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팝니다/ 치열했던 재수 시절 일기.

in #kr8 years ago (edited)

벤티님의 이벤트에 참여합니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인생 첫 실패를 경험했다.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가장 자신있던 국어를 완전히 망쳤고 가려던 대학에 모두 떨어졌다. 정시에서 붙은 학교가 있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은 아니라고 생각되어 붙은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타고 돌아갈 배를 태워버리자는 생각이 들어 등록도 하지 않고 기숙학원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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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2015년을 보여주는 스터디 플래너.
'잃은 것보다 잃었기 때문에 얻은 것을 기억하는 것. 당한 것보다' 당했기 때문에 배운 것을 발견하는 것. 되돌릴 수 없는 일에 대하여 그것보다 현명한 복수는 없다.'

재수하는 동안 많은 것을 배우자고. 수능 대박 이상의 것을 가져가자고 늘 결심했었다.

2월 21일. 처음 입소한 날.
기숙학원을 고른 이유는 내가 속세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다. 친구들을 사랑하고 TV 도 좋아하고, 꾸미는 것도 좋아한다. 엄격한 규제가 필요한 사람이다. 나는.

2월 24일/2월 25일.
입소한 지 3주까지는 집에 전화도 못하게 했다. ㅠㅠ

첫 날엔.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눈물이 막 났다. 내가 2층 침대를 썼는데 천장에 야광 별 스티커가 붙여져 있었데 그걸 보자마자 괜히 우울해서 숨죽여서 울었었다. (청승)

2월 말에 입소했으니, 2월엔 공부보단 빨리 학원 시스템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3월부터 정말 달렸다. 정말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그래서 나름대로 자투리 시간 활용할 규칙도 만들었다.

당시의 스터디 플래너다. 내 고민이 묻어나는 하루
그리고. '난 왜 화장실을 자주갈까?ㅠㅠ;'

이건 재수시절 내 고민이었다. 쉬는 시간에 공부해야되는데ㅠㅠ 내 몸아 왜 그래..

첫 시험을 쳤다. 나는 원래 점수에 있어 욕심쟁이인데 쌤이랑 상담하고 그런 것들 부터 고치기로 했다. 작년 실패의 원인이니까.

그리고. 드디어. 나의 첫 휴가.
제주도로 바로 내려갔다. 이 사진들은 학원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사진들 ㅋㅋ 저 오른쪽 사진에 책가방 매고 학원 나가는 게 나다. 정말 조그맣다. 고향이 같은 제주 친구랑 택시타고 공항에 가려고 나가는 중. 우리 학원은 남녀대화가 금지라서 아주 마지막까지 스릴이 넘쳤다. 남녀대화가 걸리는 순간 학원에서 퇴소해야한다.

나의 3월은 참! 대견했다. 봄이 오면서 학원 산책로에도 꽃이 폈고 휴가를 나갔다가 예뻐진 친구들을 보면서 조금 부럽기도 했다.

휴가를 갔다오고 그렇게 달리고 달려 6월.

6월은. 흔들릴 시간이 없었다. 왜냐면, 대망의 6평(6월 평가원 시험)이 있으니까.
내 단기목표는 6평에서 만족할 만한 성적을 내는 것이었다.

그냥 열심히 했다. 우울하고, 속상하고 그런 건 신경 쓸 시간도 없었고 6평을 잘 못보면. 지금까지의 노력들에 내가 의심을 품게 될까봐 너무 두려웠다.

대망의 6평. 전날부터 떨렸다.근데 고3 때랑 느낌이 달랐다. 뭔가 기대가 됐다. 시험을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안들었다.
'준비가 됐다. 실수하지 말자.'이런 느낌 ㅋㅋㅋ

결과적으로. 나는. 6평 대박을 터뜨렸다.

국어 100점 / 수학 100점/ 영어 98점/ 윤리와 사상 50점/ 한국사 38점/ 베트남어 45점.

