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이민와서 받았던 충격 소화하기

in #kr6 years ago (edited)

이민을 오면 상상과 실제 사이에 간극을 느낀다. 이 과정에서 여러 충격이 다발적으로 발생하는데, 그중에 현재까지 생각에 영향력을 미치는 충격이 하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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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고사리... 한국 비빔밥에 꼭 들어가야 제 맛인데. 캐나다 사람 일부는 먹지 않는다. 발암 식물로 본다.

A. "나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자랑스러운 단일민족의 일원이다"

70년대 생인 내가 한국에서 받은 '민족관' 교육은 이게 내 정체성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캐나다에서는 이렇게 가르친다.

B. "나는 젊은 역사를 가진, 자랑스러운 다민족 사회의 일원이다"

A와 B는 청년기에 내 안에서 충돌했다. 대단한 에너지가 발생한 건 아니지만, 어디에도 소속감이 없는 불안함과 불쾌함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적 실체를 체험하면서, 즉 A의 모순과 B의 모순을 둘 다 보면서 그게 '절대성'이 없다는 걸 알았다. A와 B는 국가라는 리바이어던 두 마리가 각각 내 의식 속에 지배구조를 갖기 위해 입력한 코드일 뿐이다.

'아나키즘'에 매력을 느꼈지만, 아나키스트가 될 정도로 사상에 충실하진 않았다. 모든 사상이 내게 지배구조를 행사하기 위한 코드로 보였고, 그걸 뜯어보고 의심해봤다. 그건 내 속에서는 즐거웠다. 그러나 그런 코드 분석을 얘기하면 대부분 사람은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살아?"가 반응이었다.

요즘은 덜 피곤하게 산다

맞다. 주류에 순응하는 게 그게 덜 피곤하다. 세월이 흘러 한국에 산 기간보다 캐나다에 산 기간이 훨씬 더 길어지면서, A보다는 B가 나를 더 물들였다. 그게 나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세금도 착실히 내고, 교회도 다니고, 사상이 다른 사람과는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하지만, 우리가 친구가 될 수는 있네요'라고 산 덕분에, 좀 자유로운 영혼이 됐다. 이건 내 미화고 어떤 분에게는 '별생각 없는 놈'일 수도 있겠지.

C. "사상이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모여사는 데 방향성을 주는 도구 일 뿐이다"

사상을 조금 허점도 있는 도구로 여기면서, 관용이 점차 자랐다.
동의하지 않으면, 지나치면 그만이다. 동의를 구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나눠보면 된다. 동의하고 말고는 듣는이의 자유다. 허점 있는 도구를 '자연법'이라고 거칠게 몰아세울 필요 없다.

그 누군가, 나를 지배하려고, 필요로 만든 도구를 신의 자리에 모실 필요가 없다.

어차피 다수결이고, 그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음번 다수결을 정할 때 다른 방향을 지지하면 된다.

D. "타인을 함부로 정의하는 건 폭력이다"

많은 문제가 타인을 함부로 정의하는 폭력에서 발생한다. "누구는 무엇해야 한다" 같은 가끔 보면 A사회에서는 옳게 보이지만, B사회 눈으로 봤을 때는 영 아닌 폭력적인 명제나 선언을 본다.

여기에 일일이 지적하고 다니면 '운동가'나 '정치인' 또는 '개새끼' 되는 거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다. 그저 이민 와서 받은 충격이 세월이 흐르고 보니, C와 D의, 다소 모순이 있는 결론을 내렸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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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는 약간의 독성이 있어서 먹으려면 항상 데칩니다.

몸에 좋은 쑥도 그렇습니다.

캐나다로 이민 가 계시는군요.

네. 아직까지는 고사리는 내버려두고 있는 편입니다. 캐나다에 산 지는 좀 됐습니다. :)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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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민족'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옅어지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어차피 인터넷 안에서는 언어문화가 중요하지 피가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제 생각에는 민족 뿐만 아니라 국가도 점차 의미가 옅어지는 듯 합니다. 현대 사회 국가는 서로 많이 닮아가고 있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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