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로 키우기

in #kr7 years ago (edited)

자라면서 나는 자존감이 조금 부족한 아이였던 것 같다. 물론 대학생 때는 부과대표도 하고 조금씩 내 목소리를 냈지만 어렸을 땐 굉장히 소극적인 아이였다. 누군가 앞에서 발표라도 해야 할 때면 얼굴부터 발갛게 상기된 아이, 부끄럼이 많았던 아이, 내 감정에 대해 잘 몰랐던 아이. 그것이 나였다.

그것은 사회통념상 내가 여자아이로 자랐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내 성격자체가 소심 A형이라서 그랬을 수도 있고, 또는 내 감정이나 기분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도록 배우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다.

내가 사회 초년생일때는 지금은 직장내 성희롱으로 규정할 수 있는 행위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만연했었다. 상급자의 옆자리에 앉아서 술을 따르도록 암묵적인 강요를 받은적도 있었고, 악수할 때 상대방의 손가락 하나가 내 손바닥을 긁는 행위를 경험한 적도 있었고(사실 이상하게 기분이 나빴다는 거 말고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그사람은 그 행위를 했는지 그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다), 또는 부르스를 강요받은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때 난 그러한 행위가 그냥 사회 초년생이면 으레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직장을 때려 치울 게 아니면 어느 정도 선에서 상사의 비위를 맞추어 주는 것이 차후 진출과 승진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들어 사회나 회사 분위기가 그 때에 비하면 많이 변했다. 회식 자리에서 술을 권하는 문화도 많이 줄어들었고 상사들도 여직원이나 아랫사람을 예전처럼 하대하거나 막대하는 갑질문화도 많이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직장생활을 하다보니 직장내 성희롱같은 사건이나 얘기들을 가끔 접하게 된다.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아직 우리 나라의 직장문화가 나가야할 길이 멀었다는 생각도 들면서 여자들도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직장내 성희롱은 남녀를 떠나서 행위자에게 전적으로 문제가 있지만 피해자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은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싫다면 정확하게 자신의 의사를, 기분을, 입장을 분명하게 전달하고 표현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살지 못했으니 우리 아이만이라도, 특히 딸아이 만큼은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게 알고, 자신이 느끼는 그대로를 솔찍히 표현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들이 5살, 3살이 되다보니 두 남매가 잘 놀다가도 둘이 다투거나 너무 심하게 놀아서 중재가 필요할 때 엄마를 찾는다.

(울음 먼저 터트리며) 아앙~~~ 엄마~~오빠가 콩슈니 뺐아갔쪄..

오빠가 자꾸 귀찮게 하거나, 몸 싸움을 하거나, 장난감를 빼앗아서 돌려주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럴때 제3자이자 엄마인 나는 왠만하면 둘이서 해결하도록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경우 딸아이한테는 자신의 의사를 명확하게 전달하도록 가르친다.

시은아! 니가 싫으면 오빠한테 '하지마!!'라고 정확하게 말해. 누군가가 하는 행동이 싫으면 싫다고 단호하게 말해야해. 알겠어?

그럼 딸아인 곧바로 오빠에게 달려가 나름 큰 목소리로 말한다.

오빠 하지마!!

그럼 나는 아들인 첫째에게도 명확하게 알려주려고 노력한다.

지웅아~ 시은이가 싫다고 하지말라고 하잖아. 그럼 하면 안되는거야. 누군가가 싫다고 하지말라고 하면 더 이상 싫은 행동을 하면 안돼. 그건 시은이가 아닌 다른 친구들한테도 마찬가지야.

나는 자라면서 엄마나 학교 선생님한테나 어느 누구한테나 이런 것을 배워본 적이 없다. 그저 "니가 언니니까 참아, 동생한테 양보해야지, 원래 여자들의 삶이 다 그렇지 뭐.."라는 얘기만 귀가 따갑게 듣고 살았다.

이제는 남자든, 여자든 자신의 감정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분명하게 표현하는 시대가 아니던가. 나는 그러질 못했으니 우리 아이들만이라도 그렇게 키우고 싶어 요즘 나는 아이들에게 자신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연습시키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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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굉장히 중요한 거 같아요. 내 감정이나 의사를 전달하는 게 생각보다
쉬운 게 아니라더라고요.

어느 순간부터 매번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며 넘어가고는 했는데 그렇게 지나고 나니 어느 순간 사회에서 바보가 되어 있더라고요. 이것도 습관이라면 습관이라고 의사나 감정을 표현하는 건 점점 더 어려워졌고요.

