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려는 욕심? 잘 보이려는 욕심!

in #kr6 years ago

갈색배경 글쓰는해달.jpg


처음 블로그에 글을 올릴 때 욕심이 있었다.

수준 높은 글을 쓰겠다는 욕심.

고정관념을 깨고 생각을 깨우겠다는 욕심.

글로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겠다는 욕심.


글을 쓰기 전에 항상 결심했다.

‘제대로 써보자!’

비장한 각오로 컴퓨터 앞에 앉아 거창한 주제를 생각했다.

주제를 뒷받침할 위대한 사례를 찾았다.

모든 것이 준비되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수정하고, 설득력을 높일 더 많은 사례를 찾았다.

어느정도 글이 완성됐다.

쭉 읽어보니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수정하고 싶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

사실 나도 잘 모르고, 경험이 없는 주제다.

이대로 글을 올릴 수는 없다.

어떡하지 고민하다 삭제 버튼에 손이 간다.

그래도 공들여 썼는데, 아깝다.

구석진 폴더에 저장한다.

‘글을 잘 쓰는 방법’을 검색한다.

대부분 다 아는 얘기다.

그래서 공감되고 재밌다.

고개를 끄덕이며 시간을 보내다 시계를 본다.

벌써 잘 시간이다.

오늘 그래도 열심히 했다 자위하며 눕는다.

구석진 폴더에 잠든 미완성된 글처럼, 잠든다.


여느 때처럼 글 잘 쓰는 방법에 대한 글을 읽고 있었다.

짧게 써라, 사실만 써라, 쉽게 써라.

고개를 끄덕이며 보는데 유독 ‘써라’라는 글자가 크게 보였다.

목차를 봤다. 이렇게 써라, 저렇게 써라.

글을 잘 쓰기 위한 방법 중 어디에도 읽으라는 말은 없었다.

글 잘 쓰고 싶다면서 나는 왜 읽고 있을까?

충격이었다.

지금까지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미완성 폴더를 열었다.

거창한 제목의 파일들.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 지워버렸다.

새 창을 열었다.

깜빡이는 커서를 잠시 바라보니 결심이 선다.

솔직하게 하자.

서툴면 서툰 대로, 내가 보고 느낀 대로.

잘하기 위해서 잘 못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받아들였다.

지금의 난 잘 못하는 과정이다.

서툰 게 당연하다.


하루에 A4지 한 장씩.

어느덧 A4지 100장 분량의 서툰 과정이 쌓였다.

이제는 서툰 모습이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 수준 높은 글을 쓰겠다 거나, 글로 사람들을 바꾸겠다 거나 하는 거창한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여러분은 어때요?’ 대화할 정도면 족하다.

욕심을 내려놓고, 이제서야 깨닫는다.

지금껏, 다 잘 보이려는 욕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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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4 100장 대단하신대요.
나중에 올해의 나와 과거의 나를 비교하는 것도 즐거울 것 같습니다. ^^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노트를 쓰면서 과거에, 짧게는 어제 내가 어떤 생각을 했나 비교해보는데
말씀하신대로 참 재밌습니다. ^-^

멋진 글이네요b 공감도 많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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