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THE DAY 37steemCreated with Sketch.

in #kr6 years ago

설란은 여기저기 찢어지고 뭉개진 탄의 얼굴을 소독하고 연고를 발라주었다. 털북숭이 괴물에서 이젠 상처투성이의 얼굴로 변한 탄의 얼굴엔 깊은 고뇌와 어둠의 흔적이 아로새겨 있었다.

“내가 당신을 구하기 위해서 저 먼 땅속 깊숙한 곳에서 왔다는 이야기는 전에 했었지? 숨이 막혀 죽을 만큼 무섭고 고통스러운 길을 통해 나는 이곳으로 왔어.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 오직 당신 하나만 생각하고 나의 조국을 버렸던 거지.”

설란은 오래 전 꿈속에서 만났던 탄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목소리만큼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어떻게 저를?”

“어쩌면 아주 긴 이야기가 될 거야. 아마 우리가 평생 해도 다 하지 못할 그 이야기를 내가 아주 간략하게 줄여 보도록 할게. 그러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내 말을 막고 바로 물어 봐. 그래야 아주 빠른 시간에 당신을 이해시킬 수 있을 테니까.”

“그래요. 꼭 듣고 싶어요. 당신의 이야기를. 왜 내가 지금 당신과 여기에 있는 지를...”

“아주 오래 전 인간은 두 부류로 나뉘어서 싸우고 있었어. 그 중 한 부류가 싸움에 패하고 지하로 숨어들었지. 바로 나의 조상이야. 당시에는 지구의 지표가 지금처럼 딱딱하지 않아서 우린 적의 공격을 피해 아래로 깊이 땅굴을 파면서 내려갔지. 아주 오랜 시간동안 우리 종족은 점점 아래로 이동해 바다와 맞닿아 산소를 공급받을 수 있는 곳에 정착했어.”

“아주 깊은 곳이겠네요.”

“인간이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팔 수 없는 그 깊이지. 왜냐하면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조금씩 파내려갔거든. 우리가 땅을 파온 세월 이상으로 기술이 발전해야 할 거야. 지표는 점점 굳어가고 있으니까. 어쨌든 우리 종족은 그 곳에서 많은 기술과 문화를 이루었어. 하지만 언제나 우리가 살았던 지상을 동경해 왔어. 지금 내가 있는 이 곳은 우리 종족이 살았던 땅이고 앞으로 우리가 살아야 할 땅이니까.”

“무슨 만화 같은 이야기네요. 그런데 왜 저를?”

“우리는 해마다 건장한 남자들을 선별해 지상으로 올려 보내서 이곳의 여자들과 결혼을 시키지. 지상의 인간들과는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같은 인간이고, 서서히 지상에 적응해 나가기 위해서지.”

“그렇다면 지상에서 당신 종족들과 결혼한 여자는 당신들의 정체를 알고 결혼한 건가요?”

“물론이요. 바로 당신처럼 그 여자들도 당신처럼 그 남자의 꿈을 꾸게 되고 점점 그 남자에 대한 호감을 갖게 되는 거지.”

“이건 너무 일방적인 주입이잖아요. 마치 당신들의 존재를 강제로 심어놓는 거니까요.”

“아니오. 만약 당신이 나를 거부했다면 내 기억은 그저 악몽으로 기억되고 나 또한 당신과의 인연은 없는 것으로 되고 말았을 거야. 지금 당신이 나의 이야기에 전혀 거부감이 없는 것처럼 그 여자들도 그랬을 테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사랑으로 결혼한 거야. 그러니 일방적인 것은 아니야.”

“그런데 왜 제가 당신 말을 믿는 거죠? 이것도 계획된 건 아니죠?”

“아무리 과학과 기술이 발전해도 인간의 마음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어. 지금 당신이 느끼는 것이 바로 진정한 당신의 마음이야.”

“언제부터 당신이 제 꿈에 나타났는지는 몰라도 정말 한 번도 당신을 무서워하거나 싫어했던 적이 없는 게 신기해요. 오히려 꿈속에서 당신을 만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아마 당신이 당신 스스로를 자각하던 그 순간부터 내가 당신 꿈에 나타났던 걸 거야. 그때 당신이 나를 거부하면 그것으로 나와 당신의 인연은 끝이야. 당신은 지금과는 다른 평범한 삶을 살고 있겠지.”

“당신이 직접 나를 선택했나요?”

“당연하지. 우린 사춘기가 되면 지상에 나갈 수 있는 시험을 치르지. 그 시험에 뽑힌 사람들은 따로 모여 지상에 올라가 지상의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갈 수 있게 교육을 받고, 그 모든 교육이 끝나는 사람만이 지상에 올라가 자신과 살게 될 여자를 고르고, 그녀와 꿈을 통해 교감을 하게 되지.”

“당신도 그렇게 저를 선택했군요.”

“아니! 나는 아쉽게도 그 시험에 떨어졌어.”

“그런데 어떻게 지상에 올라온 거죠?”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해. 사실 내 아버지가 바로 지하세계의 왕이고, 나는 왕위를 물려받을 왕자들 중의 셋째지. 또한 나는 지상에 올라갈 사람들을 교육하는 교관이기도 하고.”

“왕자셨군요.”

“그런데 내가 교관으로서는 안 될 일을 하고만 거야. 우연히 지상의 여자 후보 중에서 당신을 봤고, 당신의 꿈속에 들어갈 사람과 나를 바꿔치기 한 거지. 그 사실이 탄로 나면 나는 왕자에서 쫓겨나고 사형을 당하게 될지도 모르지. 그런데 나는 조작을 하고 만 거야. 다행히 당신이 나를 거부하지 않았고, 당신과 짝이 될 그 사람을 당신이 거부했던 거지. 한 번 거부당한 여자는 다시 후보에 오르지 않기 때문에 당신과 내가 교감을 하고 있었던 것을 아무도 몰랐던 거지. 그리고 나는 당신이 위험에 처하게 되자, 교관 자격으로 알고 있던 비밀 통로를 통해 당신이 죽기 직전에 나타났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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