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쟈니의 인터뷰#22] 악마와의 계약파기

in #kr6 years ago

"너무 지쳤어..."

짧게 던진 그의 말에, 난 그저 입술을 굳게 다물고,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그 동안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고충에 시달렸는지
멀리서 나마 지켜봐왔기에, 활짝 웃으며 툭 던진 한마디에
그 무게감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그 뿐 아니라 그와 함께 일을 하던 모든 회사 직원들이
그러했다. 상대적으로 삶의 무게가 가벼운 젊은 친구들은
이미 회사를 떠나고 있었고, 가장이라는 자리에서, 가족부양과
생계유지를 책임지는 50대의 그들은 빠져나간 빈자리를 메우며
힘들게 버티고 있었다.

그와 처음 만난 건, 13년 전 싱가폴 해외출장...
이미 내가 다니는 회사의 주요 고객사에 다니고 있었지만,
그와 만난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후 그는 중요한 자리에서
실무를 보고 있었고,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반갑게 나를 만나주었다.

"좀 있음 우리회사 이름 바꿔...여기 내 새명함..."

대기업의 한 사업부였던 그곳은 거대투자회사에 팔렸고,
별다른 구조조정이 없었기에, 직원들은 그대로 하던일을 해나갔다.

하지만, 몇년 뒤 몸집을 키운 이 회사를 투자회사가 사들인 가격보다
훨씬 높게 국내의 또다른 대기업에 팔아 넘겼다.


(출처: 금감원)

인수한 대기업은 원가절감의 이유로, 연봉삭감과 구조조정, 재고검열등
안밖으로 알뜰 살림을 실시 했고, 이에 견디지 못한 임직원들은 하나둘
떠났지만, 떠날 수 없는 자들은 상당한 업무압박에 힘들어 했다.

"너무 앞만 보고 산것 같아. 집에 있는 시간보다 회사에 있는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집에 있으면 불편해. 어쩌다 주말에 집에서 쉬고 있어도, 전화기만
울리면 당연히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라 생각이 들고, 역시나 그 전화는
회사에서 걸려온게 맞고...."

"젊어서는 다들 그렇게 사니까 뒤쳐지지 않으려고, 당연히 그렇게 사는게
맞나보다 하고 지냈는데, 어느날 그런생각이 드는거야..."

"누굴 위해 사는 건지..."라는...

"집보다 회사가 먼저고, 난 그저 돈이나 벌어다 주는 존재..."

"내 인생은 이 회사를 위한 것이고, 태어난 이유도 그런건가 하는 허무함..."

실제 그랬다. 그 뿐만 아니라 그 회사에 오래 다닌 사람들은 내가 보기에도
그래 보였다.
높은 연봉에 인생을 저당잡혀, 철저하게 조직에 의 해 조종되어 사는 사람들..
다문 그 회사만 그런건 아니겠지만,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고 있는 듯했다.

365일 24시간 돌아가는 곳.
법정근로시간은 그저 보이지 않는 어느 곳에 몇줄의 문자로만 존재하지,
현장에서는, 출퇴근 시간은 별 의미 없는 그런 곳이다. (지금도 그렇다)

"그럼, 퇴사 후 계획이라도 있으신지요?"

"이 나라 떠날거야"

"예?"

"맘편히 살고 싶어서, 조용한 곳에가서 남은 생, 편하게 살고 싶어.
아내와 오랜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그렇게 하자더군"

그에겐 자녀가 없다. (어떤 이유에서 없는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물어보기도 그렇고..) 그렇게 50대 중년의 부부는 노후를 준비하고
있었다.

"우연히 TV를 보니까, 크로아티아가 참 좋아 보이더군...그래서
그곳에 터를 잡아볼까해. 게스트하우스 운영하면서..."

그렇게 3년 전 그는 퇴사를 했고, 문자로 안부 인사를 주고 받으며
간간히 연락을 해오다 연락이 뜸해졌다.


그리고 얼마전, 오랜만에 연락이 온 그를 만났다.
퇴사 후 한국을 오가며, 현지 조사를 하던 그는, 너무 많이 알려진
크로아티아 대신, 다른 나라를 선택했고, 차근차근 준비를 했다고 한다.
오랜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기에, 차를 한 잔 하며, 근황을 물었다.

"이제야 사람사는 것 같아 ^^"

이 짧은 말에, 그의 행복이 느껴졌기에 감사했다.
한결 더 부드러워진 그의 미소와, 느긋해진 말투에서, 그는 이미
내가 알고있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곳은 지내실만 하세요?"

"고향보다 좋은 곳이 어디있겠어? ㅎㅎㅎ 반복되는 365일을 살다가,
그곳에서 살아보니 하루하루가 새로운 나날이더군. 물론 불편하고
어려운 일들도 많은데, 힘든 일은 아니라서 살만해. ^^"

"아니, 게스트하우스 하시면, 수입이 어떨진 모르겠지만, 여기 계실때
보다 많이 버셔야 할텐데, 어떠세요?"

