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반드시 퇴사한다
스무 살 때 일이다.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평소에 나는 누구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상대방이 연락하지 않으면 서로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고 산다. 전화한 친구는 나와 중고등학교 동창이고, 전화 성향이 비슷할 거로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6년 만에 처음 통화하진 않았을 거다.
“여보세요” 첫 통화지만 거리감이 느껴지진 않았다. “잘 지내냐?” 최근까지 얼굴을 보고 지냈으니까. “잘 지내지. 어쩐 일이야?” “그냥. 얼굴이나 볼까 싶어서.” “좋지~ 근데 내가 이번 주 시험이라 다음 주에 내려갈게. 그때 보자.” “알았다. 시험 잘 봐라.”
결과적으로 친구가 보고 싶다던 주에 대전으로 내려가게 됐다. 대학교 입학기념으로 맞춘 검은색 정장을 처음 꺼내어 입고, 액자 속에서 반듯하게 웃고 있는 친구 얼굴을 봤다.
죽음은 불쑥 찾아온다. 멀리 있어서 느끼지 못하지만, 불현듯 찾아와 우리를 놀래주곤 한다.
친구들이 나를 보고 제일 만나기 쉽다고 한다. 부르면 나온다고. 맞다. 부르면 나간다. 친구의 마지막 부름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나가기가 더 어렵다. 나는 그렇게 항상 마지막을 생각한다.
회사에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정년이 있고 안정적인 회사였지만 모르는 일이다. 회사가 돌연 파산할 수도 있고, 자연재해로 폭삭 무너질 수도 있다. 언제 직장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동기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은행이 없어지면 어떡할 거야?” “은행이 왜 없어져. 그리고 없어져도 우리는 중앙회로 편입되겠지. 걱정하지 마라.” 괜한 걱정이었을까? 동기들은 정년까지 거뜬할 거라고 했다.
하루는 차장님들과 방어회에 소주를 한잔 씩 하고 있었다. 한 차장님이 자신은 강원도에 펜션 사업을 할 거라고 했다. 그리고 나를 보며 강원도에 숙박할 일 있으면 얘기하라고 한다. 알겠다고 했다. 다른 차장님은 하남에서 횟집을 하겠다고 했다. 또 다른 차장님은 동전으로 반지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차장님들의 현실적인 대화. 퇴사가 나에게 불쑥 찾아온 듯했다.
영원히 다닐 것처럼 얘기하지만 결국엔 퇴사한다. 결국엔 회사라는 울타리 밖으로 나와서 살아가야 한다. 회사는 전쟁터고 밖은 지옥이라고 했던가? 지옥에서 사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그 방법을 젊어서 알아볼 것인지 늙어서 알아볼 것인지의 문제다. 결국 퇴사는 시기의 문제다. 누구에게나 온다. 죽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