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바람의 나날 39steemCreated with Sketch.

in #kr6 years ago

상병을 단 지 한 달 남짓 지난 어느 날 갑자기 차출명령이 떨어졌다. 나는 그 길로 강원도 어느 산골에 배속되었다. 거기서 현석을 만났다. 나도 현석도 한 눈에 서로를 알아보았다.

잊을 수 없는 고 삼의 그 가을 산행에서 우연히 건달 한 명을 죽이고 우리는 서로를 멀리했었다. 학교에서 마주쳐도 외면했고, 조금씩 그 기억을 잊듯, 서로를 잊어갔다. 물론 가끔씩 생각이 나곤 했지만, 몸서리치며 그 생각들을 떨쳐버리곤 했었다.

어쨌거나 거기 모인 병사들과 얘기를 해보니, 모두 나와 현석처럼 갑자기 전출명령을 받은 모양이었다. 며칠 동안 훈련도 없었고, 보직도 주어지지 않았다. 우리들은 배불리 먹고 매일 밤 열리는 술판과 오락회로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군단 지휘관이 내려오자, 모두 강당에 집결되었다. 그곳에 배속되고 처음 갖는 전체 모임이었다. 모인 인원이 모두 오십여 명 남짓했는데, 모두들 강한 인상과 건장한 체격들을 소유하고 있었다.

"제군들은 각 군단에서 우수한 장병들로 선발되었다는 점을 밝혀둔다. 여러분 스스로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우리는 특공대 중의 특공대, 즉 특수정예부대를 만들려고 한다. 여기 모인 제군들이 그 주축이 될 것이다. 그래서 오늘 오후에 그 첫 임무가 하달된다. 제군들은 이인 일조가 될 것이다. 지도와 나침반, 하루 분의 식량만이 주어진다. 낙하된 지점에서 지도에 표시된 목적지까지 단 시일 내에 집결하는 방위 찾기 훈련이다. 이 훈련의 목적은 전쟁 발발 시 제일 먼저 적 후방에 투입되어 적진을 혼란케 하고 요인을 암살하거나 체포하는데 있다. 모두 무사귀환을 빈다. 이상이다.”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고생 좀 하게 생겼다는 정도의 짜증 섞인 푸념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하기는 거기 모인 대원들은 모두 무술유단자에 건장한 체격과 강인한 체력을 가진 자들이었다.

나와 조를 이룬 사람은 강조일이라는 상병이었다. 백팔십오 센티미터가 넘는 큰 키에 얼굴은 가마솥 솥뚜껑만큼 넓적했고, 몸집도 힘 좋은 머슴을 연상시킬 정도로 크고 우람했다.

해가 거의 땅 밑으로 사라져 가는 어스름한 시각에 우리들은 낙하되었다. 나는 낙하산 줄을 조정하며 먼저 내린 강 상병을 쫓아 하강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아래쪽은 온통 숲과 산등성이뿐이었다. 그제야 이것이 단순한 방위 찾기 훈련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건 생사를 건 모험과 다름없이 보였다. 저 우거진 산 속을 헤쳐 나오는 것이 쉽지만은 않겠다고 생각하며 산등성이에 무사히 내렸다. 낙하산을 접어서 바위 뒤에 은폐하고 강 상병을 찾아 나섰다. 강 상병은 백여 미터 떨어진 숲에 착륙해 있었다.

쭈그리고 있는 모습이 어쩐지 이상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강 상병은 다리가 부러져 있었다. 나무 위로 곧장 떨어지는 바람에 낙하산이 찢기면서 수직으로 곤두박질친 모양이었다.

나는 훈련받은 대로 나무를 잘라 부목을 대고 부러진 다리를 고정시켰다. 난감했다. 정상적인 몸이라면 모를까, 한 쪽 다리가 부러진 상태로 이 숲을 빠져나가기에는 역부족일 것 같았다.

"미안해. 이제 어떻게 하지?”

강 상병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겁먹은 표정이었다. 강 상병도 하강 도중에 험준한 산세를 보았을 테니,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을 터였다.

"일단은 움직여 보자고. 여기 위치가 어디지?”

나는 지도를 짚어 나갔다. 나침반을 놓고 방향을 정한 뒤 강 상병을 부축해 걷기 시작했다. 여름에 접어들고 있어서인지 이름 모를 풀과 꽃들이 온 숲을 빽빽이 메우고 있었다. 게다가 길도 없는 풀숲을 헤치고 나가려니 더욱 힘들었다. 지도대로라면 두 개의 산등성이를 넘고 두 개의 계곡을 지나야만 했다. 강 상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간은 지체되었고, 어둠은 서서히 밀려들었다. 플래시를 켜고 밤새도록 숲을 헤치고 나아갔다.

