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생님이랑 결혼했다 _ 9. 당신을 만나지 않는 시간 동안(6)

in #kr6 years ago

나는 선생님이랑 결혼했다 @kimssu

_


그러고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가자."

하고는
관리실 불을 꺼버렸다.

깜짝 놀라서 선생님을 올려다 봤다.
"어딜요?"

"나와."


9.
당신을 만나지 않는 시간 동안(6)

단호한 과학선생님의 표정에
몸을 일으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과학선생님 뒤를 따라
기숙사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갔다.
'그냥 방에 들어가서 쉬란 말인가...'

수능이 끝난 뒤
고3 선배들은 학교에 없었고
1, 2학년은 모두
야자 중이었다.
교무실에는
야자 감독 선생님과
몇몇 선생님께서 더 계셨다.

복도에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었고
기숙사도 조용했다.
고요한 학교에
불 꺼진 계단 위로
아무도 모르게
과학선생님이랑
내가
조용히
올라갔다.

기숙사 2층,
3층을 지나서
4층까지 올라섰다.
4층은 여자 기숙사였다.
그런데
과학선생님은
여자 기숙사 들어가는 문을 지나서
옥상으로 나가는
계단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잠깐 멈춰섰다.
'옥상에 왜? 뭐하려고?'

과학선생님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잠겨있는 문을 열었다.
그리고 멈춰있는
나에게 올라오라고 손짓했다.
영문을 모르겠지만
일단은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선생님이 문을 열어줘서
옥상으로 나가자
차가운 바람이
눈물에 젖은 얼굴을 스쳤다.
"아 추워."

과학선생님은
옥상 문을 닫고
잠궜다.
그리고
면티에 조끼 하나만 걸치고 있던 사람이
조끼를 벗어
내 어깨 위에
걸쳐 주었다.
나는
그런 선생님이 더 추워보여서
그냥 선생님 입으시라고 돌려 줬는데
안 입는다며
다시 내 어깨에 올렸다.

"별 좀 볼 줄 아나?"

내가
도리도리로
대답을 대신했다.

"저게 오리온 자리.
보이나?"

과학선생님이
반짝이는 별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나는
별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추워서 벌벌떠는
선생님이 더 걱정이었다.
그리고
별을 보고 서 있는
선생님 옆 모습의
목선만 보고 있었다.

"오리온은 아나?
무튼, 그런게 있어.
겨울에만 보이는 별자리.
제일 찾기 쉬워."
과학선생님은
한결
더 선생님 같지 않았다.
오랜만에 전화 온
고향 친구에게 이야기 하듯이
나에게
사투리를
자연스럽게 구사했다.

"우와..."
그제서야
선생님에게서 시선을 떼고
별을 올려다 봤다.
학교 주변이 워낙 어두워서
까만 밤 하늘에는
쏟아져 내릴 듯한
많은 별들이
총총이고 있었다.

분위기도 좋고
다 좋은데
문제는 너무
너무 추웠다.
선생님이 따뜻하라고
조끼도 벗어줬지만
나도
온 몸이 덜덜 떨렸다.
과학선생님은
안 그런 척했지만 오돌오돌 떨면서
말을 이었다.
"저 별 다 셀 수 있겠나?
반대가 저 별보다 많진 않잖아?
할 수 있지?"

그거 이야기 하려고
여기 데리고 온건가 싶었다.
이 추운데
별 보여주면서
위로 해주려고.
"...(추우니까)빨리 할 수 있다고 해야겠다."

"다 세라 그런다?!"

"칫."
억지를 쓰는 듯한
과학선생님의
말투가 귀여웠다.
날 놀리는 듯
날 달래려고
신경써주는 것 같아서
고마웠다.

그리고
과학선생님이랑
나랑
눈이 마주쳤다.

내가 피식 웃었다.

"가시나, 울다가 웃다가 진짜.
자 이리와봐라."

선생님이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순간
푹-
하고
선생님이
나를 안았다.

