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 나서고, 길을 찾고, 길에 이르다. "꽃들에게 영광을" 2. 탑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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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 이어 계속 되는 스토리

까만 줄무늬 애벌레도 다른 애벌레들을 따라 탑을 찾아갔다. 끝도 없는 거대한 탑이 하늘로 솟아 있었는데 모두 벌레들의 몸이 쌓여서 만들어진 탑이었다. 수많은 벌레들이 사방에서 모여 그 탑을 오르고 있었다. 까만 줄무늬 애벌레도 그 탑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동료의 몸을 밟고 밀치고 떨구어 죽게 만들면서 그저 위로 위로 올라갔다. 그러다가 탑 중간에서 노란 줄무늬 애벌레를 만나게 되었다. 둘은 그 탑에 대해 회의감이 있던 차 같이 탑을 내려왔다. 그리고 숲에 들어가서 사랑을 나누며 알콩달콩 살았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검은 줄무늬 애벌레에게 탑에 대해 남아있던 미련이 올라왔다. " 왜 그 탑을 내려왔을까?" " 그 탑을 다 올라갔다면 그 꼭대기에서 천국을 보았을까?" 그러다가 끝내는 노란 줄무늬 애벌레를 숲에 남겨둔 채 다시 그 탑을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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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줄무늬 애벌레는 나뭇잎을 떠나서 지금까지 혼자 길을 걸어왔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애매함과 불확실함 속에서 홀로 갈팡질팡하고 불안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많은 동료들을 만났다. 그들은 모두 탑을 향해 가고 있다. 검은 줄무니 애벌레 또한 그들이 목적으로 하는 그들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탑은 우리가 평생에 걸쳐 쌓아가는 것을 상징한다. 또한 탑은 크고 작은 삶의 목표다. 우리의 지향점이다. 탑이란 우리의 "성취 지향성"이고 " 습관이나 경쟁을 통한 축적"이다.

동화에서 탑은 동료의 시체들로 이루어진, 동료의 몸을 밟고 올라가는, 거의 맹목적으로 꼭대기를 향해 올라가는 그 자체로 만들어진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탑을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그 자신이 탑을 오르며 그 자신이 탑이 되는 것이다.

탑은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감각에 가장 확실하게 포착되는 것이다. 눈에 가장 잘 보이기 때문에 가장 확실한 것 같고 가장 실체가 뚜렷한 것 같다. 더구나 너도 나도 이 탑을 향해 올라가기 때문에 이탑에서 제외되는 것은 인생에서의 실패를 의미한다. 탑을 오르지 않으면 자신만 낙오자가 될 것 같다. 탑의 정상에 오르면 모든 성취를 다 이룰 것 같다. 그래서 탑은 그 시대의 성공의 보증수표가 되고 유행이 되고 이념이 되고 제도가 되고 법률이 된다.

탑의 꼭대기에 가까이 오를수록 사회적 지위도 오르고 경제적 안정, 부의 향유도 더 커지며 그 자신에 대한 성취감이나 만족감 모두 더더욱 커진다. 어쩌면 때때로 벌레들이 그러하듯 탑을 오르다 미끄러져 내리거나 추락하여 사라지는 일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탑의 꼭대기에 이른다는 것은 어찌 되었든 삶의 최고의 목표이자 목적이 아닐 수 없다.

자기 확인과 인정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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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꼭대기에 무엇이 있는지 실제로 본 사람은 없다. 막연히 여태껏 기어 다닌 평평한 땅바닥보다는 우뚝 솟아 있는 그 탑은 더 특별해 보일 뿐이다. 그리고 그 꼭대기에는 천국이 있을 것이라는 스토리가 떠 돌뿐이고 그리고 수많은 벌레들이 그것을 향해 오르고 있는 것이 현실일 뿐이다.

