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에세이 16. 영겁의 시간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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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에는 중증응급환자 공공이송 서비스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일반 구급차로 이송이 어려운 인공호흡기를 가진 환자, Extra-corporeal membrane oxygenation (ECMO, = 체외막산소공급기), 기타 혈압저하의 위험이 있는 중증 환자 (예: 심정지, 심근경색, 급성뇌졸중, 중증외상, 위장관 출혈, 패혈증 등) 를 전용 특수구급차 (SMICU=Seoul Mobile Intensive Care Unit) 로 옮기는 서비스로 응급의학과 전문의와 간호사, 응급구조사가 동승하여 이송 간에 환자를 모니터링 및 필요한 처치를 하면서 병원으로 이송하는 프로그램이다.

서울시와 필자가 근무하는 병원이 MOU 를 맺어 공공이송센터로 중증응급환자 요청이 오면 의료진이 출동 기준에 합당하다고 판단하면 요청 병원에 출동하고 이송 내내 환자와 동승하여 이송을 안전하게 담당하고 있다. 물론 금액을 지불해야 하나 환자 및 가족이 부담하는 비용은 매우 저렴한 편이다. 전문의,간호사,구조사 세명이 출동하는데 이 가격은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운영비를 위한 적정 가격의 10% 수준이다. 나머지 90%는 서울시에서 세금으로 부담하고 있다.

필자가 중증응급환자 공공이송팀의 당직을 서는 날 저녁 8시경 당직폰으로 XX 병원에서 환자 이송 요청이 왔다. (당직폰이 아이폰인 관계로 당직 서는 날에는 아이폰의 벨소리에 민감해진다.)

나: 네. 서울시 중증환자 이송팀입니다.
XX: 네. 여기 XX 병원입니다. 환자 이송 위해 전화했습니다.
나: 무슨 환자인가요 ??
XX: 16개월된 남자 애기인데 참외를 먹다가 기도로 넘어가서 응급실에 왔고 검사해봤더니 왼쪽 main bronchus (주 기관지)를 막고 있어서 기관지내시경으로 이물 제거해야 해서 ZZ병원 소아중환자실로 어레인지 되었는데 산소포화도가 마스크 full 에서 90% 초반대라 전문의 동승 위해서 연락드렸습니다.
나: 네 알겠습니다. 출동하겠습니다.

영유아에게 있어서 음식물은 무척 조심해야 하는 사항이다. 아직 이가 다 나지 않아서 씹는 능력이 충분하지 못한 경우에는 덩어리가 큰 딱딱한 음식 (과일이나 견과류 등) 은 자칫 기도로 넘어가서 기도를 막아 숨을 못 쉬게 하는 위험한 상황을 초래하게 된다. 이 경우도 그런 케이스에 해당한다.

중증환자 이송팀의 단체 카톡방에 출동지시를 내리고 SMICU 구급차를 타고 XX 병원에 출동하였다. 40분 정도 걸려서 XX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담당의료진에게 환자에 대해서 인계를 받았다.

의료진 : 가슴 CT 에서 좌측 기관지에 이물 있는 것 확인했습니다. 아직 기도삽관은 안 했는데 마스크에서 산소 full 로 주면 포화도 90% 대 초반까지는 나오는데 애기가 깨서 보채면 70% 대까지 떨어집니다. 이송 중 애기가 깨서 보채면 미다졸람 (진정 시 투약하는 약물)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네 : 알겠습니다.

환아는 지금 왼쪽 폐가 기능을 못하고 있다.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들이킨 공기가 폐로 들어가서 폐포 안의 모세혈관에서 혈액 속의 이산화탄소와 폐포 속의 산소를 교환하여 이산화탄소를 날숨으로 내뱉고 공기 중의 산소를 혈관 속으로 들여와야 한다. 하지만 이 아이는 이물이 기도를 막고 있어서 공기가 왼쪽 폐로 들어가지 못해 현재 오른쪽 폐로만 산소 교환을 하고 있다. 즉 평소 폐 기능의 50% 만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당연히 평소의 신체에서 요구하는 산소 요구량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전신적으로 산소가 부족한 상태이다.

환아는 엄마 품 안에서 자지러지게 울고 있었다. 아이가 보채서 울면 숨이 가빠지고 한쪽 폐로만 기능을 하기 때문에 체내의 산소요구량을 폐가 따라가지 못하고 산소포화도가 감소하기 때문에 엄마는 아이를 필사적으로 달래고 있었다. 하지만 16개월된 아기가 숨이 가빠서 힘든데 어떤 말로 달래질 수 있을까. 엄마의 애타는 마음을 아이는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이리저리 몸을 비틀고 빽빽 울고 있다. 떨어지는 산소포화도 만큼 의료진과 보호자의 마음도 타들어간다.

이 환아는 기도의 이물을 빼지 않는 이상 어떠한 치료도 의미가 없기에 빠른 이송이 필요하다. 일단 수면제를 투여하면 아이가 자면서 산소포화도가 그나마 유지되서 수면제로 재우면서 이송하기로 하였다.

