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월드에서 스팀잇까지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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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술의 발전에 있어서는 항상 레잇(late) 어답터였다. 물론 지금도...

나라는 사람에게 있어, 대형 텔레비젼이란 고전 영화를 보기 위한 화면일 뿐이다. 영화관에서 개봉하는 최신작 중에서는 조금도 궁금하거나 보고 싶은 것이 없다. 간혹 재개봉하는 고전이나 궁금한 리메이크를 제외하고는.

고전 음악을 파일로 제대로 들으려면 각각 엄청난 대용량이어야 하기 때문에 아직도 CD를 고집하는 편이다. 그것마저도 LP로 다 교체하는 것이 꿈이다. 클래식만 듣지는 않지만, 1920~50년대 재즈와 약간의 올드팝까지만 좋아한다.

주민등록번호로 전산등록 되어 관리되는 존재라는 사실이 소름끼치기도 하고, 누구든 내게 연락을 취할 수 있는 폰을 소지하는 것도 굉장한 스트레스인데, 책처럼 글을 읽는 용도라고 생각하면 그나마 편하다.

또한 최근에 스팀잇에 가입한 것을 제외하고, SNS란 나와 무관한 그 무엇이다.

최근에 내가 글을 제공하는 곳에서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 것을 권유했는데, 거기서 소통할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았고, 알림들이 너무 많고 귀찮아서 꺼버리고 말았다.

혹시나 중요한 메시지를 놓치지 않았을까 아주 가끔 들어가 보는 것도 솔직히 매우 괴롭다. 진짜 중요한 일 관련 메시지가 있기라도 할까봐.

이런 나도 예전에 유행했던 싸이월드는 열심히 했었다.

보통 싸이월드 하면 음악은 나라가 허용한 유일한 마약이니까 등의 그 특유의 허세로 회자되곤 하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허세란 매우 포괄적이다. 오글거릴 정도로 감성적인 글, 멋있는 척 하는 사진, 대단한 것인 것 마냥 늘어놓는 지식, 등등을 말하는 것이겠지.

여하튼 그런 싸이월드 특유의 허세를, 나는 그냥 당시에 가상공간이 대중화되면서 모두가 과잉 감정을 드러내게 된, 일종의 서투름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가상공간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결과, 노출증은 생겼는데 어떻게 노출할지 서툴렀다고나. 그런 허세를 피하기 위해 쿨한 척 쓰는 간략한 인스타그램 글귀나, 무심한 척 찍은 사진들도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허세라고 볼 수 있으니까.

그런데 나는 위에 열거한 낡은 취미들로 인해, 일반적으로 남들이 멋지다고 생각할만한 허세를 부리기에는 약간 어색했다. 물론 요즘 말하는 소위 특이병에 걸려서, 사실상 별로 즐기지도 않으면서 무조건 마이너하고 특이한 것만 좋아하는 척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으나...

나는 정말로 요즘 대중문화를 좋아하지 않고, 잘 모르고, 마치 어느 존재의 실수로 인해 엉뚱하게도 21세기에 뚝 떨어져 버린 그런 사람이니까.

그런 내가 왜 싸이월드를 그것도 물론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었냐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상공간을 채우는 것 자체에 매료되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책과 LP, 빈티지한 물건들로 찬 내 방을 가상공간에서도 구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미니룸을 그렇게 꾸미는 것으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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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클래식 CD에 거액을 투자해서 모으고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가벼운 팝과 재즈는 싸이월드 음원으로 사기 시작했다.

현실 세계의 친구들이 와서 안부를 남기거나, 현실에서 내가 최대한 티 내려고 하지 않는 고전 매니아적인 부분들을 보는 것이 그다지 달갑지는 않았다. 반면, 잘 모르지만 나와 취향이 조금이라도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는 싶었다. 즉 나는 지인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 중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 것을 더 기대했다. 물론 거의 없었다

결국 현실 속 지인이라는 이유로 굳이 가상공간에서까지 인간관계를 돈독히 하는 시도는 아예 그만두었다.

그러자, 나와 비슷하지는 않지만 아주 약간의 접점이 있거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조금이라도 동경하거나 관심 가지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들쑥날쑥하던 방문자 수는 결국 평균적으로 하루 50명 정도에서 정리된 것 같다.

뒤늦게, 그것도 우연히 안 사실이지만, 내가 다니던 학교의 익명 게시판에 내 홈피가 올라온 적이 있었다. 그 기간 동안은 하루에도 말도 안 되는 수의 사람들이 방문했다. 내가 좋아하는 재즈 음악이나 철학, 문학 때문에 올라온 것은 아니었고, 사실 정확히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어쨌든 공통된 관심사로 인해 몰린 사람들이 아니기에, 남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내 글에서 얻을 것이 있고 흥미를 느낀 사람들은 학교로 편지나 선물을 보낼 정도로 자신들의 삶 속에, 만나보지도 못한 나를 조금씩 허용했다.

그 시점에서 나는 훗날 세스 고딘이 말하게 된 보랏빛 소라든지 자신만의 부족(tribe)이라든지 하는 것을 직접 체험하게 되었다.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주제나 취미를 갖고 있지 않지만, 그냥 내 관심사와 취향을 드러내다 보면 접점이 있는 사람들이 모이고, 머물게 된다는 것.

그런 관점에서는, 사람들을 많이 모이게 하려는 목적이 애초에 있을 수가 없다. 나와 통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을 수도 없으니까.

물론 겉으로는 매우 보편화되고 대중화된 취향을 가진 듯한 사람들에게도, 무한대로 몰리지는 않는다. 사람이 사람에게 갖는 느낌은 마냥 단순하게 결정되지는 않으니까.