"돈이 많으면야 좋겠지만, 돈 때문에 내 생명 갉아먹으며 살긴 싫어.
자넨, 얼마를 벌면 행복해 할것 같애? 수중에 얼마가 있으면 자유롭게
살수있을 것 같애? 10억? 100억?"

".....음...둘중에 하나 고르라면 이왕이면 100억 하죠 뭐..ㅎㅎㅎ"

"ㅋㅋㅋ 나도. ^^ 뭐 평생 만져 볼수나 있을까 하는 액수지만,
100억 벌자고,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바치고 계약한 사람이 과연
행복할까 해."

"아...악마와의 계약이라니..."

"뭐 비유하자면 그렇지 뭐...좋은 대학 나와서, 어렵사리 대기업에 입사하고
나름 똑똑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니, 적당한 아부와 빠른 눈치와
조직을 위해서라면 이 목숨 바쳐서라도 충성을 다 하겠다며, 충성주를 마시고
깨지도 않은 채, 새벽같이 출근해서 쓰린 속과 아픈 머리를 동반한 숙취로
버텨낸 젊은 시절....악마와의 계약을 나 스스로 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번뜩
들더군... 각성을 한듯한 기분이 들었어"

흔히 말하는 386세대인 그는 각성 후, 그 계약을 스스로 파기 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렇게 살다가 몸이 망가져서 죽으면 얼마나 억울할까하는 생각에,
나름의 버킷리스트를 만들고, 최소한의 생계유지비와 원하는 생활조건을 작성해,
아내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인생을 재설계 했다고 한다.

"결혼 후에 아내와 그렇게 많은 대화를 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애.
처음엔 펄쩍 뛰던 아내도, 얼마나 힘들었냐며 눈물을 흘리는데,
나도 모르게 펑펑 울었지....ㅎㅎㅎ"

" ^^ "

결국 그는 슬로베니아에 깔끔한 게스트하우스를 오픈 했고,
다녀간 사람들의 입소문에 손님들이 찾아오고 있다고 한다.

"제가 가면 공짜로 재워주실건가요?


(재워는 드리께... )

"음..글쎄.. 올때 뭘가지고 올건데? 그냥 공짜로 재워주면 잼없잖아..ㅎㅎ"

"음....(한참을 생각...) 저...혹시 스팀잇이라고 아세요..?"
(ㅋㅋㅋㅋ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적절한 대답이었던 듯..ㅋㅋㅋㅋ)

스팀잇에 대해 한참을 설명 해줬고, 처음에 그는 뭐 이런 다단계 홍보꾼이
다있냐는 듯 쳐다 보더니, 자신의 게스트 하우스와 그의 일상에 대해
적어보라는 제의에 급 관심을 보이며, 질문을 던져왔다.

"고기를 드리는 것보다, 고기 낚는 법을 알려드렸으니, 숙식제공은
해 주시는 걸로 알고 있겠습니다. ^^"

"그런데, 거기 오려면 휴가 길게 써야 할텐데, 장기휴가 쓸수있냐?"

"....음.......혹시 직원 안 필요 하세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스팀/스달 형제의 떡상과 가치상승 유지가 오래오래 지속된다면,
쟈니는 해외에서 살지도 모른다....쩝....사람일을 어찌 알겠는가...)

사회가 바라는 대로, 주어진 환경이 밀어내는 대로 그는 그렇게 의심없이
열심히, 또 성실히 살아왔다고 했다. 하지만 문득 돌아 본 자신의 모습은
자신감 없는, 한없이 쪼그라든 초라하고 나이든 생기 잃은 껍데기...

본격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로 마음먹고, 과감히 그 껍데기를
벗어 던지고, 초라해진 자신에게 생기를 불어 넣기 시작했다고 한다.
행복하냐고 물은 내 질문에, 행복은 남이 봤을 때 좋아보이는게 아니라,
남들이 뭐라하든, 내가 좋으면 그게 행복이라며, 뻔한 대답을 했지만,
그건 분명히, 심장을 파고 드는 뼈있는 대답이었다.

젊은 시절 당연하게 느끼며, 회사에서 열심히 살았던 시절도,
그때 당시엔 작은 성취감에 행복했을 지도 모르며, 밤새 술을 마시고,
회사 한켠에서 새우잠을 자더라도, 상사의 칭찬에 만족했기에 그 또한
행복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원하는 행복은 퇴색 되었고, 많은 것이 변했기에
자신의 만족감과 행복도 변할 수 밖에 없었다.
그땐 맞지만 지금은 틀리다는 말 처럼, 꿈도, 이상도, 바람도, 행복도
먹어가는 나이와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처럼 서서히 변해 간다고 한다.