애벌레는 이제 세상으로 나왔다. 세상에는 흐름이라는 것이 있다. 자신도 모르게 시류를 따라 흘러가게 된다. 이때부터는 그 한 개인의 의지나 생각대로 움직일 수 없다. 비록 자기 자신은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인다고 생각할지라도 그렇지 않다. 자신도 모르는 상태에서 집단의식과 무의식의 영향을 받아 움직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때부터 한 개인의 결정과 선택 그리고 방황은 사라진다. 소위 모두가 향하는 방향인 대세라는 게 생긴다. 이 대세를 따르는 것은 그 개인에게 안심하고 나아갈 수 있는 지향점이 생긴 것인 반면에 또 한편으로는 경쟁이 시작된다. 그 경쟁 속에서 자기 확인을 해내고 인정을 받아야 한다. 집단속에서 자신을 확인하고 자기 위치를 만들면서 자기 정체성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자기 확인과 인정의 욕구는 탑을 만들고 유지하는 숨은 주역이다. 사회에서 자신을 확인받지 못하거나 인정받지 못하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무의식속에 대단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내가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두려움" 이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모든 힘을 다해 모든 상황에서 "내가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것"을 거부한다. 반대로 말하면 자신의 필요와 효능을 극대화 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이 자기 확인이고 자기 인정이기 때문이다.

어떤 관점으로 보면 이 세상에 군대 같은 집단이 계속해서 유지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모든 병사들이 다 같이 군대를 거부하면 군대는 존속할 수 없다. 그러나 병사들은 그들 자신의 계획이 아닌 오직 다른 사람의 지시에 따라 목숨을 건다. 전쟁에서 그들은 단순히 싸움 기계와 같이 기능한다. 그러나 계급이 올라가면 확실한 자기 지위의 확인과 자기 인정이 따라온다. 인간의 정신에 자기 확인과 자기 인정만큼 확실한 보상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집다속에서 자기인정과 자기 확인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며 앞으로 어느 정도 나아가게 되면 처음 길을 나설 때의 그 순수한 질문은 까마득하게 잊게 된다. 집단 속에서 나약한 한 개인은 용해된다. 집단을 거스를 수 없다. 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 그것은 수많은 욕망과 두려움 그리고 고통을 만들고 또한 서로에게 고통을 더하고 해소하면서 한 덩어리가 되어 탑을 이루게 된다.

진실을 일별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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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줄무늬 애벌레는 동료의 몸을 밟고 탑을 올라간다. 자기에게 밟힌 애벌레들 그리고 자신에게 떠밀려 탑에서 떨어져 내리는 벌레들의 수없는 비명소리를 듣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어느 날 어디선가 작은 소리로 '아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발 밑을 보자 자기 발아래 노란 줄무늬 애벌레가 있었다. 둘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 불확실한 탑과 탑을 오르는 경쟁에 대한 허무함 그리고 꼭대기에 있다는 천국에 대한 불확실한 느낌을 서로에게서 확인했다. 그래서 둘이 함께 탑을 내려가기로 결정을 했다.

옛날에 두 사람의 여행자가 먼 나라를 여행하다가 숲으로 들어섰다. 그 숲만 지나면 마을이 나올 것 같았지만 두 사람은 숲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비도 오는 데다 날도 어두워져 가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필사적으로 길을 찾으려 애썼지만 허사였다. 그때 하늘에서 번쩍! 하고 번개가 쳤다. 그때 한 사람은 벼락 소리와 번갯불의 번쩍임에 하늘을 쳐다 보고는 두려움에 휩싸여 정신을 놓쳐버렸다. 그러나 한 사람은 번갯불이 번쩍 할 때 자기 발밑을 보고는 길을 찾아냈다.

번개가 칠 때 하늘을 보는 사람이나 두려움에 휩싸이는 사람은 아직 미성숙한 사람이다. 번개가 칠 때는 자기 발밑을 봐야 한다.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누군가 아파! 하는 순간들이 있다. 이때 우리는 우리의 발밑을 내려다보고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봐야 한다. 남의 몸을 밟고 서 있지는 않았는지 우리는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 아파! 하는 소리에 우리가 서 있는 발 밑을 내려다본 순간, 그 순간이 우리 의식에 번개가 친 순간이다.

마치 벼락이 칠 때처럼 의식이 진리를 일별 한 이 순간에 우리는 길을 보게 된다. 이때 탑은 그 존재의 실재성이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그때 길의 방향이 바뀐다. 어쩌면 우리는 조금 더 뚜렷하고 확신에 찬 길을 볼수 있을지도 모른다.

탑이란 가장 실체가 뚜렷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마음속에만 있는 이미지에 불과한 것이다. 그것은 그저 기대나 추측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며 스스로 만들어 놓은 경계일 뿐인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규제 혹은 조건의 설정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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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의 실체를 일별 한 두 애벌레는 자발적으로 탑을 내려왔다. 그것은 저 밖의 잘못된 탑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들의 탑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이다.

