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걱정이 태산인 분들을 위해

in #kr6 years ago

#1
실효성을 입증할 수 없다면 행동의 가치는 0이 되는 것인가? 시간과 정성과 의도한 노력, 의도하지 않은 열중이 모두 계산의 대상이 되고있다. 계산이란 결과를 산출하기 위한 행위이고 결과가 정답 혹은 몇 가지 선택지 중 하나 이어야 한다는 암묵적 기대와 강압 아래, 우리는 삶의 모든 과정이 하나의 결과로 치환되는 퍼즐 맞추기 식 사고에 젖어 있다.

모든 퍼즐은 필요하지 않은 조각이 없듯, 좋은 결과를 창출해 낸 사람에게는 그 성취에 어떤 영향도 없었던 경험의 파편까지도 ‘신의 한수’로 치부해 의미를 부여해 주는 한 편, 결과를 만들어가고 있지 않은 듯한 사람에게는 “너는 대체 뭘 하면서 살고 있느냐”는 질문을 통해 자신만의 퍼즐을 맞추어 가던 이의 일련 행위를 중단하게 만들고 다른 작품 앞에 억지로 서게 강요한다. 또는 어떤 퍼즐 작품 앞에도 설 수 없는, 서기 싫은 인간이 되게 한다.

#2
나는 언제나 나를 변호하고, 나를 위해 변명하며, 나와 같은 누군가를 동정하고 존중하려 애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한심한 인간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데 나 역시 세상의 기준을 마음 한 편에 품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세상의 기준과는 별개로 내 기준에 내가 바람직한 인간의 품성과 자질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반면, 물질과 결과 지상주의자들에게 내가 비난 받을 필요는 없다. 부모님의 성실한 삶 덕에 내가 물질적 걱정이 필요없는 상황이란 사실 때문이다. 당신들이 비평을 빙자한 비난을 할 타인의 삶 선정 기준이 고작 그 ‘먹고 살기 위한 노력’의 유무 아니었나? 나는 먹고 살만하다. 노력은 없을지 모르나 먹고 살만 하기때문에 결과론자인 당신들이 자가당착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나를 명단에서 제외시켜 주셔야만 한다. 혹자는 “이 xx가 한심하게 사는 이유가 거기에 있구나” 정도로 여길지 모르겠으나 나는 지금은 어디에도 내놓고 싶지 않지만, 절반만 완성 해도 대회에 출품하고 싶을 정도의 퍼즐을 맞추고 있다.

#3
나는 내 처지에 맞는 생활을 영위하고 있으며 내 현실을 이해하고 지원해 주는 사람들과 생활하고 있다. 이것은 나의 의식주 해결이 무리가 없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눈에 힘겹고 미래가 없어 보이는 (이런 수식 자체가 폭력이다)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자신의 퍼즐 앞에 서 있는 것일지 모르는데 모든 일의 실효성을 따지는 이들이 그 진심과 절박함을 퇴색시키고 있다.

‘그것만이 내 세상’을 보면 극 중 박정민은 피아노 치는 게 좋다고 여러 번 말한다. 그러면 됐다. 그 일의 생산성, 그 일의 실효성, 그 일을 도구화 시키는 성질을 가진 모든 이념은 본인에게만 엄격히 적용하라. 발로 그리든 입으로 물고 그리든 안 그리든 누구나 자기 도화지에 대한 권리는 본인에게 있다.

하늘의 융단.PNG내게 금빛 은빛으로.PNG

글의 내용과 시는 밀접한 관련이 없습니다..! 예이츠의 시가 생각나는 밤이라서 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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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글자 그대로 인간적이기에 타인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원시 집단생활의 오랜 습성입니다. 요즘도 시골에 가면 옆집 숫가락 몇개인지 까지 알아야 하지요.
도시인의 암묵적 무관심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괴롭지요. 공동체의 따뜻한 인정으로 보면 좋은 관습일 수도 있습니다.
진솔한 글 잘 읽었습니다.

아, 그런 관점으로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의 열등감때문에 누군가의 관심을 오지랖으로 치부해 버리고 그들을 한 울타리 안으로 넣은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늘 혼자 쓰고 혼자 생각하던 것이 습관이 되었는데 이런 소통이 낯설면서도 너무 반갑습니다. 언제나 관심 가져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공동체의 따뜻하고 신비로운 힘은 인정하자는 것 뿐이지, 저는 냉혹한 개인주의자입니다.
혹시 감정을 건드렸다면 괘념치 마세요. 님의 글엔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감정을 건드렸다니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늘 주시는 관심에 감사하고 이렇게 나누는 대화가 즐겁기만 합니다!! ^^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열등감이란 말이 나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가든님의 글은 부러움의 눈으로 감탄하면서 잘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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