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시의] 아제(나)에게 있어 문통과 김정은의 만남.

in #kr6 years ago

 

아제(나)에게 있어 문통과 김정은의 만남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사안의 중대함과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는 깊이 공감한다. 다만, 눈물을 흘리며 벅찬 감동을 느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 어느 쪽이냐 하면, '와, 살다 보니 이런 것도 보게 되는구나.'는 느낌이다. 그나마도 그 감정의 높낮이 차이는 별반 커다랗지는 않다. 좋아하던 작가 선생님들의 부고 소식이나, 린킨 파크 보컬 체스터의 자살이나, 위대한 지성 스티븐 호킹의 부고 소식보다는 충격이 덜 하다. 내가 어이없는 놈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비핵화'라는 성대한 마무리를 듣고서도 그랬다. 잘된 일이다- 웬일이래- 아마 그정도가 내 반응의 최고치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게 내가 감성이 메말라서는 아닌 것 같고, 남들이 너무 좋아하면 반감부터 가지고 돌아서는 힙스터여서도 아닌 것 같고, 끝내주는 머리로 차갑게 현황과 미래를 분석 가능한 천재이기 때문도 아닌 것 같다. 그럼 다들 감격하고 좋아하는 와중에 난 왜 이러고 있는걸까. 

교육의 탓일까나?

초등학교가 아니라 국민학교 를 다녔으니까, 그 탓도 있을 것이다. 매년 6월 25일에는 아아 잊으랴~하는 동요가 커다랗게 흐르고 있는 운동장을 두어 바퀴 돌면서 노래를 따라 부르고 교실로 들어가는 등교 이벤트가 있었고, 모형 댐으로 서울이 잠기는 모습을 보여주는 뉴스들을 보며 금강산 댐 사건을 겪었고, 북한 공군이 투항하겠다고 비행기 타고 날아오는 바람에 전쟁 나는 줄 알고, 라디오 앞에서 전전긍긍 하셨던 어머니의 모습이 깊게 남아 있기도 하다. 그 밖에도 웅변 대회(ㅋㅋㅋ)의 단골 소재, 반공 포스터, 반공 영화, 반공 만화와 애니메이션- 좀 오래된 어린이 대상 책이나 영어 사전등의 책 뒤에는 '우리의 각오'와 같은 항목이 적혀 있었고, 항상 반공이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중학교 2학년인가 하던 시절, 김 일성 사망 뉴스 보도에 학교에서 함성이 울리고, 거리가 떨리던 기억도 난다. 나도 좋아서 소리를 질렀던 것도 같다. 생각해보면, 그런 반공의 홍수 속에서 참 용케도 북한에 대해 무덤덤한 인간으로 자라났구나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이미 오래전에 북한 주민들이 무슨 죄냐? 정도의 생각은 품고 있었으니-  적어도 부정적으로 생각할 상대와 보듬어 주고 싶은 상대를 구분할 줄 아는 정도의 지성은 갖추고 있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아무튼 인생의 이른 시기부터 북한은 적이라기 보다는, 적과 동포가 특히 동포에게 불합리한 구조로 이루어진 국가라는 인식은 늘 갖고 있었다. 그러니까 국가 교육이 날 이렇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기 학습의 탓이려나?

북한 관련하여 자주 쓰는 개그 소제라고나 할까. '아오지 탄광행'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를테면 남한과 북한 대항 스포츠 경기가 있다면, 뉴스 댓글에 '지면 아오지 탄광행이다!! ㅋㅋㅋ' 이런 댓글은 지금까지도 흔하게 보인다. 

어느날, 그 놈의 '아오지 탄광'이 정말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고 싶었고, 검색을 해본 적이 있다.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탄광은 아오지만 있는 것이 아니었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것은 지옥도이며, 탄광을 경험한 탈옥자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덕분에 그 이후로 '아오지 탄광' 개그를 싫어하게 됐다. 본래 쓴 적도 없긴해도, 앞으로 내가 '아오지 탄광'이라는 단어를 개그로 쓰는 일도 없을 것이다. 악마의 소굴이 있다면 바로 그게 '아오지 탄광'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탄광이 적어도 열 댓 곳은 있었다.

막연하게 미워해라-에 대해서는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지랄염병이 풍년~하고 무시할 수 있었는데, 내 손으로, 증언을 통해 학습을 하게 되니 머리에 박혀 떠나질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열혈 반공 청년이 된 건 아니고- 북한과 관련하여 너무 가볍게 뱉는 농담들에 대하여, 실제 피해자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겹치게 되고, 아무 생각없이 웃을 수 없게 된 것뿐이다.