이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우리는 뭔가 진실을 봤다고 믿을 때 저 밖에 서 있는 탑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것은 생각과 감각이 일으키는 또 다른 착각이다. 하나의 진실을 봤을 때 다른 모든 것들을 거짓이라고 하는 생각에 속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이 보았다고 믿는 진실을 가지 타인의 탑을 무너 뜨리기 위해 가르치고 지적하고 설명하고 다투게된다. 상대의 탑을 무너 뜨리기 위해 모든 논리와 사례를 들이대고 온갖 성인들의 가르침과 진리를 가져다 대며 논쟁한다.

그러나 이것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다. 모든 성인들의 가르침과 이 세상에 밝혀진 진리는 오직 자기 자신을 향해 적용할 때만 진리가 된다. 이때에만 어떤 분쟁도 없다. 이때에만 오직 평화만 있고 그리고 조용한 자기 성장이 있을 수 있다.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가 말했듯이 "모든 진실은 그것이 주어진 의식 수준에서만 해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이 얻은 가르침이나 진리를 상대를 향해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때 그것은 상대를 공격하는 무기가 된다. 우리가 무의식 속에 가지고 있는 타인을 가르치고 싶은 욕구는 대단히 폭력적인 것이며 상대를 강요하는 것이다. 사람은 그 자신이 스스로 허용할 때를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가르침 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요청이 있을 때는 나눔이지만 요청이 없는 상태에서의 지적(가르침)은 나눔이 아니라 강제다. 침해다. 침해는 침략을 약화시켜하는 말이다. 그사람의 의식 수준에서는 다른 해답이 있을수 있음을 우리는 너무도 쉽게 간과한다.

가정에서 남편이나 아내가 서로에게 지적하고 가르치는 것을 중단하면 평화와 사랑이 온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지적하기보다 함께 살아가면서 보여주고 올바른 반응을 보여 주면 그 아이는 평화와 사랑 속에서 스스로 성장한다.

크고 작은 사회단체 속에서 또한 상대를 가르치려는, 지적하려는, 바꾸려는 무의식적 욕망을 인식하고 멈추면 상대에게 상처를 주거나 내게 반감을 일으키거나 다툼이나 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가르치고 싶은 욕구를 인지 한다면 우리의 삶에는 진짜 평화가 올 것이다. 그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일 이외에는 일어날 일이 없음으로..

being and Do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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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마음이 맞아서 같이 탑을 내려온 두 애벌레는 함께 숲 속으로 들어가 나뭇잎에서 함께 자고 먹고 놀며 사랑을 나눈다. 탑을 올라갈 때의 그 긴장과 피로 불안 같은 것들이 이 사랑으로 치유된다.

왜냐하면 '사랑'은 존재 being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의 존재 전체에 대한 것이다. 사랑은 성취와 경쟁으로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고, 잃었던 에너지를 채워주며, 삶의 긴장을 풀게 하고 수평적으로 주변의 모든 것들과 관계 맺게 하며 그 삶을 더욱 풍부하게 확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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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반해 '탑'은 수직적이며 행위 Doing을 대표한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움직이면 주목받고 싶어 하고 , 뭔가 성취를 얻어내야 하고 그러기 위해 또 끊임없이 움직이며 사실은 그 자신을 계속해서 소모해가는 것이다.

Doing은 길에 나서면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Doing은 몸의 동작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과 생각이 움직이는 것 또한 모두 행위 Doing이다.

Doing이 시작되면서 사람의 마음속에는 욕망이 시작되고 소유욕과 성취욕이 자라게 되며 그에 따른 불안과 두려움 좌절 같은 것 또한 같이 자라게 된다. 우리 마음의 불안이 크거나 두려움이 클 때는 마음이 끊임없이 Doing으로 밀어붙여지고 있는 상태이다. 이상태는 존재 being로 돌아와서 해소된다.

