을 전하기 때문이라는 일반적인 견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고전을 읽을 때는 몸이 배배 꼬이기 일쑤고, 책장을 펴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오는 잠마의 위협을 겪는다. 한 구절 혹은 한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서 정신의 수많은 활동을 거쳐야 한다. 이 때문에 고전을 읽는 것은 괴로움을 자처하는 일일 수 있다. 고전이 오래도록, 어쩌면 평생토록 한 개인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것의 비밀이 여기에 있을 수 있다. 고통을 감내하면서 얻은 경험과 지식은, 쉽게 얻은 것보다 더욱 내면에 깊이 각인된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책'으로 손에 꼽고 있는 대부분의 책들이 고전이라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고전을 읽는 것은, 정신에 깊은 흔적을 내는 과정이며, 그것은 고통이 따른다. 내 미력한 경험을 통해서도 난, 쉽게 읽고 느낀 감동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다. 오래가는 향기는 고통 속에 피워낸 향기이며, 자랑스레 드러낼 수 있는 상처는 적극적으로 싸운 선한 싸움에서 얻은 흉터일 것이다.

 독서는 고귀한 '노동'이라는 말이 있다. 여기에 덧붙여 고전을 읽는 것은, 고귀한 '고통'이라는 말을 맘대로 덧붙여본다.

월든

 대학 1학년 때 몇 달을 끙끙대며 기숙사 침대 위에서, 도서관에서 읽었던 책이 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19세기에 살았던 한 선각자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물론 그 당시 사람들은, 자신의 북소리를 찾아 그대로 행동했던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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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든」은 특별한 지성을 소유한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사회 속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월든 호숫가에서 원시적인 삶을 살면서, 문명에 대해, 자연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한 것들을 기록한 책이다.

 그 책을 읽는 것이 그토록 힘들었던 것은, 어렵거나 난해해서가 아니다. 한 구절 한 구절이 내게 생각할 거리를 주었기 때문이다. 백 미터도 안 되는 중심가 거리를 지날 때, 지나가는 사람을 잡아끄는 호객꾼이 2미터마다 한 명씩 있다면, 그 길이 아무리 짧아도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시간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짧은 거리였지만 누구도 그 길을 평탄했노라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월든」을 다 읽고 나서 난 자문해 보았다. 누구나가 사회로부터, 가까운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한다. 난 이 모든 인정과 기대를 물리치고 내게 들리는 북소리를 따라 살아갈 수 있을까. 만약 그것이 내 북소리라면 소로우처럼 그 정신이 원하는 길을 따라 월든 호숫가에라도 집을 지어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을 한낱 장신구쯤으로 여길 수 있을까.

 다른 이와 구별된 '나만의 북소리'를 따라 걸어가고자 하는 마음은 간절하지만, 그 바램을 이룰만한 용기가 내 안에 없음을 난 발견하게 된다. 어떤 위대한 일을 시도한다거나, 다른 이들이 쫓는 똑같은 모양의 행복을 포기하는 것은 고사하고, 나를 향한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인정을 바라지 않는 그 일조차도 아직 연약한 내 정신은 해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난 이따금씩 그 책이 주었던 정신적 괴로움과 충격을 생각한다. 내 삶이 치열함을 잃어버리고, 그저 시간과 공간과 다수의 사람들이 흐르는 방향으로 휩쓸려가는 시간에, 난 소로우를 생각하고, 월든 호숫가를 생각한다.

 고전 읽기의 괴로움이 주는 삶의 향기를 느끼고 싶은 이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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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우리는 성공하려고 그처럼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그처럼 무모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두라. 그 북소리의 음률이 어떻든, 또 그 소리가 얼마나 먼 곳에서 들리든 말이다. 그가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그가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단 말인가."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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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고전 무협지인 구운몽을 추천합니다 ㅋㅋ

그,, 옛 시대 활극이자 판타지가 가미된 바로 그 책 말이죠?ㅎㅎ

무협지의 정석이죠ㅋㅋㅋ 주인공 킹왕짱ㅎㅎ

주인공이 엘프들과 염문을 뿌리다가 현실로 돌아온.. 진정한 판타지 스타죠, 킹왕짱ㅋㅋ

글을 정말 잘쓰시네요ㅎㅎ
많이 와서 읽고 갈게요!! 팔로우하고 갑니다ㅎㅎ

감사합니다ㅎ 자주 뵈었으면 합니다^^

한권을 여러번 읽는경우도 많은것 같습니다. 특히 노자,장자는 10번 넘게 읽었는데 읽을때마다 새롭게 읽혀지더라구요...
그리고 각각의 저자들이 보는 다른 관점의 노자,장자 주해본도 꽤나 달라서 읽는재미가 있다보니 끝이 없네요ㅋㅋㅋ

노자, 장자를 그렇게 많이 읽으셨다니 대단하시네요! 득도하신 거 아닌가요?^^ 많은 책을 보는 것도 좋지만, 고추참치님처럼 같은 책을 재독하는 것도 좋은 독서 방법인 것 같습니다. 특히 고전은요! 그런 내공이 있으시니 법을 그렇게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시는 것 같네요ㅎ

책을 즐겨 읽지 않지만 그러기에 @kyslmate님을 팔로우 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ㅎ 제이탑님의 독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네요.

참 짜임새있는 소개였습니다!

오후님, 감사합니다. ^^ 오후..어감이 참 좋습니다.

고전을 읽는 이유는, 잘난척과 자랑을 할 수 있어서죠. ㅎㅎ 유명한 고전들 막상 읽은 사람 찾기가 힘듭니다. 읽은 뒤의 감명과 뿌듯함도 상당하겠지만 지적허세에 대한 욕망을 이길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제 자신이 그랬거든요^^;; 가끔은 책읽기도 남에게 뒤쳐지기 싫어했던 어린날을 생각해봅니다.

네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이탈리아의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이탈로 칼비노는, "고전은 너무도 유명하지만 아무도 안 읽은 책이다." 라고 쓰기도 했지요.
지적허세나 자랑을 위해 읽기 시작해도, 읽고 나면 그런 마음이 조금은 달라져 있을 수 있는 책이 바로 고전인 거 같아요. 진솔한 생각 들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kyslmate 님은 글을 참 잘쓰세요. 멋있어요. <월든>은 읽어야지 하다 못읽었는데 한국가면 다시 도전해봐야겠습니다.

칭찬 감사해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월든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책이었어요ㅎ 담에 봄마당님 감상평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고전은 인테리어용...아니었나요..??ㅋㅋㅋㅋ

교양과목으로 들었던 미문학 시간에 배운 작품을 여기서 보니 참 반갑네요ㅋㅋㅋ 물론 읽지는 않았습니다만..

인테리어 및 목침으로도 사용되지요ㅋㅋ
교양과목으로 배우셨군요~~ 그렇게 접한 작품엔 거부감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 책이 그렇다니 안타깝네요ㅋ

고전과 철학은 읽기가 참 힘들어요.
칸트의 3대비판서를 완독하는데, 세 달이 넘게 걸렸답니다 ^^;
오랜만에 고전 한 권 읽어봐야겠네요.

와우~ 그 책은 완독만으로도 대단합니다. 전 순수이성비판으로 시작하려다가 침몰하고 말았습니다ㅎ;;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명필 "투명드래곤"을 추천합니다 ㅋ!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인가요?ㅎ 마법계의 고전같은데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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