한국사가 아쉽긴 했지만 처음 선택한 탐구과목이었으니 괜찮았다. 그리고. 베트남어를 잘 봤으니까. 만족했다. 국영수 합 300점 만점에 298점.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난 이게 내 인생 최대 점수였다.ㅠㅠ 시험 난이도가 쉽기도 했지만 내가 늘 갖고 있는 나의 가치관? 이라고 해야될까. 그런게 있는데 '시험이 쉬워도 100점은 다르다, 어떤 집단에서든 1등은 어려운거다.'

그래서 나의 100점은 정말 정말 소중했다. 노력을 보상받은 기분이었다.

이날 처음으로 기뻐서 울어봤다. 마음이 흔들릴까봐 집에 전화도 잘 안했었는데 이날 집에 전화도 했다! ㅎㅎ

글고 이 날 학원에서 뷔페를 차려줬는데 점심에 긴장돼서 밥을 잘 못먹었기 때문에 엄~청 많이 먹었다. 행복했다. ㅋㅋㅋㅋㅋㅋ

시험이 끝나고 6월은 휴가를 못갔다. ㅋㅋㅋㅋㅋㅋ
화나서 죽을 뻔 했다.(하. 휴가만 보고 버텼는데ㅠㅠ_

결국 우리는 휴가를 못 갔고 학원에서 다 같이 하루 쉬었다. ㅠㅠ
학원에서 킹스맨을 보여주셨다. 금기된 곳에서 일탈하는 기분. 뭔가 너무 이질적이라서 재밌었다.

나의 6월은 공부한 만큼 결과가 나와줘서 정말 고마웠고 주변에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이 있어 행복했다!

'재밌게 공부할 것! 졸지 않을 것! 내년 3월을 상상할 것!'
7월은 정말 재밌게 공부했다. 개념도 다 정립한 상태였고 모자란 부분 채워놓는 시기였다.

수업 들을 때 음. 이건 정말 다시 볼 필요 없겠다 하는 것들은 그 자리에서 X 표 치고. 그렇지 않은 것들만 반복해서 여러번 봤다.

"선생님 내일 월요일이니까 내일부터 새출발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쓸게요. 죄송해요."
ㅋㅋㅋ 우리는 스터디 플랜을 주기적으로 검사받아야하는데 이때는 계획을 열심히 안짰나보다.
역시 난 인간적이다.

학원에서 가져온 사진 ㅋㅋㅋ
7월엔 경찰대 시험도 봤다
국어만 잘봤다. ㅋㅋㅋ 국어에서 두문제 밖에 안틀려서 살짝 설렐뻔 했지만 수학에서 채점을 접었다.

간만에 바깥 밥을 먹을 수 있었음에 만족했다.

나는 그 날 공부할 때 중요한 것들을 적어놓고. 자기 전에 한 번 플래너쭉. 읽고 자고.
다음 날 아침에 다시 한 번 읽곤 했다.

정말 좋다.

내가 어떤 공부를 했는지 알 수 있고. 내 공부가 딱 내 손 안에 잡히는 느낌?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었다! 이렇게 축적해놓고. 일요일 저녁에 일주일 치 싹 읽고 다시 한 번. 새기고. 그럼 정말. 공부가 착착착 진행되는 듯한 행복한 느낌이 든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말.
'불안할수록 연필을 잡아라.'
정말이다. 8월에 공부를 정말 많이했는데 솔직히 불안해서 그랬던 것 같다.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 시간을 쭉쭉 돌리기로 한다.

9월 중순 부터는 책 버리기에 돌입했다.
수험생은 책이 많다. 이비에스, 기출도 봐야되지만 학원 학기 별로 책이 쏟아져 나오니까..
프린트도 프린트고 .. 다 보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럴 때 잘 판단해야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배웠던 책들. 모르는 부분만 찢어내고. 버리기 시작했다.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던 10월이 찾아왔다.
10월엔 연대 논술이 있었고. 그 날을 기점으로 D-40이 깨졌다.

그리고 나에게 해주던 말.

'나는 큰 일 할 사람이니까, 이런 사소한 것에 압도되어선 안된다. 쫓기지 말 것. 감당할 수 있다. 걸맞는 사람이 되기.'
정말이다. 대학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그냥 과정일 뿐. 이런 것에 압도되어선 안된다. 지금도 늘 이 말을 잊지 않으려한다.