'나 지금 안긴거야?...
추워서 무슨 느낌인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그래도 정말...멋지다...'
과학선생님 목선이
내 머리에 닿았다.
편안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나는
선생님
허리 쯤에 손을 올렸다.
"고마워요."
선생님 가슴팍 쯤에
얼굴이 묻혀서
말하기도 불편했지만
어쨌든
들릴까 말까 할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게 안은건지
어쩐건지
모르겠는 이유는 또 있었다.
선생님은
본인이 조끼를 벗어
내 어깨 위에 올려 두었고
그래서
나를 안았다기 보다
본인의 조끼에
손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이게 뭐야.
그래도 안아주긴 안아 준건데..
안고 있으니까
따뜻한 느낌이
있긴하다...
볼에
뽀뽀...
해도 되려나.
할까,
말까.
하면 안되겠지...?
볼에 입이 닿을 것 같긴한데..
까치발을 들어야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실수 할 것 같은데.
하면 안되겠지...?

학생이고...
이제 학생회장인데...
하면 안되겠지...
큰일 나겠지...'

나는 안긴 채로
심장을 쿵쿵거리며
생각에 잠겨있었고
선생님이
토닥토닥 2번이나 했줬나
내 고민이 끝나기도 전에
팔을 먼저 풀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과학선생님이
또 하늘을 올려다 보며
말을 던졌다.
"힘내라고 별도 보여주고. 어?
감기걸리면 니가 책임져라!
북두칠성은 어딨지?
내 눈이 이상한가. 안 보이노."

나는 추운지도 모르겠고
그냥
눈만 껌벅이고 있었다.
뽀뽀를
안 한 것이
내심
아쉬웠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선생님은 내 어깨 위에 얹힌
본인 조끼의
멱살 양쪽을
자기 앞으로 살짝 당기면서
내 눈을 보고 말했다.
"내일부터 힘내서 하고."

나는 미소짓는 과학선생님과
눈을 마췄다가
부끄러운 듯 시선을 내리깔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잠긴 문을 열고
계단 쪽으로 들어왔다.
그제야
과학선생님은 내가 내미는
조끼를 받아 입고
관리실로 다시 내려왔다.

과학선생님은
관리실에 들어온 뒤
내 눈을 쳐다보지 않았다.
"내년 부터는
선거를 봄이나 가을에 해야겠다.
왜이리 춥노.
찬반투표도 안 해야지."

나는
과학선생님이랑
내 사이가
진전 된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좋았다.
처졌던 기분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이 기분 좋음을
숨기고 싶었다.
그래서 틱틱거렸다.
"나 다하고 나서."

"이럴 줄 몰랐거든."
내 말을 받아치며
선생님 눈길이 나에게 돌아왔다.
선생님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내 표정을 관찰하는
선생님의
그윽한 눈빛이 느껴졌다.

"좋아한다, 좋아한다."

"쳇."
내가 배시시 웃었다.

"괜히 임자 있는 사람 잡지 말고.
그래 좀 웃어라."

과학선생님 말에
진정되었던
심장이 더 뛰었다.
'내가 임자 있는 사람을 잡았다는거야, 뭐야.
내가 잡으면 잡히긴 하고?
내가 흔들었다는거야? 나한테
흔들린다는걸까.
아님
자기 임자 있다고 미리 말해주는건가.'

"바로 웃으면 이상하잖아요."

"뭐가.
왜 그냥 웃으면 되지."

과학선생님 덕분에
기운을 좀 내서
학생회 활동에 대해서
궁금한 것도 여쭤보고
그렇게
과학선생님 옆에 붙어
귀찮게 굴다가
뭐라도 해야 겠다 싶어서
다시
야자 중인 교실로 들어갔다.

겨울 방학에도
나는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고3을 앞둔 고2의
겨울 방학은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물론 남자 사감선생님인
과학선생님도 기숙사에 남았다.
그리고
중요한 시기인 만큼
과학선생님은
나에게 제안한 것이 있었다.
"하루동안 공부한 거
나한테 가져오면 내가 확인해줄게."

처음에는 과학선생님에게
뭘 검사받아야 할지 모르겠어서
망설이다가
선생님이랑 시간도 안 맞아서
공부 시켜준다고 하는
과학선생님에게 툴툴거렸다.
저녁먹고
선생님을 찾아갔다.
"지금이 바쁠 타임인데."
"봐요. 바쁘잖아요."
"점오 끝나고 하면 되지."
"못 내려 오잖아요."
"내가 부를게."

