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지능은 왜 필요했을까?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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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을 구현하기 위해선 지능을 알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아무리 발달한 현대 과학이라고 할지라도, 분자수준에서 이뤄지는 신경세포의 활동을 일일이 스캔하고 모니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인간을 실험대상으로 지능을 탐구한다는 것은 윤리적인 문제와도 얽혀 있어서 실험 자체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현재 나와 있는 대부분의 인공지능 알고리즘들이 진짜 인간의 지능을 모방한 것일 거라는 생각은 거두는 것이 좋다. 개발자들은 그저 인간의 행동과 유사한, 혹은 지능적이라고 생각되는 퍼포먼스를 기계가 하도록 할 뿐이지, 그들이 인간의 본질을 꿰뚫고, 인간과 닮은 기계를 만든 것은 아니다.

지능이 무엇인가에 대한 성급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리는 도대체 진화의 과정에서 '지능은 왜 필요했을까?'라는 질문에 먼저 답했어야 했다. 만약 이에 대한 타당한 결론이 나온다면, 지능의 역할에 대한 통찰과 그것의 구현에 있어 매우 결정적인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발생원인을 알게 되면, 굳이 지능을 생물학적으로 모방할 필요는 없으로 구현가능성은 더 높아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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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은 왜 필요했을까?

이에 대한 답을 짧은 글에 다 할 수는 없지만, 논의의 출발점에 대한 간략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우리가 '진화evolution'라고 무언가를 개념할 때는, 그것이 반드시 생존survival과 관련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최초의 세포가 탄생했던 43억년 전부터 지금까지 진화의 강을 건너 살아 남은(이 과정에는 난데없이 혜성이 날아들어 온 지구를 초토화시킨 난폭하고 거칠기 이를 데 없는 사건들이 포함된다) 모든 생물들이 살아 남은 단 한가지 이유는 단지 그들이 생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생존에 뜻이 없는 생물들은 멸종했을 것이 틀림없지 않는가!

때문에 현상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을 할 때는 '그것이 생존에 유리했다'는 설명이 강박적으로 들러 붙을 수 밖에 없다. 사자가 힘이 센 것도, 기린이 목이 긴 것도, 사슴의 눈망울이 이쁜 것도, 임신부가 입덧을 하는 것도, 아기가 귀여운 것도, 코알라나 팬더가 인생의 대부분을 잠자는 데 쓰는 것도, 나무늘보가 느린 것도, 꽃이 눈이 있는 모든 생물을 끌어 당기는 것도, 스컹크가 코 달린 모든 생물을 쫓아낸 것도 모두 생존을 위해 개발된 고도의 테크닉인 것이다.

지능도 마찬가지 일 것이고, 게다가 그 모든 생존 테크닉 중에 최고의 아트웍artwork일 것임은 지구를 정복한 사피엔스sapiens의 오만한 모습을 보는 것으로 충분히 증명된다.

때문에 우리는 파스칼이나 라이프니츠에서 유래된 '계산기계'의 궁극적 도달점이 지능일 거라는 서양 철학의 흐름에 대해서 정당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과연 지능은 이성이며, 주어진 것이며, 혹은 타고난 것이며, 이데아를 그리워 하는 영혼의 회상이며, 신의 선물이며, 송과체pineal gland의 발현일 것인가?

문명을 통해서 인간은 자신들이 자신들을 제외한 모든 동물들과 완전히 다른 어떤 존재임을 강하게 믿었다, 라는 것은 전적으로 서구과 서구화된 동양인의 생각일 뿐이다(전통적인 동양에서 인간은 금수와 크게 분리되지 않는다. 그런 언급이 맹자에도 나오고, 불교의 윤회는 인간들끼리만의 사이클이 아니다). 어쨌거나 그런 생각은 널리 퍼졌고, 거의 대부분의 문명에서 받아 들여졌다. 하지만, 그 의견이 받아들여진 이유는 우리가 순진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그 명제가 진리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게 받아들여진 유일한 이유는 바로 그 생각을 받아 들이는 게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었다(그 덕에 우리는 모든 생물과 지구 자원을 제 것인 양 소비하며 잘 살고 있다).

하지만, 지능이 모두 신경세포임이 분명해진 21세기에 와서도 여전히 그런 사고를 견지하고 있는 것은 지능의 본질에 대한 탐구와 그것의 구현에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능이 신경세포에 관련된 일이라면, 우리는 신경세포를 발현하는 DNA를 가진, 그리고 실제로 신경세포가 발현된 생물들의 목록을 끝도 없이 나열할 수 있고, 그 모든 생물들은 일정 정도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능에 대해 생각할 때 놓치고 있는 것은 그것이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지능이 인간 고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자연에서 그 지능의 힌트를 얻을 수 없지만, 지능이 인간의 모양새만큼이나 진화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주변에 널려 있는 수많은 생물들에서(심지어 날아다니는 모기에서조차도) 지능의 본질에 관한 참고자료들을 얻을 수 있다.

지능이 왜 필요했을까?