이때부터 수능까지 단 하루도 눈돌리지 않고 열심히 달렸다.

D-2
종강식을 했다.
학원에서 초콜릿도 주고 다 같이 케잌도 나눠먹었다.
그리고 수능 100일 전에 스스로에게 썼던 편지를 다 같이 읽었다.

수능 하루 전 플래너

드디어 D-1
마지막 날까지 나는 공부를 했다. 대견해.
정말로.

마지막 야자를 끝내고 기숙사에 가기 전에 나에게 썼던 편지다. 너무 악필이다. ㅋㅋㅋ

'수고 많았다. 윤지야. 재수 결심한 날부터 지금까지 너가 너무너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세상 거창한 건 없다. 그냥 시험을 하나 만났을 뿐이야. 지금까지 온 것만 해도 대단해.
잘 할 수 있지? 아니야. 잘 못해도 돼. 그냥 한 문제, 한 문제. 최선을 다하자. 그거면 됐어. 너에게 필요한 건 여유와 자신감. 내일 하루는 모두 잊어. 응원해 준 친구들, 부모님. 작년에 잘 됐던 친구들 모두 다.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보다 시험장에서 나오면서 노력한 나에게 반하도록 하자.
장하다. 윤지야 올 한 해 盡人事 했다.'

나는 조금 떨려서 잠을 설치다가 베트남어 단어를 머리 속으로 외우며
잠에 들었고. 아침에 일어나서 담담하게 가방을 매고 학원에서 준비해 준 도시락을 챙기고 시험을 봤다. 고3때는 엄마가 도시락을 싸주셨었는데 사뭇 달랐다. 진짜 나 많이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ㅋㅋㅋㅋㅋ) 진짜 떨렸지만, 옆에 친구들이 있어줘서 고마웠다.

국어, 수학. 무난하게 쳤다. 영어에서 조금 멘탈이 흔들렸다. 그리고 윤리와 사상. 보면서 울 뻔 했다. 어떤 철학자인지 감이 안오는 보기가 많아서 당황했다.이 때, 아 난 베트남어 50점 못 받으면 올 해도 끝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사회문화. 정신줄 안 놓으려고 노력했다. 정신 꽉 붙잡고.
도표에서 실수하지 않으려고 진짜. 미친듯이 풀었다.ㅠㅠ 시간 부족할까봐 무서웠다.

마지막 베트남어 시간.
다행히 아주 쉬웠다. ㅠㅠ 베트남어 다 푸는데 계속 눈물이 났다. ㅋㅋ ㅠㅠ
내가 이 시험을 보려고 1년을 학원에서 살았구나. 수고 많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ㅠㅠ
소리내서 울지는 않았고, 계속 눈물이 떨어져서 나도 당황했다.

마지막 종이 치자마자 엄청 울었다. 진짜. 끝났구나 싶어서. 같은 고사장이었던 기숙학원 룸메를 붙잡고 계속 계속 울었다. 나는 원래 되게 감상적인 사람이라 잘 운다. 그런데 눈물을 흘려서 맘이 흔들리고 이럴까봐 수능 한달 전부터 집에 전화도 안했었는데 긴장이 한번에 다 풀렸던 것 같다.

나의 두번째 수능은 그렇게 끝이 났다.

결과는 평소보다 좀.. 못봤다!! ㅎㅎ
국어 97 수학 96 영어 94 윤리와 사상 45 사회문화 47 베트남어 48
역시나 영여가 ..ㅎㅎㅎㅎ 그리고 윤리와 사상도 2등급이 떠버렸고..
베트남어도 하나 틀렸는데 1등급이 아니었다. ㅠㅠ

아쉬웠지만 후회는 없었다. 매일 전속력으로 달리진 못했지만 한눈 판 적은 없었다.

수능 끝나고 입시 발표까지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전액 장학금과 함께 결론적으로. 이화여대 경영학과에서 합격증을 받았다.


