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땅을 밟은 후 접한 첫 소식..
연어입니다. 여행 중반부터 현지 통신망 사정으로 인해 포스팅하는 것이 어렵더군요. 귀국 일정도 빡빡해서 여행 이야기는 귀국 후에나 가능하겠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귀국 하자마자 산적해 있는 일들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혹시 저의 여행 포스팅을 기다려주신 분들이 계셨다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를 바랍니다.
어제 운전 중 라디오를 통해 들은 뉴스에 귀국 후 첫 포스팅을 여행 이야기로 이어가는 것이 선뜻 마음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급적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꺼리는(?) 스팀잇의 불문율을 깨고 오늘은 정치권을 소재로 잠시나마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래야 답답한 제 속이 조금은 후련해질 것 같네요. 바로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글 역시 블록체인에 영구 박제될 것을 각오하고 풀어가야겠지요?
언제던가.. 당시 민주당 안희정 후보가 연일 지지율을 끌어올리며 확고한 선두라고 생각했던 문재인 후보를 힘차게 따라잡고 있을 때였습니다. 정치엔 그닥 관심이 없던 친구가 어떤 분석글을 보고 나더니 제게 이런 얘기를 꺼내왔습니다.
- 안희정이 문재인을 꺾고 대선 후보가 될거란 전망이 있던데? 넌 어떻게 생각하냐?
- 절대 그럴 일 없다.
단칼에 대답해주었습니다.
- 안희정 상승 기세가 장난이 아니던데? 문재인은 표 깎아먹는 것만 남은거 같고.
- 지금 안희정의 지지율은 후보자로서의 그릇을 뛰어넘는 수치다. 절대 담아둘 수 없어.
구구절절 설명없이 그냥 제 스타일의 표현으로 마무리해 주었죠.
언제부턴가 저에겐 사람의 그릇을 평가하는 고약한 버릇이 생겨버렸습니다. '그릇'이란게 참으로 막연한 것이기도 하거니와 판단하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그릇'이란 것을 파악하고 나면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떤 판단과 행동을 할지 얼추 가늠할 수 있게 되니.. 저로선 어쩌다 생겨버린 이 촉을 그냥 놔두질 못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의 그릇을 가장 쉽게 파악할 수 있을 때가 어느 때일까요? 전 그 대상자의 꿈과 소망,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욕심과 욕구의 크기, 그리고 방향이 순간 (본인의 착각이겠지만) 근접해졌을 때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조금 어려운 설명 같습니다만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개한테 먹이를 던져주면 달려들 듯..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레벨보다 (훨씬) 낮음에도 그 과정을 통과하거나 달성해 내면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눈 앞에 펼쳐진다고 생각되는 순간..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먹이 앞에 달려드는 '한 마리의 개'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본인은 자신이 이 순간 어떤 눈빛을 뿜어 내는지, 그리고 말과 행동에 어떻게 미묘한 노출을 하고 마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평소 포커페이스라고 불리는 사람이라도 말입니다. 제가 '그릇'의 무서움을 깨달은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었습니다.
투자의 세계에 몸 담았을 때는 수백 억, 수천 억도 모자라 수 조원을 주물러 보겠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수 백, 수 천만원 앞에서 본인의 욕심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정치권에 있을 때는 다들 국회의원, 장관, 그것도 모자라 대통령 자리에 대한 포부를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작은 자리 앞에서도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정작 그들 스스로는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이렇듯 '그릇'은 자신의 무대를 향해 걸어가는 과정에서 본인의 욕구보다 훨씬 작고 소소한 단계에서 드러나기 일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어떤 사람이 자신의 욕구를 이룰 수 있는 방향으로 막 들어섰을 때, 그리고 그 레벨이 아직 성에 차지 않은 단계일 때 그 사람의 변화와 행동을 눈여겨 봅니다. 대번에 드러나는 경우도 있겠지만 예민한 촉으로 눈치를 챌 수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고 이런 매의 눈을 가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많은 분들이 본능적으로 이상한 점을 감지하셨을 것 같습니다.. 바로..
지난 대선 후보로 나섰던 안희정 후보의 모습에서 말입니다.
분명 그 때의 무대는 안희정이란 후보의 본 모습이 얼마만큼 영글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매우 적나라한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헌데 본인은 잘 모르는 듯 했습니다. 얼마나 본인의 속내가 까발려졌는지 말입니다. 그 전까지 안희정이란 정치인은 큰 정치를 맡아나갈 젊은 재목들 중에서도 군계일학이라고 평가받아 마땅했습니다. 사실 대중 정치인의 길로 나아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대선.. 즉 대통령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정치인은 비교적 정해져 있다고 봐야합니다. 그렇지 못한다면 최대한 뻗어갈 수 있는 길은 총리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만큼 대중의 기대와 인기, 그리고 시기과 이슈를 끌고 나간다는 것은 여러 요소가 결합되지 않으면 어려운 일입니다. 적어도 안희정이란 정치인은 여러 측면에서 대중 정치인.. 대중의 기대와 아쉬움을 연일 받아내며 성장해 나갈 정치인으로서 흠잡을데 없는 캐릭터를 갖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대중 정치인의 길을 걷는 젊은 정치인들에겐 독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른 나이에 접하게 되는 인기입니다. '연예인 병'이란게 있다고 하는데.. 정치권에서 이런 사람들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과 기대는 이들이 좀 더 성찰하고 시련을 견뎌내며 성숙해 나갈 중요한 시간을 빼앗아 버리게 됩니다. 봄의 꽃은 피웠지만 뜨거운 햇볕과 세찬 폭풍우가 연일 퍼부어대는 여름을 지나지 못하는데 어떻게 가을의 결실이 생길 수 있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세간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도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또는 그냥 고만고만한 인물로 남게 되는 젊은 정치인들은 우리는 숱하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대선 과정 역시 안희정이란 젊은 정치인에겐 매우 중대한 도전이자 시험대였으며.. 그럼에도 제 평가로는 완벽한 낙제점이었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10년 정도 영글대로 영글어 가면 좋은 재목감에서 한 시대를 이끌만한 좋은 정치인도 될 수 있겠다 기대했던 시각을 180도 바꾸어 완전 낙제점으로 마음에서 지우게 된 때가 바로 그때였습니다. 그 독을 다 빼내고 다시 재목다운 모습으로 성장해 가려면 이제 시간으론 족히 20년.. 게다가 눈물이 쏙 빠질만한 자기 성찰과 다이나믹한 인생사와 시대배경이 펼쳐줘야 그나마 될거란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그런걸 기대하느니 그냥 리스트에서 삭제하는게 편한 것일지도 모르죠.
