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의 쏟아지는 별들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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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steemit.com/kr/@hersnz/yrcua
미래의 아내와 결혼식은 아직 보류한채로 다시 뉴질랜드로 향했다. (일단 둘은 1년을 함께 지내고 결혼 이야기를 하기로 하였다) 원하는 데로 영주권은 나왔다. 받는 즉시 기쁨과 동시에 허탈하였다. “이놈의 종이 스티커가 뭐라고 한 4개월동안 영주권 주문을 외었으니, 영주권이 내 삶의 한줄기 만트라 였던 셈이다.
가구도 살림살이도 전무한 상태에서, 신문에서 조그만 방을 렌트한다고 해서 찾아가 밝게 웃으며 환영하는 백인 가정에 세를 들기로 했다. 방하나에 작은 거실과 부엌, 티비며 침대 소파 등등의 세간 살이가 딸린 곳. 가격은 많이 비싸서 주당 $250 였는 데, 시내와 가깝고 세간살이 걱정은 없으니 일단 살기로 했다. 영주권도 받고 집은 구했으니 다음은 일거리가 문제였다. 교민 잡지를 훌트고 훌터 50대 후반 정도의 한국 교민 부부가 운영하는 조그만 구멍가게 (뉴질랜드에서 데어리 샵 Dairy Shop)에서 파트 타임으로 일하게 되었다.
하는 일은 샵청소. 물건 채우기, 케시어 일, 가끔 가다 도매점에 가서 물건도 띄어 오고 하는 일이었다. 주인 내외도 좋으신 분들이고,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차근 차근 열심히 일하고 싶었다. 근무시간은 저녁 4부터 9시까지 5 시간을 일하고 가게 문을 닫을 때까지 일하는 건데 몇 일 지나자 왜 나를 고용했는 지 알게 되었다. 가게는 오클랜드 서쪽에서 제일 치안이 않좋은 지역, 강도, 절도 사건이 빈번한 동네 였던것이다. 지원자는 당연히 없고. 그러니 주인 내외는 제법 건장한 젊은 남자 직원이 필요한 것이였다. 주로 오는 손님들이 마오리, 사모아인 등등 폴리네시안이 주로 였는 데,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 사람들은 정말 체격이 건장하다. 뉴질랜드 럭비가 세계 최고인 것은 이들 덩치도 한목한다. 위험한 동네라는 생각이 들기가 무섭게, 기존의 단골 손님을 제외하고 덩치큰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들어오면 카운터 밑에 숨겨둔 야구방망이 손잡이를 만지작 거린 적이 많았다. 무식하면 용감 하다고, 모르고 위험한 지역에 들어 온 것이다. 만약에 미국 처럼 총기 휴대가 가능한 나라였다면, 아마도 하루나 이틀 지나고 그만 둘법했다.
일과가 끝날 때 쯤이면 가게 뒤에 수도꼭지가 있는 어두운 공간에서 대걸레를 빨면서 건물 사이로 보이는 “별이 쏱아지는” 뉴질랜드의 저녁을 만끽 하기도 하였다.
그 만끽 속에 “내가 이렇게 한국에서 열심히 살았더라면” 하는 생각도 동시에 올라 왔다.
시급은 캐시로 $7, 일주일 일하니 $175불.렌트비도 안 나왔다. 풀타임 잡을 잡아아 하는 데 하고 생각한 순간 신문에 “투어 가이드 모집, 영어 유창한자” 이 문구가 눈에 확 들어와 지원을 하고 합격. 다음 주에 교육이 예정되었다. 그 때 또 다른 나의 인연을 만난다.
꿈을 꾸고 노력하며 좌절하지 않으면 기회, 또는 인연이 오나 봅니다. 어떤 인연일지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네요^^
기대하세요~
내 마음이 작았음을 깨달았을 때 성장한다고 하죠...그 별빛으로 뜻합성하여..마음잎이 자라고 줄기도 자라고....뿌리도...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좋은 표현이네요.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한국에서는 보기힘든 쏟아지는 별들을 보면 위안이 되기도 했는데, 다음이야기도 기대됩니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