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잇라디오] The Nearness Of You by Norah Jones
미국 유학 시절 얘기다. 아마 2002년 언저리일 것이다.
편곡 수업을 맡던 Paris Rutherford란 교수님이 있었다. 머리는 완전히 백발이 된 지 오래인 할아버지라 그에 걸맞는 괴팍함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왕년에 공연을 준비하다 사운드 시스템에서 엄청난 피드백이 발생했고 그때 모니터를 체크하던 한 쪽 귀가 완전히 멀어버렸다고 했다. 당연히 의사소통이 조금 불편했다. 수업은 뜬구름 잡을 때가 많았는데, 예를 들자면 '들판에 뛰노는 소떼들처럼 연주해 봐' 하는 식이었다. 몇 년 학교를 다녀 이미 적응한 친구들은 그런 말을 들으면 괜히 악기 셋업을 바꾸는 척 하고 그대로 연주하곤 했다.
편곡 과제를 내주었는데, 당시 학교 컴퓨터 랩 실의 장비로 해결할 수 없는 과제였다. 그래서 패리스는 필요한 학생들에게 야간에 교수 연구실을 개방해 주고는 자신의 컴퓨터와 장비로 과제를 하도록 배려해주었다. 연구실 문은 게시판 역할을 겸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양반도 각종 공지사항을 문에 붙여놓았었다. 거기에는 가장자리가 너덜너덜해진 스누피 만화가 하나 붙어있었는데, "What is the best inspiration-최고의 영감이 뭐야?"라고 물으면 "The Last Minute Panic-막판에 미쳐돌아가는 것"이라고 대답하는 컷이었다. 나는 그 다음 학기였나 과제로 제출하는 자작곡 제목을 Last Minute Panic 이라고 붙여 냈지만 패리스는 출처를 연상해내지 못하는 눈치였다.
내가 sign-up 한 시간에 교수님의 연구실에 들어갔다. 어떤 과제였는지 십 여년이 지난 지금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과제를 다 마치고 연구실을 둘러보다 발견한 게 있었다. 노라 존스가 장학금 오디션을 보기 위해 제출했던 카세트 테이프.
그런 것에 손대면 안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이미 마음이 쿵쾅쿵쾅하기 시작했다. 조심스레 꺼내서는 오디오에 집어넣고 틀어보았다. 그때 흘러나온 음악이 바로 The Nearness Of You 였다. 학교 연습실에서 스스로 피아노 반주를 하며 무심히 부르는 노래.
*스누피 만화가 갑자기 궁금해져 구글의 힘을 빌려보았습니다. 역시나 디테일은 많이 다르지만 하려는 얘기가 얼추 전달되는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네요.
*같은 곡의 다른 버전 두 가지입니다. 제가 너무도 좋아하는 연주에요. 엘라와 루이, 그리고 제임스테일러와 브레커입니다.
학교 연습실에서 무심히 부른 버전이 더 와닿을 것 같단 혼자만의 상상을 해 봅니다. 굉장히 특별한 일화를 담담하게 풀어 주셔서 더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때 딱 한 번 들었던 아무런 꾸밈 없는 노라 존스의 목소리는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음반에도 간단한 피아노 반주로만 녹음한 걸 보면 아마도 이 곡은 이렇게 연주되어야 한다고 학생 시절에 결론지었나 봅니다 :)
워낙 유명한 스탠더드지만 당시에는 생소했던 이 가수 버젼도 의외로 괜찮았네요. 부른 스타일이 가사와 어울려서인 듯도 하고요. 주변에선 이 곡의 에디 히긴스 연주도 좋아하더군요.
호기 카마이클, 역시나 유명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싶은 곡입니다. 말씀하신 거 보고 본문 하단에 제가 좋아하는 두 버전 더 추가했어요. :)
이걸 도대체 어떻게 연주하는 겁니까?ㅋ 친구분들이 똑똑하시군요.ㅎㅎ재밌는 에피소드 잘 읽었습니다.^^
그니깐요 ㅎ 시간이 지나니까 어떻게 하라는 건지 알겠더군요. 뭐라도 다르게 해보는 척 하면 되더라구요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