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일기] 나는 취했다.

in #kr7 years ago (edited)

나이트 근무 후 퇴근.

아침 9시 쯤 부랴부랴 출근하는 사람들과는 반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함께 나이트 근무를 했던 쌤들과
골목길 한켠에 식당으로 향한다.

구수한 해장국 한그릇과 달달하게 목구멍을 축여주는
소주 한 잔은 그렇게 기가막힐 수 없다.

출근하는 누군가는 우릴 보며 혀를 찬다.

'쯧쯔 젊은 남녀들이 대낮부터 술판이여..'

하지만 상관없다.
내 귀는 이미 밤새 시끄럽게 울려대던 알람소리로
멀대로 멀어있기 때문에.

그들은 모를 것이다.
밤새 우리가 치뤘던 전쟁을.
그들이 잠들었던 고요한 밤 너머에
총성 대신 알람소리가 정신없이 빽빽대던 그곳을.
삶과 죽음의 문턱 한 가운데서
님아, 제발 그 선을 넘지마오.
환자들의 발목을 붙잡으며
정신없이 사투했던 그 밤을.

밤 사이 운명을 달리 하셨던 분을 위해
마음속으로 추모하며
부디 좋은 곳으로 가셨기를 기도하며.

한 잔두 잔..

어느새 각 1병을 마치고

취기가 벌겋게 오른 얼굴을 들고 퇴근버스에 오른다.

퍼질대로 퍼진 몸둥아리 이끌고
집으로 향한다.

이것 저것 섞인 향수냄새. 샴푸냄새에
내 술냄새...
아니.
지난 밤의 냄새를 아주 사알짝 섞어본다.

눈을 흘겨도 혀를 차도 상관없다.

나는 간호사다.

날씨하나 굉장히 죽이네.
남들 보는 파아란 하늘 뒤로하고
이제 지친 몸하나 뉘러 들어가야지.
오늘 밤근무를 위해서.
밤이슬을 맞기위해서.

나는 간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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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님들 스트레스가 많다던데, 힘내세요! ^^

감사합니다! ㅎㅎ
@choikang18 님도 홧팅이에요~

아침에 술을먹던 낮에술을먹던 오지랖 쩌네요
이번나이트 근무도 수고많으셨습니다
스트레스관리잘하시고 남은시간 푹 쉬세요!!

ㅎㅎㅎ 자신들과 반대방향으로 가고, 차림새도 다르고
그러니 그럴수 밖에요! ㅎㅎ
오늘 쉬는날이였는데 오후 당뇨병 교육 다녀왔네요~~호호 ㅎㅎ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의 삶과 마주한다는 건 참 어렵고 숭고한 일인 것 같습니다.
밤사이 치열한 현장이 글로 느껴지네요.
근데 남들 일하러 갈때, 놀러가면 뿌듯하지 않나요?
쳐다보는 사람들은 부러워서 그런거에요^^

ㅋㅋㅋ 맞아요. 하지만 남들 퇴근할때 출근할 생각을하면.. ㅋㅋㅋㅋ
원래 전 굉장히 긍정적이였는데 간사하게도 점점 부정적으로 초점이 맞춰지네요 ㅎㅎ
피곤해서근가..ㅎㅎ

고생하시네요... ㅠㅠ 야간 간호사의 어려움이 절절히 다가오는 글인거 같습니다... 그렇게 아침 밥과 술한잔 하시고.... 편히 쉬세요...

감사합니다!
밤낮의 경계가 없다보니 시간도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네요 ㅎㅎ

스팀가격이 떨어지는 절대보팅금액이 줄어드네요...
ㅠㅠ
그래도 같이 힘냅시다!! 화이팅!

언제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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