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THE DAY 34
윤재룡 박사와 파스파, 넬사, 그리고 정화재단 회원들은 공중부양을 한 채 우주 한 가운데 무리지어 떠 있다. 마치 무중력상태의 우주인을 보는 것처럼 그들은 우주 한 복판에 미아처럼 떠있는 것이다.
사실 모두 놀라움과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깊은 심연 속으로 떨어져버릴 것 같아 손끝 하나 발끝 하나 꼼짝거릴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맞잡은 손에 잔뜩 힘을 주고 있었다.
“휘리릭”
그런 비슷한 소리를 들은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 어느새 그들 앞에 잿빛 외투를 걸치고 지팡이를 든 피에린이 우뚝 서 있었다. 여전히 당당하고 위엄 있는 모습이었다.
“윤재룡 박사! 또 보게 되는군. 그대들이 나를 불렀지만, 내가 바쁜 관계로 여러분을 이리로 불러들였다. 어차피 인간이란 제 눈으로 봐야 믿는 어리석은 존재가 아닌가? 자, 두 눈으로 보아라! 너희들은 지금 우주의 한복판에 와 있는 것이다.”
피에린이 예의 천둥 같은 음성으로 말했다. 피에린의 말은 뒤통수를 때리고 귓전을 스쳐가고 때로는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지나갔다. 고감도 스피커를 설치한 음악 감상실에 앉아 있는 것처럼 피에린의 음성은 선율이 되어 우주 공간을 맴돌았다.
“피에린! 이들에게 제발 공룡 멸종의 과정과 인류의 종말이 연관되어 있음을 들려주십시오. 당신의 고귀한 입을 통해서 말입니다.”
윤재룡 박사가 피에린에게 정중하게 부탁했다. 윤재룡 박사는 피에린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 줄 잘 알고 있었다. 인류의 멸종을 막기 위한 피에린의 노력은 인간이 오랜 세월 갚아야 할 커다란 빚이자 은혜였다.
“윤재룡 박사! 당신의 열정에 정말 감복했다. 당신 같은 인간들만 있었다면 이처럼 불행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을! 어쩌면 천기누설이 되어 내가 영원히 메신저 자격을 박탈당하게 될지도 모르는 비밀을 지금부터 너희들에게 말해주겠다. 이것이 내가 너희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다.”
“고맙습니다.”
윤재룡 박사가 감격에 겨워 말했다.
“성호르몬에는 남성호르몬과 여성호르몬이 있다. 이처럼 항상 상반된 두 개가 존재하는 것처럼 호르몬이 있으면 또 호르몬 교란물질이 있는 것이다. 공룡이 멸종하게 된 것은 바로 이 교란물질에 의한 생식기능의 퇴화인 것이다. 그 교란 물질은 지구에 운석이 충돌하며 발생한 것으로 공룡 뿐 아니라, 몇몇 생물도 공룡과 같이 멸종한 것이다. 그때가 바로 2600만 년 전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생식기능의 퇴화로 종족을 번식하지 못하여 서서히 지구상에서 사라져 간 것이다. 어쩌면 너희들도 그와 똑같은 과정을 겪게 되리라.”
“지금 지구에 운석이나 혜성의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말입니까?”
윤재룡이 내친 김에 계속 물었다.
“그것은 나도 알 수 없다. 다만 외계의 물질이 아니더라도 너희들은 스스로 교란물질을 만들어내고 있으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느냐? 다만 그 교란물질이 운석의 충동에 의한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누적된 지구의 환경오염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비단 인간 뿐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물을 멸종시킬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정말 심각하군요.”
“내가 걱정하는 것도 바로 그 점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의 멸종이 화성이나 다른 행성의 대량멸종처럼 우주의 질서에 엄청난 혼란을 초래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화성의 대량멸종설이 사실이었군요?”
윤재룡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윤재룡 박사! 그렇게만 알고 더 이상 묻지 마라. 오늘 내가 행한 천기누설만으로도 나는 당신의 열정에 충분한 보답을 해준 것이니까.”
“그러면 생식기능의 퇴화란 정자나 난자의 급격한 감소나 생산 중단을 말씀하시는 거지요? 그래서 결국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멸종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멸종만 일어난다는 것이겠죠?”
“아직은 그때가 아니다. 지금으로서는 진실한 마음과 육체로 이루어지는 교접만이 허락될 뿐이다. 즉, 좋은 종자만을 남기는 시작 단계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그 단계로도 충분하지 않다는 결론이 나면 바로 마지막 단계가 실행될 것이다.”
그때 갑자기 장막을 찢듯 우주의 한 자락을 들치며 카엘의 무시무시한 얼굴이 불쑥 나타났다. 카엘의 손에는 보기에도 무시무시하게 생긴 커다란 창이 들려 있었고, 그 창에서 시뻘건 빛이 타는 듯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피에린! 네 이 놈! 감히 천기를 누설하다니...”
카엘이 벼락 치듯 큰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는 거기 모인 사람들의 고막을 찢을 듯이 날카로웠고, 모두들 그 소리에 놀라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몇몇 회원들이 머리를 움켜쥐고 두통을 호소하며 몸을 마구 비틀었다.
“가증스러운 놈! 카엘! 너야말로 인간의 마음을 조정하여 온갖 혼란을 초래하지 않았느냐? 우주의 흐름은 무조건의 파괴가 아니라는 것을 아직도 모르겠느냐?”
피에린도 역시 지지 않고 맞받아 소리쳤다. 둘이 말을 주고받을 때마다 우주가 묘하게 일그러지고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덩달아 윤재룡 박사 일행도 파도에 휩쓸린 조난자처럼 이리저리 휘둘렸다.
“파괴란 새로운 창조의 밑거름이다. 우주는 생성과 소멸을 거듭해 왔고, 그 과정에서 파괴란 생성을 위한 초석이었다. 피에린! 너야말로 우주의 질서에 역행하려 드느냐? 이제 인간과 지구는 스스로 소멸해 새로운 창조를 해야 할 때인 것이다.”
“카엘! 네 놈의 속셈을 내가 모를 줄 아느냐! 너는 인간의 멸종을 부추겨 지구의 종말을 초래하고, 나아가 우주의 기본질서마저 깨뜨리려 하고 있다. 너의 구미에 맞는 새로운 종족을 탄생시키려고 하는 더러운 야심에 인간과 지구를 이용하지 마라.”
“건방진 놈!”
카엘은 창을 높이 쳐들어 피에린에게 겨누며 소리쳤다.
“받아라!”
피에린은 지팡이를 들어 카엘과 마주 겨누었다.
“쾅!”
카엘의 창과 피에린의 지팡이 서로 강하게 부딪혔다. 둘 사이에 엄청난 천둥과 눈이 멀 듯 한 번개가 치며 천지가 뜨거운 화염에 휩싸였다. 검은 연기와 함께 화염이 활활 타올라 우주로 넓게 퍼져갔다.
잠시후 화염이 걷히자, 카엘은 사라지고 없었다.
“자! 어서들 지구로 돌아가라!”
피에린은 윤재룡 박사 일행에게 서둘러 명령했다. 피에린이 지팡이를 들어 올리자, 섬광이 번쩍 일어나며 온 천지가 파랗게 변했다. 파란 기운이 사람들을 휘감아 돌기 시작하자, 회오리가 크게 생겨났다. 사람들을 둘러 싼 그 회오리가 피에린의 지팡이가 가리키는 대로 지구를 향하여 강하게 내리꽂혔다. 회오리에 감싸인 사람들은 빠르게 자기들이 온 곳으로 되돌아갔다.
Mission accomplished. It's appeal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