처음에는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다.
긴가민가
터무니없는 이야기 같았다.
점오가 끝나면
돌아다니지 못하게 되어있는데
과학선생님이
자기가 얘기해서

내려올 수 있게 한다는 게
믿음이 안 갔다.

하지만 과학선생님이
제안한대로
일주일 뒤부터
점오가 끝난 시간에
관리실로 내려가
하루동안 공부한 내용을 확인받고
외운 영어단어를 불러주면
대답하는 형식의
복습을 할 수 있었다.

야자가 끝나면 올라가서
씻고
옷 갈아입고
관리실에 내려와서
1시간 정도
과학선생님 옆에
붙어 있을 수 있었다.

점오가 끝나면
관리실에
내려가는
나에게
친구들이 의아해 하며
꼬치꼬치 캐물었다.
"너 또 내려가지?"
"내려가서 뭐해?"
"시간도 정해져 있어?"

처음에는
내가 잘못하고 있나
신경쓰이기도 했지만
과학선생님이
공부 열심히하고 싶어하는 나를
도와주는 것 뿐
다른 건 없어서
'내가 부러워서 그러는 거 겠지?'
생각하며 넘겼다.
기껏해야 2주 정도되는 시간이었고
하루, 이틀 안하는 날도 있었다.

처음 제안 한 날.
과학선생님은
장난으로
"하루에 공부한 거 확인하는데
대답 못 하면 맞고,
모르면 맞고.
알겠지?"
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한 번도 그렇게 안하다가
마지막 날에 뜬금없이
"처음 계획, 때리는거 대로 해볼까?"
라고 말하면서
갑자기 과학선생님은
내가 대답 하지 못하는 것마다
하나씩 세기 시작했다.
질문 세례가 끝나고
자를 집어들더니
의자에서 일어서서
소파에 앉아 있는 내
옆으로 바짝 앉았다.
그리고 나를보고 씨익 웃어보이고는
자를 세워 잡았다.

'아놔 설마 저러고 손바닥 때린다고?'

"몇 대?"
"몰라요."
"그럼 알 때까지."
"뭐야."
"알 때까지. 모른다며."
"샘이 세셨잖아요."
"몰라."
말이 오가는 도중
과학선생님이
내 손을
잡았다
뗐다
반복했다.

선생님도 웃다가
약간 얼굴이 빨개졌다.
다시 펼쳐진 내 손을 잡고
들어올리며
과학선생님이 말했다.
"스무 대."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서 선생님을 쳐다봤다.
"스무 대? 진짜?"

그리고 선생님은
자를 확 들었다
손바닥에 내렸는데
손바닥에 닿기 전에 멈췄다.

'또 장난쳐. 내가 그럴 줄 알았지.'
생각하며
나는 쫄지 않았다.
장난친다며
때릴까 말까
때릴까 말까
하는 순간에도
과학선생님은 내 손을 잡고 있었다.
내 손도
선생님 손도
따뜻했다.

과학선생님은
세워진 자를 다시 돌려
손바닥을 딱- 한 번
살짝 쳤다.
"그냥 한 대."
그제서야 손을 놓고
나랑 눈이 마주친 선생님은
귀엽게 웃었다.

다음 날
기숙사에서 나가는 날이라
과학선생님 얼굴을 보고
집에 가려고
관리실에 갔다.
그래도 2주 정도
날 공부 시키기 위해
고생해준 과학선생님에게
감사했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혹시나
나에게 했던대로
다른 후배에게도 해줄 것 같아서
내가 미리 선수 쳤다.

"저 말곤 안돼요!
아무도 해주지 마요."

"왜 니 했으니까 이제...누구 하지?
니는 이제 니가 알아서 해야지."

나는 날 놀리는 듯한
그 말을 흘려듣지 말았어야 했다.