나 역시 남들을 방문하지만, 아주 약간의 접점이라도 있는 사람들만 방문하기 위해서 인물 큐레이션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나는 이제 이곳에 있다.

단기적인 목적은 예전 싸이월드에서처럼, 친숙한 일기장처럼 스팀잇에 글을 쓰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기록이 지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싸이월드를 겪은 입장에서는 오히려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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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짱맨 태그 사용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참 감사드립니다 ㅠㅠ

정말 추억의 싸이월드...스팀잇에선 더 글을 신중하게 쓰게 되지만 그래도 제 일상을 열심히 기록해보려고 합니다ㅎㅎ함께 해요!^^

정말 일상을 기록하시나 보네요. 즐거운 스팀잇 생활 되시길...ㅎㅎ

저희 버디버디 , 싸이시대 분이시군요 ^^ 함께 오래오래 해용~

버디버디...는 안했고, 싸이월드는 당시 나이대 상관없이 많이들 했었겠지만 반가워요. ㅎㅎ

1920-50년대 재즈에 약간의 올드팝... 같은 취향이라 반갑네요.

ㅎㅎ 사실 그거 아니더라도, 작가님 글 처음 봤을 때 뭔가 편한 느낌이 들었어요.

저도 싸이월드 세대인데 ㅎㅎ 반갑네요!

에잇 세대라기엔 당시 온갖 연령대가 다 했었던지라 ㅋㅋ 그래도 또 반가워요!

저는 싸이월드 일촌평 쌓아나가는 맛에 했죠..ㅋㅋㅋㅋ 인기의 척도랄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부질없는 짓이었지만요

전 일촌평 그거는 좀 별로였어요. 실제 아는 사람들과 거기서만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미지가 달라서;;

저도 싸이월드 한참했죠. (프리챌 마지막 세대기도 하고) 방가방가.

프리챌까진 모르겠어요. ㅎㅎ반가워요!

싸이월드 하셨던 분들은 싸이월드의 흥망성쇄를 직접 체험해서 그런지
스팀잇의 블록체인으로서의 특징을 장점으로 받아들이시더라고요
저도 그렇거든요 ㅎㅎ

보라색 소가 뭔지 몰라서 검색해봤는데 한 번에 이해가 되지는 않네요~

맞아요. 싸이월드 앱으로 겨우 겨우 남기는 했는데...혹시 그것마저 없어지기 전에 사진 백업 해두어야겠어요.

세스 고딘의 보랏빛 소는 사람들이 remark(주목하다/한 마디 하다) 할만한 remarkable(특출난, 주목할만한)한 상품/서비스를 제공해라는 내용의 책이었는데...그 개념을 평범한 소떼 가운데서 혼자 보라색으로 튀는 소에 비유해요. 사실 저도 책은 안 읽었어요. 자기 개발서나 마케팅 책은 사실 안 읽기 때문에...

아니, 다들 당연히 특별하고 튀는 상품/서비스를 제공하려고들 할텐데 굳이 왜 유명한 마케팅 구루라는 사람이 이런 소릴 했고 그게 왜 히트를 쳤나 싶어서 유투브에서 강의를 들어봤는데...특이한걸 만들라는 얘기 자체에 포인트가 있다기보단....이젠 취향과 소비 습관이 다양화되었으니, 대량으로 찍어내는 대기업이 아닌 이상 모든 사람을 그냥저냥 다 만족시킬 수 있는 상품을 만들려고 승부를 걸지 말고, 특이한 광고제작에도 열올리지 말고, 소수나마 확실한 열성 고객층이 생길만한 상품/서비스를 만들어라는 얘기였더라구요. 그러려면 자기만의 개성이 있어야 된다 뭐 그런 이야기...대체적으로 소규모 기업이나 개인 크리에이터에 해당하는 얘기였어요.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스팀잇에서 자주 뵙도록 합시다.

넵 ㅎㅎ 감사합니다!

이 사람은 글을 참 정갈하게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정확하게 읽는 이가 최대한 잘 느낄수 있도록 쓰는구나. 얼마나 쓰면 이렇게 될까? 라는 생각으로 처음부터 글을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글쓰는 일을 하시는 프로셨군요... 괜한 질투와 부러움이 얼마나 많은 습작을 하셨을까? 난 얼마나 썼니? 라는 질문의 답때문인지 되려 머쓱해 집니다. ^^

음...솔직히 말씀드리면 (문학작가를 지망한 게 아니라서인지) 스팀잇에 글 쓰기 전까지는 딱히 학교에서 주는 과제랑 논문 외엔 글을 써본 적이 없어요. 어릴 때 싸이월드 끝물에 들어가서 일기를 쓰긴 했죠.

글을 쓴 경험은 얼마 없지만 읽은 경험은 매우 많다고 할 수 있고, 아마 읽은 것들에 기대어서 쓰는 것 같습니다. ㅎㅎ와이즈캣님은 작사가시죠? 시인에 가까운 글쓰기를 하시네요.

그 읽은 경험때문에 잘 짜여졌다는 느낌을 주고 그 느낌이 안정감을 주나봐요.
그리고 표현력이나 상황을 묘사해서 일게 만드는 것은 많이 쓰시지 않았다면 재능이겠죠.
시인이라뇨... 당치 않습니다. 저는 하고 싶은 이야긴 많은데 쓰다보면 제 글이 주저리 주저리 길어지는 게 싫어서 최대한 아이디어를 전달 할 정도만 정리해서 쓰려고 노력중인거죠. 노랫말을 쓰는 면서 좀 트레이닝이 되긴했는데 아직도 작업하면 모자라다는 걸 많이 느껴요. 원래 제가 좋아해서 배우기 시작할 때 남이 가진 것들을 잘 뽑아 먹는 재주가 있거든요.. 그래서 @jamieinthedark의 장점 좀 배워 가려구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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