물론, 지금은 단호박 100개를 삶아 먹은 것처럼 싫어요를 아주 남발하고 있답니다. :)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해피맘님. 날이 하루사이로 많이 쌀쌀해 졌네요. 항상 감기조심하셔요! :)

Cheer Up!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오늘도 해피언니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저도 생각해보면 어릴때 좋다싫다 표현을 명확히 하지 않는편이었던거 같아요. 커가면서 좀 좋아진 케이스같구요~
근데 우리 애들은 왤케 좋다싫다가 아주 명.확.한지!!!
"이건 내꺼다, 이건 싫다, 넌 저거해라, 오빠는 ** 하지 마라" 아쥬 그냥 난리도 아닌.... 그러다가 싸우기도 하고 ㅠㅠ 특히 오늘 저녁 참 힘들었네요~ 에휴... 이제 쉬렵니다 ㅠㅠ 해피언니도 굿나잇!

전 요즘 첫째가 어린이집에 하원시키려고 가면 집에 안 오고 더 놀고 가겠다고 해서 힘드네요. 결국은 둘째만 데리고 마트가서 장보고 오면서 다시 어린이집에 가서 첫째 데리고 왔다는.... 좋다 싫다가 아주 명확하면 좋은 거죠.. 뭐...^^ 벌써 12시네요.. 어제도 제대로 못 잤는데.. 저도 이제 곧 마무리하고 자러 가야겠어요. 잘 자요.. 레이헤나님~~^^

저도 아이에게 싫으면 싫다는 이야기를 하라고 그리고 다른 아이에게는 싫어하는 행동은 하지말라고.. 자꾸자꾸 잊어버려도 자꾸자꾸 이야기 해준답니다..

아마.. 제가 유년시절 좋아도 좋아요 싫어도 싫어요라고 말하지 못하고 우물쭈물숨던 과거가 생각나고 너무 위축되고 자존감도 떨어지던게 은연중에 생각난 것일수도...

다시한번 좋은 말씀 감사해요...

사실 후배들 중에서 자신의 소신과 주관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친구들 보면 부럽더라구요. 그렇게 배우면서 자라지 못해서, 그게 맞는 거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요즘 아이들 그런면에서는 우리 보다는 훨씬 더 좋은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 것 같아요. 보팅하려고 들어갔더니 최근에는 글을 안 쓰셨네요.. 어여 좋은 글로 컴백해 주세용~~^^

저도 자존감이 부족해서 어디가서 저의 의견을 명확하게 이야기 못하고.. 손해보더라도 그냥 참는 스타일이예요.. 우선 남에게 맞춰서 행동하는게 많아요.. 그래서 아이는 자존감도 높고 자기가 의견을 명확하게 이야기 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더라구요..
지웅이도 시은이도 자기 이야기를 명확하게 이야기 하고 예쁘고 바르게 자랄거 같아요. ^^

흠님은 자기 주관과 소신이 무척 강할 것 같은데.. 아니셨군요...^^ 사실 시은이는 O형에 고집도 쌘 편이고, 뭐든지 스스로 해서 걱정이 안되는데, 지웅이가 너무 순해서 걱정이긴 해요. 그래도 남자니깐 남자아이들한테는 여자가 싫다고 하면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아야 된다고 가르쳐 주고는 있어요. 승윤이도 멋진 남자로 자랄 거라는 믿어 의심치 않네요^^

정말 공감이 가는 글이네요 사회초년생이라서 이게 뭔지 잘 몰라서 말하지 못했던 싫다는말. 이제는 그런일 생기면 적극적으로 표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네요~

사실.. 지금도 윗사람들한테 제 의견이나 소신, 주관 등을 잘 내세우지는 못해요. 여기서나 익명성을 제공해 주니 맘 놓고 얘기할 수 있는 면도 없지 않아 있네요. 어릴 적 버릇이 쉽게 고쳐지는 것은 아니니까요..ㅠ.ㅜ

감정표현하는것이 정말 중요한것 같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 감정을 숨기고 있는것 같아요

맞아요... 감정표현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연습을 시키고 있는데 둘째는 벌써부터 그런 점에서는 연습이 잘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싫으면 어떻게 해야해?"라고 물어보면 고 작은 세살짜리 입에서 "싫어! 하지마! "이런 말이 나오니까요...

와~~정말 정성스러운 포스팅!!!
정독했어요!!👍

와~~~ 키키님 오늘도 잊지 않고 방문해 주셨네요.. 포스팅 일일이 정독하고 댓글 남기는것이 쉽지가 않은데 정말 감사드려요~~^^

정말 동감합니다.
6살된 저희 첫째딸도 성격이 너무 유순해서 걱정이거든요.
밝고 까불기도 잘 까부는데 자기에게 불이익이 오는 것에 대해 단호하게 표현을 못하고 우물쭈물 하다가 그냥 도망쳐버리는 경향이 있어 그럴때마다 표현하는 법을 얘기해 주곤 하는데..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정말 단호한 감정표현이 필요한 것 같아요.

특히나 딸애들한테 이런 교육과 연습하기는꼭 필요한 것 같아요. 평상시연습해 보지 않으면 막상 자기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상황에 부짖치면 자연스럽게 표현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특히 아직까지는 학교기관에서 배우게 되는 성 역할을 무시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공감해 주셔서 제가 다 감사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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