안 그래도 걸리는 부분들이 많았다.
겨울 방학이라고
새로 들어 올 신입생도
기숙사에서 영어캠프를 했는데
과학 선생님은
이미 신입생들의 이름을 다 외우고 있었다.
영어캠프에 참가한 신입생들은
이름을 부르며 친근하게 다가가는
잘생긴 선생님이 좋은지
과학선생님은 인기가 많아
겨울 방학 동안
보통
점오가 끝나기 직전까지
관리실이 북적했다.

개학 후에도
영어캠프에 참여했던 신입생들은
관리실에
과학선생님을 만나러
자주
가는 것 같았다.

내가 고3이 된 이후
고3 교실은
관리실이 있는 건물과
떨어진 건물에 있었다.
과학선생님을 만나려면
일부러
관리실을 찾아가지 않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고2가 된 후배들 중
내가 고2 때처럼
관리실에 들어앉은
여학생들이 있었다.
나는
공부해야 할 고3이 되어
관리실에 가서
과학선생님과 희희낙락
이야기를 나누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후배들 보기에
부끄러울 일이었다.

게다가
과학선생님은
더이상
학생회 담당이 아니었고
도무지 만날 예전처럼
만날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찾아 갈 핑계와
명분이 없었다.

과학선생님은
이제
나보다
다른 후배들에게
더 친절하고
더 각별하게
대했다.

과학선생님 옆에
나의 자리는
이미
저절로 내어져 있었다.

.

.

.

재돌샘이 아니라
나의 남편이 된
나의 선생님은
자신이 중학교로 간 후로
몰랐던
나의 고등학교 때 이야기들을 들으면
경악을 금치 못한다.

"아니 학교를
그렇게 다니면
공부는 언제 한거야?"

"공부도 틈틈이 했지."
나는 약간 민망한 미소를 띄며 대답했다.
과학선생님의 이야기도
좋아했었다 정도만 말했었지
구체적으로
있었던 일을 말해 준 적은 없었다.

오빠는 설에 남은 법주를
컵에 따랐다.
나는 오빠를 따라
맥주를 한 캔 땄다.

"아마 니가 나한테
오기 위한 과정이었을까?
꼭 선생님을
좋아하는 그런 시간들이
너에게 필요했을까?"

"난 옛날부터 아빠를 더 좋아해서
그랬지 않았을까?
남자 선생님이 잘해주면
아빠처럼
어렵지 않게 다가갔던 것 같기도 하고.."

오빠는 법주를 한 모금,
두 모금 마시더니
컵을 내려 놓고 입을 뗐다.

"어찌 됐건. 참 대단하다."

_내일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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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꾸준한 포스팅을 응원합니다.

우앗 ㅠㅠ이번에는 180~200명 사이에 들었나보네요 ㅠㅠ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술이 땡기는 이야기
@홍보해

ㅋㅋㅋ아오 와이프가 이런 내용의 글을 쓰면 아무리 옛날일이라고 해도. 저라도 술이 땡기겄어요 ㅋㅋ

하하하....덕분에 술을 왜 먹는지 방금 깨달았습니다....하하하

오호호호호
재돌샘이셨군요.. 우힝우힝~~
과학샘이랑 별자리 데이트?도 넘나 낭만적입니다..^^

ㅎㅎ데이트....였는지.....뭔지 모르겠습니답!!ㅎㅎ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ㅋㅋㅋㅋ 남편이 받아주니 다행이네요~
좋은 밤 되세요~

....그러게요. 다행인것같습니다.^^ 다행이네요 그러고보니까....ㅋㅋ

왜 제가 다 설레죠ㅋㅋㅋㅋ 키약!

흐힛...설레셨다니~~~~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기다리고 기다리던 킴쑤님!!
완전 설렘 폭발했어요~ㅎㅎ

설렘 폭발이라니~~ㅎㅎ 쪼끔~그렇긴하죠잉?!ㅋㅋ

@kimssu님 안녕하세요. 개수습 입니다. @zaedol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닷!

보팅하고 갑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고맙습니다~ 주말에는 푹 쉬세요~~~!!

으악 ㅋㅋㅋㅋ 오늘 왤케 설레요??ㅋㅋㅋㅋㅋ

설레셔서 기쁩니다 헤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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