자연만물이 변하는게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변하는 것을 너무 두려워
말라는 그의 말에 잠자던 내 안의 뭔가가 꿈틀거림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멋진 손글씨 만들어주신 @sunshineyaya7 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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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오늘 내용은 특히나 좋았어요!!!
악마와의 계약. .ㅜㅡㅜ
가족은 뒷전이고 일에만 목숨걸어야된다면. . ㅠ
그런삶은 싫으네요ㅠ

앞선 세대들의 일상이, 또 현재도 어느 분야에서는 그러고 있는 것이 현실이네요. 올해 7월 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근로시간을 법적으로 규제를 한다고 합니다... 수입은 좀 줄겠지만, 생존만을 위한 삶이 아닌 가족과의 행복한 생활을 영위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신입 사원 시절... 토요일 당직 근무날, 일도 없으면서 꼭 나오셔서 신문 보시다가 당직 근무자에게 짜장면을 사주고 퇴근하시던 부서장님이 생각나네요. 그땐 왜 일 없는데 집에 계시지 회사를 나오나 했는데, 이젠 그 분 심정이 이해가 갑니다.

그나저나 막연한 꿈을 실제로 이루신 그 분... 대단하시네요. 새로운 삶을 먼 타국에서 실현하신 그 분 인생에 한잔 드리고 싶습니다. ^^

일명 반공일...일단 출근은 하지만, 시간만 때우는 경우가 많았던 때가 있었네요...그 때 저도, 중국집 음식으로 점심 먹고, 오후2시쯤 퇴근 하던...(금요일 술에 만취 되어서 대부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잠을 다던..ㅋㅋ) 암튼, 인생 2막을 계획하고 실현한 그 분, 정말 대단하고, 한편으론 부럽기도 합니다. ^^

돈 때문에 내 생명 갉아먹으며 살긴 싫어

정말 와닿는 말이네요... 삶이 어쩌다 돈의 노예가 되었나 싶기도 하고!
어쩔수 없는 일이겠지만...씁쓸한 인생인듯! ㅋ
슬로베니아라...
공짜로 재워주신다니 쟈니님가실때 저도 끼워주세요~ ㅎㅎ

그렇죠. 이상은 높고 현실은 코앞에 있으니, 아니라고 발버둥 쳐도 기승전돈의 현실과 마주하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켁~!! 꼭~!!! 같이 가십시다요.!!! ^^
스팀/스달 형제의 상승으로 전 세계어디서든 밋업 가능한 그날도 꿈꿔봅니다~ ^^

와닿는내용 쟈니님인터뷰는 항상 볼때마다 집중할수 밖에 없는거 같아요ㅎ
악마와의 계약이라ㅜㅜ 얼른 스달이랑 스팀 더팍팍 가즈아!!!

스팀/스달이 기지개를 키고 있는지, 슬금슬금 오르네요 ^^ 유후~~ ^^

한국에서는 많은 가장들이 일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자유를 찾아 떠나서 잘 정착했다니 좋네요.^_^
나도 일의 노예가 되서 돈 좀 벌어야 하는데..=ㅅ=;;

돈이 울곰님의 노예가 되어서 울곰님의 행복한 나날이 되었으면 합니다...저두요...^^
스팀,스달 가즈아~~!!^^

아이를 낳고 전 집에서.. 남편은 회사에서.. 정말 열심히 달렸던 때가 생각이 나네요.. 그때는 4명 전부.. 서로가 건드리면 곧 깨질것 같은 유리잔같았는데..
많은 대화와 또 대화.. 이해를 통해..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는 것같아요..

악마와의 계약.. 참 달콤한 독이든 성배지요..
돈은 없어서는 안되는데.. 막상 그 돈을 쫓아가면 너무 지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참 잘 이겨내신거 같아요..

게스트하우스를 스팀으로 결제할 수 있는 제도도 만들면 다양한 스팀미언들이 더 많이 찾을 수 있는 명소가 되지 않을까요??

아~ 자꾸 스팀잇 알고 나서부터는 영업병이^^;;

오~!!!!!!! 제가 왜 그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을까요? 스팀결제방식~!!!!
좋은 아이디어이십니다 ^^ 바로 메일 보내야겠네요 ^^

행복을 위해 열심히 사는데, 자칫 균형이 깨어지면 뭐든 탈이 나는 모양입니다. 인생살이가 뭐든 처음이니 시련을 이겨내어야만 하는게 아닌가 싶네요. ^^ 스팀잇이란걸 알고 부터, 더 넓은 세상의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어서 참으로 좋습니다. ^^ 이런 좋은 것을 알리는 영업병은 좋은병 인듯 합니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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