"야, 마치 월남전에 참전한 것 같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정글이 다 있었네.”

이렇게 떠들던 강 상병도 부러진 다리 때문에 쉽게 지쳐 버렸다. 지친 강 상병 때문에 쉬어 가는 간격이 점점 잦아졌다. 시간이 갈수록 강 상병의 얼굴은 점점 밤의 색을 닮아가고 있었다.

"애초에 이런 발상 자체가 무모한 것이었어. 어떤 새끼가 책상에 앉아 이따위 계획을 세웠는지 대갈통을 부숴 버리고 싶다.”

강 상병은 쉬어 갈 때마다 한 바탕 푸념이나 욕지거리를 늘어놓곤 했다. 강 상병은 두 개의 긴 막대를 목발처럼 사용했다.

나는 양손에 플래시를 들고 강 상병보다 앞서 길을 만들며 나아갔다.

컴컴한 한밤중의 숲은 그야말로 공포의 도가니였다. 이상한 짐승의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리는가 하면 바로 옆에서 풀잎 스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언제 어디서 뱀이나 맹수가 달려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나는 칼을 빼서 입에 물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땀은 목을 타고 가슴으로 주르르 흘러내렸다. 하지만 옷을 벗을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날카로운 잎이나 뾰쪽한 가지에 살갗이 찢어질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이봐, 강재! 자네 먼저 가는 게 어떨까? 먼저 가서 구조대를 보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지만 그것은 위험한 도박이었다. 제 시간에 여길 빠져나가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보장이 없을 뿐 아니라, 다시 강 상병이 낙오한 곳으로 정확히 찾아올 수 있으리라는 확신도 없었다. 물론 그 말 또한 강 상병의 진심이 아니라는 것쯤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혼자 떨어져 습한 숲의 한복판에 누워 있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강 상병도 미안한 마음에 그런 얘기했을 것이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때때로 길게 수식어를 붙여 장황하게 늘어놓는 말보다 짧게 끊어 내뱉는 말이 더 신뢰감을 줄 때가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특히 깊은 상심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는 신뢰감을 주는 것 이상의 확실한 처방전은 없는 것이다.

밤이 지나고 날이 밝아오자 걷기가 한결 수월했다. 앞이 잘 보이는데다가, 뱀이나 맹수의 습격 위험이 훨씬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숲은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사실 애초부터 길이라는 것도 없었으므로, 현 위치마저 확실하지 않았다. 우리는 지도와 나침반이 가리키는 대로 북쪽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내가 여기서 벗어나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게 뭔 줄 알아?”

강 상병은 갑자기 그렇게 물었을 때, 나는 강 상병이 부목 매는 것을 도와주고 있었다. 벌써 부목을 네 번째 고쳐 매는 중이었다. 이번에는 매듭을 확실히 하느라, 제법 시간이 걸리는 참이었다.

"뭔데?”

"히히…….”

강 상병은 실성한 놈처럼 히죽 웃었다.

"제일 먼저 사단장부터 쏘아 죽이는 거야. 그 다음엔 이런 터무니없는 훈련을 발상한 녀석의 혀를 칼로 도려내겠어.”

강 상병은 그렇게 말하며 칼을 꺼내 자신의 낯짝처럼 널찍한 바위 위에 쓱쓱 갈았다. 잘 손질된 칼날이 상어 이빨처럼 날카롭게 번쩍였다.

강 상병의 광기 띤 눈을 보며, 이 자식을 죽여 버리고 혼자 갈까,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했다.

강 상병은 잦은 신음을 뱉어내면서 끈덕지게 나를 따라 걸었다. 다행히 숲 속을 걸어가니 햇볕에 직접 노출되지 않아 살갗이 따갑지는 않았다. 이틀 밤낮을 걸었는데, 겨우 산등성이 하나를 넘었을 뿐이었다. 강 상병의 부러진 다리는 이미 퉁퉁 부어 있었다. 멀쩡한 나도 다리가 붓고 발바닥이 다 헐 지경이었다. 강 상병은 성한 다리마저 심하게 물집이 잡혀 있었다. 지팡이를 짚고 오느라 그의 손바닥도 온통 짓물러 있었다.