어쩌면 나는 그냥 흔한 불편러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꿈이다.  나 역시 통일을 강력하게 지지한다. 그러니까 이번 회담은 대단한 일이 맞고, 서로의 국경을 한 번씩 밟았던 것은 암스트롱이 달에 첫 발을 내딛었던 것에 비견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내 안에는 불편함이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김 정은에 대한 호의적인 시선에 대해서는 매우 불편하다. 박수와 갈체를 받던 세기의 사건 뒤에는 '아오지 탄광'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어디서 말한 것처럼 '기쁨조'가 오늘 밤의 공연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것 같다. 같이 박수는 치고 물론 지지는 할 지언정, 그 사실을 잊지는 못할 것이다. 좋은 것만 보기에는, 억울한 죽음과 노예 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까. 

자세한 이야기는 다 건너뛰고 스페인은 내전 끝에 결국, 내부적으로 '망각 협정'이라는 것을 맺어야 했다. 다 같이 사이 좋게는 살아야 겠고, 그러자니 독재 정권이 저질러 놓은 막장 행각들이 너무 많고, 그걸 하나 하나 헤집어 놓자니 다 같이 사이 좋게 살기는 커녕 다시 내전을 질러야 할 판국이고- 그래서 나온 것이 '잊어버리고 새로 시작하자'는 망각 협정이었다. 물론 내 가방끈이 짧아서 틀린 이야기일 수도 있다. '안 잊으면 죽여버린다?' 였을 수도 있고, '어? 그거 해결됐어, 임마.'의 결과가 있었을 수도 있겠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눈 앞에 것 부터 하나씩 차근차근'이라는 격언이 씨알도 먹히지 않을 상황이라- '그냥 잊자.'라는 결론이 났었다는 점이다. 

내 예상에는 아마 통일과 함께, '망각 협정'도 같이 오지 않을까 싶다. 당장 그 동안 크고 작은 충돌 속에 아까운 청년들이 목숨을 잃었고, 통일 무드가 무르 익어가는 한가운데에서  '수많은 도발에 의하여 순국한 우리 청년들을 위하여 당사자들과 책임자를 처벌하고 통일 합시다.'-라는 이야기는 꺼낼 수도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의 숭고한 희생 덕분에 통일이 되었다고 분위기를 만들어 가겠지. 저쪽도 통일이 된 후에 그들의 국민들에게 '아오지 탄광'과 '기쁨조'의 원혼에 사죄와 희생을 하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렵다. 아마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죄를 묻지 않겠다'는 약속 정도는 받아낼 것이다. 그리고 50년 후에 손자가 대신 사죄하려나. 그러니까 결국은 분명히 이런저런 일은 있었지만, 통일을 해야 하니까, 당장은, 당장은 잊어 버리자는 결론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시각에서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할 것이고, 그런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고, 그렇게일이 이루어지고 모두가 박수치며 기뻐할 것이고, 그 결과 학문/문화/경제/외교면에 있어서 큰 발전이 일어나고 그렇게 침묵과 망각을 감내한 통일의 정당성을 차고 넘치도록 증명해 줄 것이다. 

나 또한, 통일을 기뻐하는 자리에서 박수를 치며 기뻐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지인들과 어울려 술 한 잔 하는 자리를 가질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서로의 가치에 반하는 이야기는 적극 피해가면서, 그렇게 가능한 서로 좋은 이야기만 하면서, 또 우리에게 긍정적으로 미칠 영향들에 관해서 이야기하면서 술잔을 가득 채울 것이다. 그리고 건배 끝에 나는 통일을 위해 잊혀져야만 했던 그들을 떠올리며 말없이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한 두 모금 들이킬 것이다. 50년이나 100년 뒤에라도, 누군가가 잊혀져야 했던 그들에게 사과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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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내일부터는 개발이나 AI에 대한 글도 올리자; 

사상 검증이 팽배한 세상이니, 여태껏 웹상에서 했던 테스트 결과를 남기자면.

나는 수퍼 리버럴에 속하는 듯 싶다.  

그리고 그런 내가 좋다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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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느끼는 개 다르고, 그렇다고 하는데 누가 뭐랄까요? 남북정상회담가지고 쑈한다고 페북에 난리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뭘...

글 중에 스페인 내전, 그리고 망각협정음 모르던 건데, 그런 일이 있었군요. 세상은 요지경이에요..ㅎㅎ

안녕하세요, 아직 상세하게 읽지는 못했지만,
쓰고 계시는 코칭 시리즈가 저에게 맞는 것 같아 조금씩 읽고 공부하려고 합니다.
스페인 내전은 저도 소상하게는 모르지만, 스페인 영화에서 이야기가 나와서
수박 겉핥기를 겉핥기 할 정도로만 알고 있습니다 : )
반갑습니다!

제 글을 읽고 계셨군요.
앞으로 조금 더 자주 올리도록 할께요.
코칭, 알아두면 정말 좋은 기법들이 많아요. 사회생활에서도, 가정생활에서도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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