처음 목표로 하던 학교는 아니었지만.
이화인이 된 지금. 나는 정말, 정말 내가 이화에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걸 배우고, 느끼고.
정말 똑똑한 선배, 동기들에게 감탄하곤 한다. 매일같이.
그리고 이화에 오지 않았으면 그냥 넘겼을 말과 행동에 대해서도
불편함을 느끼고 나는 이 불편함이 옳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화가 날 선택해줘서 고맙고,
나의 20대를 이화에서 보낼 수 있어서
나는 진심으로 행복하다.


1년 동안 감사한 사람들이 많았다.
외로운 순간마다 고등학교 친구들이 학원으로 편지를 보내줬고. 학원에서 좋은 친구들, 담임 선생님, 완벽한 룸메들도 얻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부모님이 정말 묵묵히 나를 응원해줬다. 내가 수능을 망쳤을 때도, 대학에 모두 떨어졌을 때도 엄마, 아빠는 나를 단 한번도 질책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하고 싶다는 대로 할 수 있게 지원해주셨다. 나는 나에게 과분한 사람들을 부모로 만났다.

이 무엇보다, 나는 내가 무언가에 열정적일 수 있다는 것을 , 열심일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았다. 그것만으로 가치있는 1년이었고. 추억이었다. 이때만큼 열정적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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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 뒤로 가는 것은 두 걸음 나아가기 위한 것이죠.

치열하게 노력했기 때문에 그에 응당한 결과를 얻으신 것이라 생각됩니다. 고생하셨네요 :)

그쵸. 맞아요. 늘 그렇게 생각하려 합니다. 지금 당장 잘 안풀리는 일이 있어도 두 걸음 나아가기 위한 과정일테죠! :) 앞으로 계속 새기고 지내려구요. 정말 감사해요.

정말 열심히 공부한 흔적이 보이네요 대단해요😮😮 수고 많으셨고 값진 추억이라 생각되네요 ㅎㅎ 끝으로 '이화에 오지 않았으면 그냥 넘겼을 말과 행동에 대해서도
불편함을 느끼고 나는 이 불편함이 옳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라는 말이 와닿았습니다. 저도 동덕여대에 가지 않았더라면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을거란 생각이 들어요.

감사합니다 :) 우리 꼭 한번 만나야겠어요! ㅋㅋ 일대일밋업이라두!

좋아용💕 다음에 한번 갠톡드릴게요 ^3^!

열정적인 재수생 생활 잘 읽어보았습니다. 공개하기 쉽지 않은 내용인데 박수를 보냅니다~~!! ^^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블록체인에 남깁니다 :) ! 감사해요

대단!!하신... 글쓰시는 것도 재밌게 .. 대단!!

지루할까봐 걱정했는데 재밌다니 다행입니다 ㅠ ! 감사해요!

이렇게 하면 정말 못 이룰게 없어 보입니다~
감정이입 되어 상상하면서 읽었습니다

좋은 이벤트 열어주셔서 덕분에 과거 회상도 하네요! 감사해요 :)

마치 전쟁을 치른 것 같군요!
대단합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

계획표와 각종 메모, 오답노트 등에서 치열함이 날 것 그대로 느껴집니다. 열심히 하신 만큼 좋은 결과가 있으셨군요. 희망의 기록입니다.^^
팔로우할게요.

날 것 그대로라는 말이 인상깊네요! ㅋㅋ 제가 좀 막 날려쓰기는 했죠.. ?! ㅎㅎ

네 문장 막 날아다니네요ㅋ 농담입니다만. ㅎ

진짜로 열공하는 모습이 보이네요!
제가 한국에서 유학했을 때 이화여대 가 봤습니다.
님은 대단하시고 부럽네요!

오 ! 그렇군요! :) 반가워요

네. 반가워요!^^

이렇게 한 가지에 몰입해 본 경험이 살면서 큰 자산이 되는 것 같아요. 정말 멋집니다!

흐.. 요즘은 좀 게을러져서 큰일이에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

우와 무서운 분이셨네요~ ^^
엄청 기쁘셨겠어요 ^^
늦었지만 축하드리고 앞으로 모든 일들 잘 이루시길 ~ ^^

감사합니다!! 벌써 2년 전? 3년 전 이야기네요 ㅋㅋ @sufergold님도 앞으로 하시는 일들 잘 이루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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