식량은 벌써 바닥이 났고 허기는 자주 몰려들었다. 쉴 때마다 수시로 먹어댔기 때문에 식량이 여섯 시간 만에 바닥이 나 버렸다. 식량이 바닥나자, 눈에 보이는 대로 이름 모르는 작은 열매들을 따먹었다.

우리는 수통 하나만 남기고, 침낭과 배낭까지 모두 던져버렸다. 어깨에 총만 달랑 걸머진 채 계속 걸었다. 지도도 땀에 젖어 찢어지고 너덜거렸다. 오직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만 철썩 같이 믿은 채 그들은 비틀비틀 걸어갔다.

어디선가 신음소리가 났다. 잠깐 쉬려고 누웠는데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몸은 천근만근 무겁고 손끝 하나 까딱하기 싫었다. 차라리 이대로 죽는다 해도 하나 아쉬울 게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옆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가 자꾸 귀를 괴롭혀 억지로 눈을 떠 몸을 일으켰다. 신음소리는 조금 떨어져 누운 강 상병의 입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쪽을 자세히 쳐다보니, 강 상병의 옆구리가 피로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결국 자해를 한 모양이었다.

강 상병한테 달려가 그의 웃옷을 찢었다. 칼이 깊이 박힌 옆구리에서 피가 샘물처럼 몽글몽글 솟구치고 있었다. 강 상병의 옆구리에서 칼부터 뽑아냈다. 다행히 강 상병의 주머니에 지혈제와 붕대가 들어있어 일단 응급조치부터 했다.

"여자가 있어. 이제 몇 개월만 있으면 내 애를 낳을 여자가. 죽으려고 했는데……, 너한테 폐 끼치고 싶지 않아서 죽으려고 했는데, 그 불쌍한 여자와 애 때문에 죽을 수가 없었어. 나, 죽지는 않겠지?”

막상 죽으려고 하자, 겁이 나는 모양이었다.

"제대하면 지겨운 도시 생활 그만 청산하고 시골에 가서 어머니와 형수님 모시고 땅이나 파며 살려고 했는데…….”

강 상병은 눈을 감고 신음을 섞어가며 말을 했다. 그의 눈가에 물기가 촉촉하게 번져나고 있었다.

"비록 몸은 만신창이가 됐지만 좋은 여자였어. 힘들게 임신하고 이제 몇 개월이면 나도 애 아버지가 되는데, 여기서 이렇게 죽을 수밖에 없다니……. 나, 살고 싶어. 나도 왜 내가 이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어.”

강 상병은 끝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남자가 흘리는 눈물은 어쩐지 비장하다. 특히 다 큰 남자의 눈물이야 말해서 무엇 하랴!

"네가 죽으면 누가 사단장 머리통에 총알을 쑤셔 박겠냐? 걱정 마! 너 같은 독종은 내 손자 장례 치를 때까지 거뜬하게 살아남을 테니까!”

나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계속 지껄였다. 세상 참 더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맛있는 것 먹으며 즐거워 할 때, 애인 만나서 밀어를 속삭일 때, 모든 사람이 행복에 겨워 깔깔댈 때, 여기 이렇게 유폐된 채, 죽음을 보고, 또 죽음을 생각하며 입 안 가득 찬 침이나 뱉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항상 그랬다. 행복에 겨워 죽는 사람이 있었다면, 어딘 가에는 불행에 치여 죽는 부류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불행에 치여 죽는 축에 끼여 있었다.

나는 강 상병이 짚고 다니던 두 개의 막대를 나란히 내려놓고 군복을 벗어 둘둘 감았다. 강 상병의 웃옷도 벗겨서 묶었더니 간이침대처럼 되었다. 강 상병을 그 위에 눕히고 두 막대 끝을 들어 수레처럼 끌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잘 끌려갔다.

"미안해! 나 때문에…….”

"헛소리 집어치우고, 너는 사단장 머리통에 구멍 낼 생각이나 하고 있어. 이마 쪽을 쏠 건지, 뒤통수를 쏠 건지, 잘 생각해 봐. 하지만 뒤통수를 쏘는 것은 너무 비겁하지 않을까? 차라리 관자놀이가 적당하겠어. 너는 왼쪽 관자놀이를 쏠 것인지, 오른쪽 관자놀이를 쏠 건지나 생각해 두라고.”

강 상병을 끌고 가며 계속 지껄였다. 사실은 나도 두려웠다. 그래서 지껄이는 편이 한결 마음이 편했다. 침묵을 지키노라면 오히려 불안감만 증폭되었다.