현대에는 행동하기 Doing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쓰기 때문에 더더욱 이 존재하기 being가 필요하다. 우리는 휴식과 여행 혹은 명상 등을 통해 이 존재하기 being의 시간을 늘려야 한다. 과도한 행동하기 Doing는 긴장으로 인해 심신의 질병을 일으킨다. 또한 행동하기와 존재하기 간의 균형이 깨진 것 또한 질병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이대로 있는 것,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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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마음의 존재 상태는 불안과 긴장 그리고 두려움을 해소한다. 그리고 이 상태가 깊어지면 이 존재에서 고요와 평화를 느낀다. 고요, 평화, 기쁨 같은 것들은 우리 존재의 근원을 재충전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것은 바로 이 beingness '존재함'이다. 이 존재는 무조건적인 인정과 존중의 대상으로서 누구도 함부로 없앨 수 없다. 이 존재에서 온 우주가 시작되고 안정을 찾는다.

우리가 행동 Doing을 하는 것은 존재하기 being를 위해서다. 그런데 현대의 존재 being 하기는 불안하다. 그래서 이 불안을 상쇄하기 위해 끊임없이 행동 Doing에 몰두한다. 그럴수록 존재하기 being의 시간은 작아지고 그 긴장과 불안 자체가 존재 being를 위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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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탑에 올랐다가 저녁에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다. 가정은 탑의 긴장과 불안을 해소하고 그곳에서 받은 상처를 회복하며 에너지를 재충전하기에 충분한 곳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는 존재의 힘을 강력하게 뿌리내려야 한다. 탑과 사랑하는 이와의 보금자리를 매일 왕래하는 곳에 있는 우리는 행동과 존재의 균형을 잘 이뤄야 한다.

그러나 언제인가 부터 우리는 행동 Doing하기 위해 존재being하는 것 처럼 되어 버렸다. 행동 Doing을 하지 않으면 우리 존재being 자체가 불안해지는 것이다. 계속해서 성취를 하고 인정을 받고자 하는 내적인 욕구가 "~하고 싶다. ~해야만 한다.~하지 않으면 한된다" 계속해서 밀고 올라온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것"은 죽음과 같은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시 탑을 생각한다. 탑을 오를 때 우리는 뭔가 살아있음을 느낄수 있었고 존재감을 더욱 크게 느낄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존재being로 에너지가 충전될수록 더욱 커진다. 이것은 우리를 조급하게 다시 탑을 향해 떠밀어 올린다.

사랑과 탑 사이에서 갈등하던 검은 줄무늬 애벌레는 사랑을 버리고 다시 탑을 올라간다. 아직 우리의 길이 끝날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충분히 우리의 남은 경험을 다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If you want to continue on the n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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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
창밖에서 비가 내리는데 저는 창 안쪽에서 비를 흠뻑 맞았습니다.
글을 쓸 때는 일기와 상관없이, 장소와 관계없이 언제나 비를 맞는 느낌입니다.
브런치에 제 팔로워가 8천명을 훌쩍 넘은지 꽤 되었습니다.
이 글 시리즈는 페이스북이나 브런치에 공유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스팀잇에 와야만 제 글을 읽을수 있도록...^^
스팀잇에 대한 점점 애정이 초록초록 짙어져 갑니다. **


동화 전문 줄거리 요약. 저자 트리나 포올러스. 제목' 꽃들에게 희망을'

나뭇잎에서 태어난 애벌레 한 마리가 태어나자마자 본능적으로 먹고 자고 싸고 하면서 몸을 키워가다가 어느 날 문득 생각을 했다.

" 이 세상에는 먹고 자고 싸는 일 이외에 다른 무엇이 있을 거야."

그리고 그 까만 줄무늬 애벌레는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나무를 내려와 세상을 여행하기 시작한다. 먹고 자는 그 이상의 삶의 가치를 찾기 위해, 그리고 거대한 탑에 대한 말을 듣는다. 그 탑을 올라가면 벌레들의 천국을 볼 수 있기에 수많은 벌레들이 그 탑을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까만 줄무늬 애벌레가 그 거대한 탑을 찾아갔다. 끝도 없는 거대한 탑이 하늘로 솟았는데 그건 모두 벌레들의 몸이 쌓여서 만들어진 탑이었다. 수많은 벌레들이 사방에서 모여 그 탑을 오르고 있었다. 까만 줄무늬 애벌레도 그 탑을 올라갔다.