그러나 제 마음 한 켠에는 씁쓸함이 남았었습니다. 여야건 어느 정당 출신이건을 떠나서.. 우리나라와 국민을 위해서는 좋은 정치 재목감들이 자꾸 나와야 하고 그들 중 많은 이들이 또 올곧게 성장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너무 쉽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한 명의 좋은 정치 재목감은 그리 쉽게 찾을 수 있는게 아니니까요. 수많은 사업체들 중에 건실한 사업체로 오랜기간 성장해 가는 것이 어려운 것처럼 정치권도 수많은 꽃들이 피지만 열매다운 열매를 국민에게 선사하는 것 역시 매우 드문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국민이 좋은 인재를 다시 발굴해 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까요.. 물론 그런 시간과 경험은 아깝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꼭 필요한 과정이기도 하죠.
어쨌거나.. 정치인 안희정은 본인의 자백으로 인해 빼도 박을수도 없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습니다. 사건의 엄중함은 물론이거니와 정치인에게 기대하는 국민의 요구 역시 만만치 않기 때문에 그의 정치 생명은 물론이고, 한 사회인으로서의 행보 역시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그만한 화를 불러 일으킨 것에 대해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것이고요.
지금 한국 사회에 불고 있는 '미투' 열풍을 국민들과 전문가들이 각각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국 사회는 많은 발전을 거듭해 왔지만 어쩌면 지금 시대는 힘과 기회의 불균형이 더더욱 고착화 되고 있는 사회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미투' 운동의 일면엔 두 가지가 자리잡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바로 '힘의 불균형', 그리고 '공개되지 못하고 감춰지는 진실'에 대한 부분입니다. 어쩌면 정치권이야 말로 두 가지 핵심 사항을 가장 크게 내포한 집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희정 사건은 이 파워 집단에 대한 대중들이 내뿜는 반격의 서막일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대중들, 국민들이 요구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힘과 권력이 약한 자에 대한 폭력 중단..
은밀히 감춰지는 진실에 대한 공개..
학교든, 군대든, 연예계든, 정치권이든.. 아니면 우리가 몸담고 있는 회사든 가정이든.. 이 모든 역학 구조는 동일합니다. 국민은 이것에 대한 문제를 엄중히 묻고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정말 이리 되는 듯 하여..
교묘하게 더 이리 굳어져가는 듯하여..
겁이나기도 합니다.
좋은 의견 글 감사합니다. 귀국하셨으니 여독을 푸세요^^
이제는 더이상 대중이 개돼지가 아님을 언론인들과 정치인들 경제인들이 깨닫고 무서워할 때가 가까워진것이 아닌가 합니다. 추악한 모습을 보자니 역겹지만 또 한편으로는 성숙해지는 과정이라 생각하니 기쁘기도 합니다, 글 잘보고 갑니다
연어님. 글 잘 읽고 갑니다~
일단 welcome back입니다 연어님
저는 인터뷰영상 처음부터 끝까지 다봤는데 생각이 많아지더라구요
님, 제가 아는 분 같기도 하고...사진을 보니 아닌데...힘과 권력이 약한 자에 대한 폭력, 감춰진 진실에 대한 공개, 그것을 국민이 묻고 있다...본질을 꿰뚫은 관찰이라고 봅니다
안희정은 정말 충격이었죠.. 잘 읽고 갑니다.
안녕하세요 연어님, 정말 연일 들려오는 추악한 소식들에 마음마져 공허함을 느낍니다... 참 한때 새로운 정치를 기대했던 저에게도 쿤 충격이었네요.. 이렇게 믿음 놈 하나 없는 세상이라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제는 하루종일 정말 충격이었고 화가 나서 참을 수 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앞으로의 세대에서는 이런 관행이나 힘의 불균형이 사라지길 바랄 뿐 입니다..
드뎌 다시 한국 귀환하셨네요!!!^^
그래서 밋업 언제 나올꺼예요~!!
못뵌지 1년다되감~!!
음.. 저도 안희정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어느정도는 될거라고 생각했는데.. 연어님 말씀대로 진짜 그릇에 과분했던것 같습니다.
본능을 이성이 지배하지 못하는 자가 무슨....
그에 반해 문재인 대통령은.. 제눈에는 너무나 너무나 대통령으로 적합한 인물로 보입니다. 노통을 이어서 말이지요..
사람이 먼저다라는걸 항상 앞세우고.. 한치 어긋나 없이 행하는 대통령..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만큼은 아니겠지만, 오히려 이번에 잘된 것 같습니다. 차라리 이재명 시장이라도 좀더 잘나가길 저는 빌어 봅니다.
적어도 이재명 시장은 그런 모습을 보이진 않겠지요.. 안희정같은.. 그리고 친일 세력 하나는 끝내 주게 잡아 줄듯 싶어서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