그렇게 한참을 끌고 가다 왠지 이상한 예감이 들어 끌 것을 내려놓고 보니, 강 상병은 눈을 부릅뜬 채 죽어 있었다. 동그랗게 뜬눈이 눈부시게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강 상병의 눈을 감겨주었다. 이것으로 벌써 여섯 번째의 주검을 보게 되는 것이었다.

첫 낙하훈련 때 낙하산이 펴지지 않아 그대로 추락해 죽은 김 일병. 유격훈련 중 발을 헛디뎌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은 장 이병. 한미 합동 군사훈련 중 유탄에 맞아죽은 이 하사. 이 하사는 내 바로 옆에서 머리가 날아가 목에서 피를 콸콸 쏟으며 죽어 넘어졌다. 모든 죽은 이들이 떠올랐다.

나는 강 상병을 묻어주었다. 그의 무덤에 착검한 그의 총을 꽂아 강 상병의 묘지임을 표시하고 잠깐 묵념을 올렸다.

죽은 이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강 상병이 없어지자, 한결 움직이기 수월했다. 군화를 벗어버리고 메리야스도 벗어버렸고 군모도 집어던졌다. 군복 바지를 걷어 종아리 위로 올려붙이고 뛰어서 산등성이를 넘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는지 나 자신도 놀랠 정도였다. 달리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 나는 단거리 주자처럼 뛰었다. 숨이 턱에 차고 심장이 터질 것 같이 팽창되어도 나는 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뛰는데 누가 갑자기 총을 들이대며 앞으로 불쑥 나타났다. 나는 너무 놀라서 그만 심장이 멎어버리는 줄 알았다. 그 역시 강재처럼 군복을 걸친 사내였다.

"너, 강재구나!”

그렇게 말한 사람은 바로 현석이었다. 현석은 햇볕에 타서 쉽게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얼굴이 새까맣게 변해 있었고, 목도 많이 쉬어 있었다. 이틀 새에 사람이 그렇게 변할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내 모습 역시 저렇게 변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현석에게 다가갔다.

"동료는?”

"네 짝은?”

현석이 먼저 내게 물었고, 나의 물음도 뒤를 이었다.

"죽었다. 너는?”

"탈진해서 숲에 눕혀놓았어. 죽지는 않았는데 이 새끼가 꼼짝도 안 해.”

"그럼, 어서 가자.”

나는 그렇게 말하며 지도와 나침반을 꺼내 방향을 확인하려고 했다. 그런데 현석이 다짜고짜 지도와 나침반을 낚아채더니, 나침반은 군홧발로 밟아 부숴 버리고, 지도는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갑작스런 현석의 행동을 지켜보다 울컥 화가 나서 현석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현석이 잠깐 정신이 나간 것으로 생각되었다.

"너, 아직도 몰라? 지도도 나침반도 모두 가짜라고!”

현석은 쓰러지며 그렇게 소리쳤다.

"개새끼들이 우릴 가지고 노는 거라고. 그냥 숲에 던져놓고 몇 놈이나 살아 돌아오는지 실험하고 있는 거라고. 나침반과 지도만 믿었다가 같은 곳을 세 번씩이나 맴돌았어.”

그제야 내가 모르모트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놈들이 내게 진수성찬을 차려주고 즐거운 여흥과 오락을 제공해 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속아서 억울하다는 생각도, 이러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저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을 뿐이었다.

"먼저 계곡을 찾아야 해. 물은 아래로 흐르는 법이고, 물을 따라가다 보면, 인가를 만날 수 있을 거야.”

물이라면 내가 알고 있었다. 강 상병을 묻은 근처에 계곡이 흐르고 있었고, 그 계곡에서 수통 가득 물을 채웠었다. 나는 지도만 믿고 그 계곡을 그냥 지나쳤었다.

내가 그 얘기를 하자, 현석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현석과 나는 서둘러 계곡 쪽으로 향했다. 우리는 손을 맞잡고 뛰기 시작했다. 한참을 뛰다 보니, 내가 강 상병과 지나쳤던 계곡이 나왔고, 우리는 계곡을 끼고 아래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뛰다보니 멀리 붉은 깃발이 펄럭이는 것이 보였고, 기쁨보다 지독한 구토가 솟구쳤다.

"이 시발! 개새끼들아!”

나는 몰려든 장교들에게 둘러싸여 그렇게 소리치고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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