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지금 행복해?

in #kr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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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과 동창 모임을 하게 되었다. 졸업한 지는 15년이 넘어가고 지금까지 연락하고 있는 친구들은 한, 두 명 정도 있었다. 모임 당일인 금요일이 되자 출근하고부터 종일 묘한 설렘이 가슴을 어루만지는 듯했다. '오늘은 무조건 칼퇴근이다.' 속으로 다짐을 했다. 퇴근 종이 울리기 무섭게 기러기 아빠인 박 부장이 사무실을 어슬렁거렸다.

"오늘 한잔할 사람 없나~?"
"김 대리 오늘 어떤가~?"

가끔 내 약속파탄의 주범이었는데 오늘도 어김이 없었다. '하..' 거짓말은 하기 싫지만, 사람은 때때로 거짓말이 필요할 때가 있다고 자기합리화하고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오늘 고향 부모님 집에 내려가야 합니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아니요, 그냥 부모님 보고 싶어서.."
"애도 아니고 주말마다 그게 뭐냐? 내가 오늘 맛있는 거 사주려 했는데 됐다 그래. 전 과장~ 오늘 한잔 어떤가?"

'하.. 울 엄마, 아빠 보려고 내 맘대로 가지도 못하니? ㄳ꺄 혼자 많이 쳐드세요.' 속으로 된통 욕을 해주고 살짝 상한 기분을 달래며 서둘러 인사를 하고는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지하철역으로 가는 발걸음은 점점 더 빨라졌다. '다들 어떤 모습일까?' 부푼 마음을 안고서 친구들과 모이기로 한 장소인 강남에 한 선술집으로 향했다.

선술집 문 앞에 서자 입맛을 돋우는 냄새가 코로 스며들었고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긴장되는 마음을 안고 나는 문을 열었다.

" 야 이게 누구야! 도진이 왔다. 도진이~"
" 와 완전 오랜만이다. 그대로야 그대로!"
" 잘 지냈냐~ 연락 좀 하지 그랬냐?"

친구들의 환대에 머쓱해진 나는 덧니를 들어내며 바보같이 웃기만 했다. 자리에 앉고는 다들 벌써 세상을 손톱만큼 알았던 학창시절 얘기에 사로잡혀 있었다. '한잔해야지' 하며 건네준 컵에 친구가 맥주를 따라주었다. 하얀 거품을 만들어내며 컵을 시원하게 채우는 맥주를 보고는 갈증이 났다. 반장 주도로 "반갑다. 친구야!"를 외치고는 다들 원샷을 했다. 캬~! 퇴근 후에 마시는 맥주 한잔은 언제나 쌓였던 피로를 풀어주는 것만 같다.

서로 기억하지 못했던 퍼즐들을 하나둘씩 맞춰가는 만큼 술병도 하나둘 쌓이기 시작했다. 술기운이 점점 오르자 다들 과거는 다시 마음속에 묻어두고 현재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한 놈은 결혼하지 말라고 친구들에게 진지한 눈으로 경고하는 반면 한 놈은 회사 일이 너무 힘들다며 다 때려치우고 싶다고 한탄했다. '다 똑같이 사는구나.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때 한 친구가 연봉 이야기를 꺼냈다.

"야 현수 연봉이 1억이라며? 진짜 부럽다. 사람은 역시 똑똑하고 봐야 해"

내가 기억하는 현수는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경쟁심이 강해 이기적인 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 현수는 '그래, 나 연봉 1억이야~' 하고 으쓱하며 이런저런 부연설명을 주절거리고 있었다. 그때, 왼쪽 구석에 앉아 해롱거리던 수진이가 '나 지금 궁서체다'라는 표정으로 한마디 던졌다.

"그래서 지금 행복해?"

순간 정적이 흘렀고 다들 말없이 현수를 바라봤다. 현수는 한숨을 길게 쉬고는 "그럼, 행복하지~!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라고 말하며 맥주를 들이켰다. 다들 부럽다며 '2차는 니가 쏘세요' '현수짱'을 외쳤다. 현수는 술이 꽤 거하게 들어갔는지 '내가 쏜다~!!'를 외치며 카드를 꺼내 들고는 머리 위로 원을 그리며 휘저었다. 그렇게 우리는 2차로 노래방에 가서 신나게 놀고는 술이 떡이 돼서 헤어졌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수진이의 말과 씁쓸했던 현수의 표정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술이 많이 취했는지 마음 한구석에서 잘 자고 있던 공허함을 깨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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