동료의 몸을 밟고 밀치고 떨구어 죽게 만들면서 그저 위로 위로 올라갔다. 그러다가 노란 줄무늬 애벌레를 만나게 되고 둘은 그 탑에 대해 회의감이 있던 차 같이 탑을 내려온다. 그리고 숲에 들어가서 사랑을 나누며 알콩달콩 살게된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검은 줄무늬 애벌레에게 탑에 대해 남아있던 미련이 올라왔다. " 왜 그 탑을 내려왔을까?" " 그 탑을 다 올라갔다면 그 꼭대기에서 천국을 보았을까?" 그러다가 끝내는 노란 줄무늬 애벌레를 숲에 남겨둔 채 다시 그 탑을 오르기 시작했다. 다시 경쟁에 뛰어 들어서 , 동료의 몸을 밟고 밀치고 떨구어 죽게 만들면서 끝끝내 있는 힘을 다해 꼭대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꼭대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올라왔던 것보다 더 높은 곳에 푸른 하늘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멀리 평원을 바라보니 자기가 유일무이한 탑이라고 생각하고 올라왔던 그 탑과 비슷한 탑들이 평원에 수없이 늘어서 있는 것을 보았다. 모두들 자기처럼 환상을 믿고 기대하고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발아래에서는 정상을 보겠다는 집념을 가진 벌레들이 끝도없이 계속해서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허탈과 허무 감속에 주저앉아 있을 때 노란 나비 하나가 나타나서 말을 걸었다. 검은 줄무늬 애벌레는 드디어 꼭대기에서 만나는 천사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 노란 나비는 노란줄무늬 애벌레였다. 그녀는 어떻게 천사와 같은 나비가 되었는지를 알려주었다.

검은 줄무늬 애벌레는 노란 나비의 격려 아래 다시 탑을 내려왔다. 그리고 숲으로 들어갔다.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려 몸에서 실을 뽑아 고치를 만들고 그 안에서 홀로 외로움과 배고픔과 추위를 견디며 겨울을 났다.

그리고 봄이 되어 고치를 뚫고 나와 검은 나비가 되었다. 그리고 검은 나비는 노란 나비와 함께 꽃밭으로 날아가서 꽃들의 가루를 옮겨주며 행복하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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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욱.들렸다가요

저도 자주 가서 뵐께요^^

학생들이 읽는 동화수준이 아니네요. 철학이 있는 생각하게 만드는 동화입니다.

네, 그런데 보통 초등학교때 읽는 동화죠^^

존재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길 바라지만 아내를 위해 딸 아이들을 위해 행동하는 게 존재를 만들어내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때로는 고요함 속에 존재의 가치에 빠지고싶기도 합니다. ^^

즐거운 저녁 되세요!

때때로 자신의 존재 자체를 즐기는 질 좋은 휴식과 명상시간도 많이 가지시면 좋겠네요. 현대는 너무 우리에게 많은 행동을 요구합니다.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우리를 움직이고 소모하고 소비하라고 압박합니다. 다들 견디고 살아나가시는 모습이 대단하게 여겨집니다. 평온한 저녁 되세요.

역시 글의 내공이 장난이 아닌것 같았어요.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은 되야 읽을 수 있을것 같네요^^;

고맙습니다. 고학년들이 읽어야 하는 책이고 평생 곱씹게 되는 책 같습니다.

그먕 동화가 아닌데요? 나중에 다시 읽어보고 싶습니다.

@홍보해

동화는 간단합니다. 제 해석이 깁니다. ^^ 홍보 감사드립니다.

@isis-lee님 안녕하세요. 모찌 입니다. @bookkeeper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가이드독 그리고 서포터님들. 수고하시고 복 많이 받으십시요.

좋은글 잘 읽고 가요~^^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누군가 아파! 하는 순간들이 있다. 이때 우리는 우리의 발밑을 내려다보고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봐야 한다. 남의 몸을 밟고 서 있지는 않았는지 우리는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공감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1,000스파 임대 및 100일 기념 보팅 이벤트 참여 감사합니다
앞으로 진행할 많은 이벤트 뿐만 아니라 제 스팀잇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리며 많은 소통 기대하겠습니다 :) 보팅하러 다니는 것을 멈추게끔 하는 글이네요.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자주 찾아갈께요. 좋은 하루 되세요.

일에 치여사는 우리의 모습을 보는것같군요
주변을 둘러보고 즐기며 사는 나비가 되어야할텐데 쉽지않네요 ㅠ

현대인들은 너무도 심하게 Doing으로 내몰립니다. 휴식 여가 여행 명상 그런게 많이 필요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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