이 물음은, 따라서, '모기에게 지능이 왜 필요했을까?'의 문제와 등가이다. 우리는 단순하게 결론 내릴 수 있다. 모기에게 지능이 필요한 이유는 그것이 없을 때보다 있을 때, 그 개체의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지능도 마찬가지다. 우리 지능은 생존을 위해 발달된 '전략기제'이지, 계산의 기능을 하거나, 논리적 추론을 하거나, 이데아를 꿈꾸거나, 순수 이성을 추구하기 위한 매커니즘이 아닌 것이다. 계산, 이성, 추론, 탐구, 생각과 같은 개념들은 전략적 인간이 전략적 인간을 바라보면서 그 행동의 패턴에 대해 내린 일종의 임시적 스냅샷이지, 인간의 생물학적 조건이나 뉴런 뭉치를 떠나 외따로 존재하는 절대불변의 추상적 실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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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인식에서 올바른 구현이 나오는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지능이 올바르게 구현되지 않는 것은 전제가 올바르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비트겐슈타인은 '답이 없는 것은 질문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는 통찰을 우리에게 전달해 준 바 있다.

해야 할 이야기는 끝도 없다. 앞으로 조금씩 공유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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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예쁜꼬마선충의 뉴런을 모방한 프로그램을 레고 로봇에 올리고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한 동영상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인공생명체였으니까요.
앞으로 가다가 벽에 부딪히면 턴레프트 등등의 명령어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냥 선충의 뉴런과 근육세포가 연결된 기제를 모방해서 프로그램 해 넣었을 뿐이었죠.
그런데 놀랍게도 벽에 부딪히니 옆으로 틀어서 가더군요.
다만 그 원리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간단한 애플 II 에 사용된 칩을 모방한 결과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칩의 동작결과를 보고 칩의 내부구조를 유추하는 프로젝트였는데
결국 내부구조를 유추하는데 실패했다고 합니다.

부수적인 효과로 애플 II 칩 설계도면을 분실했는데 이 프로젝트로 설계도면을 복원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결과로 내부구조를 유추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반증인거 같습니다.
하물며 인간의 뇌라면 더 복잡하겠지요

예쁜꼬마선충Caenorhabditis elegans은 뉴런 연구에 많이 사용되는 생물입니다. 뉴런 구조가 단순해서 그 역할을 추정해 보기 좋다는 이유죠. 당혹스러운 것은 이 선충이 매우 단순한 뉴런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동작이 단순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아직 뉴런에 대해 매우 매우 초보적인 수준의 이해를 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저도 지능은 실용적인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칸트식 순수이성이야 말로 실천(실용)이성인 셈이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지능에 '이성'이라는 별칭을 붙이는 것은 좀 어색하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동의합니다.

좋은 글 포스팅해줘서 감사합니다. 인공지능에 관심이 많아 3달전부터 조금씩 찾아봤는데요. 현재 neural network하고 인간의 뇌가 어떤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지 간단한 설명부탁드려도 될까요?

뉴럴넷은 역전파backpropagation라는 방식으로, 데이터와 정답을 연결해 주는 방정식을 찾는 기계학습 방법입니다. 입력층, 은닉층, 출력층의 대부분을 인공뉴런이라는 선형 방정식과 활성화 함수activation function의 연결 함수를 사용합니다. 빅데이터와 그 데이터가 의미하는 바를 찾아내는 블라인드(즉, 묻지마) 방식으로서는 매우 강력한 방법론임에는 틀림없지만, 역전파를 할 때의 비결정성과 자원 소모, 그리고 추가적인 데이터에 대한 재교육(혹은 실시간 교육)이 불가하다는 점 때문에 단점도 지적되고 있구요, 결정적으로 우리 뇌와 다른 점이라면, 우리 뇌는 그런 식으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수업에선 교수님이 뉴런의 작동방식을 모방해서 구현한게 neural network라고 가르쳐 주셨고 저 또한 뇌의 기본적인 작동방식이 알고리즘으로 구현되어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인공지능이 인간의 뇌와 많이 다르다는 상반된 내용을 들으니 흥미로우면서 살짝 혼란스럽습니다. 관련 레퍼런스를 얻을 수 있을까요? 아님 제가 뭔가를 잘못 이해한걸까요?

관련 레퍼런스라면, 기초적인 생물학 수업에서 뉴런 부분만 들어도 알 수 있습니다. 단지 뉴런들이 연결되어 있는 모양을 모방했다고 해서, 그것을 뇌를 모방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물론 프랭크 로젠블랫이 처음 이 모델을 도입했을 때, 그는 이것이 뇌와 동일한 방식이라고 주장하긴 했지만, 그 때도 지금도 뉴런이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상식입니다. 일단 뉴런은 흥분성 뉴런만큼이나 억제성 뉴런도 많고, 다른 종류들도 많습니다. 게다가 우리 뇌는 역전파같은 방식은 더더욱 사용하지 않습니다. 최근의 뉴럴넷 개발자들도 자신들이 뇌를 모방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저 '지능적인 기계'를 개발하고 있을 따름이죠.

nueral network와 관련된 마이크로소프트의 resnset 이라던지 구글의 inception같은 object detection이나 classification관련 논문들만 읽어었는데 jaehyunlee님으로부터 몰랐던 지식을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인생은 서바이벌 게임이니까요 ^^ 그에 맞게 진화한것이고 음... 좋은 글 감서요

진화냐 아니냐에 따라 구현도 큰 차이를 보입니다. 앞으로도 추가적인 글 올리겠습니다.

오~ 인공지능 개발자시군요. 앞으로의 포스팅도 기대하겠습니다.

네, 앞으로도 자주 들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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