환아와 부모님을 구급차에 태우는데 아기가 깨서 또 심하게 보챈다. 그와 동시에 모니터에 나오는 산소포화도가 쭉쭉 감소한다. 90.....81.....68.....55.......49...... 떨어지는 수치만큼 내 몸에서 아드레날린 (인체가 긴장하면 생성되는 호르몬) 이 분비되는 게 느껴진다. 경험적으로 비추어 봤을 때 산소포화도가 40% 대가 되면 조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산소가 거의 없기에 조만간 심장이 멈추게 된다. 이 환아는 지금 심장마비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이 상태로는 이송불가라고 판단하여 환아를 데리고 다시 급하게 응급실로 들어갔다. 얼마나 급했냐면 평소대로라면 환아를 카트에 태우고 카트를 밀면서 응급실에 들어가는 것이 통상적인 관례지만 심장마비를 눈앞에 두고 있어서 엄마가 환아를 안고 나는 약물을 들고 응급실에 뛰어들어갔다. 비어 있는 처치실의 침대에 환아를 눕히고는 담당 의료진에게 기도삽관 (인공호흡기 장착)을 준비해달라고 급하게 요청했다. 담당의료진도 다시 환자 곁으로 와서 분주히 기도삽관을 준비하였다.

기도삽관은 의료진에게 있어 생명을 살리는 중요한 무기 중 하나로 기도가 막히거나 다른 신체의 원인으로 체내의 산소요구량을 폐가 못 따라갈 때 인위적으로 기도에 관을 넣고 폐에 고농도의 산소를 투여하고 폐가 담당해야 할 과부하를 인공호흡기로 대체하면서 생명을 살리는 술기 중 하나이다.

기도삽관을 위해서는 진정제와 근이완제를 투여하는데 이 때 근이완제는 무척 무서운 약물 중 하나이다. 근이완제를 투여하면 전신의 근육이 모두 마비가 되고 호흡근도 마비가 되기 때문에 숨을 멈추게 된다. 이 약물을 투여하면 바로 기도삽관 후 인공호흡기를 연결해야 하는데 만일 이 약물을 주고 기도삽관에 실패하게 될 경우 호흡을 하지 못하여 심장마비가 온다. 약물투여부터 호흡근 마비로 인해 심정지가 오기까지 대략 4~5분의 시간적 여유가 있다. 이 사이에 기도삽관 및 인공호흡기 연결에 실패하면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때문에 의사가 이 약물 투여를 지시하면 의사도 벼랑 끝 낭떠러지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 (간혹 가다가 이 약물 관련하여 의료사고도 일어난다.)

의료진은 진정제 (midazolam) 과 근이완제 (vecuronium) 을 투약하고 기도삽관 전 앰부 bagging 을 하였다. 아무리 bagging 을 해도 70% 대로 오르질 않는다. 의료진끼리 눈빛을 교환하는데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흐른다. 보통 기도삽관 전에는 산소포화도 100%가 유지되는 상태로 30초 이상 산소를 공급한 다음 안전하게 기도삽관을 진행하는데 (이래야 만일 기도삽관에 실패해도 이미 공급해 놓은 산소로 다음 시도 전까지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환아는 이미 폐가 기능을 못하고 있어서 산소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만일 기도삽관에 실패하면 심장마비가 다음 수순이다. 의료진의 교환된 눈빛 속에는 이런 정황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었다.

응급실에서 환자의 상태가 위중한 지 여부를 보려면 의료진들이 대화를 하는지를 보면 된다. 대화가 없어질 수록 상태가 안 좋고 위중하다는 뜻이다. 지금 응급실에는 적막이 흐른다. 모니터의 알람 소리만이 처치실의 적막을 간헐적으로 깨트리고 있다. 근이완제가 투여되고 기도삽관을 4년차 전공의 선생님이 시도하였다. 후두경을 입 안에 넣고 이리보고 저리 보는데 잘 안 되는 듯 하다. 산소 공급을 잠시 중단한 모니터의 포화도는 70% 대에서 30% 대까지 감소하였다.

옆에 있던 간호사님이 조용히 마취과랑 소아과 부를 지 말을 꺼낸다. 의료진이 고민없이 바로 네라고 대답했다. 간호사님은 부리나케 스테이션으로 달려가서 마취과와 소아과를 불렀다. 그러는 사이 앰부 bagging 을 하면서 포화도는 다시 40% 대를 회복하였다...... 처치실에 다시 적막이 흐른다. 그 때 다른 응급의학과 선생님이 다시 후두경을 잡고 환아의 입을 벌렸다. 옆에서 준비하던 간호사님은 시술자의 삽관 튜브를 달라는 손짓에 바로 반응하여 튜브를 전달했고 얇은 튜브가 환아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튜브에서 stylet (말랑한 튜브 안에 철사를 넣어서 단단하게 고정해주는 기구) 을 뺀 후 앰부백을 연결하고 bagging 을 했다. 시술자는 청진기로 폐 소리를 확인하였고 잘 들어갔다는 신호를 보냈다.

마침 그 때 소아과와 마취과 의사들이 처치실로 들어왔다. 다행히 기도삽관이 잘 되었음을 설명 후 마취과는 복귀하였으나 소아과는 처치실에 계속 남아서 환아의 상태를 지켜보았다. 대개 기도삽관 후에는 산소포화도가 잘 오르는데 이 환아는 산소포화도가 도무지 오르지 않는다. 40%에서 1분에 1% 정도씩만 오르고 있다. 소아과 당직의도 심각한 얼굴로 환아를 바라본다.

기도삽관 후 X-ray 를 시행하였는데 아뿔싸. 처음에는 왼쪽 폐만 막혀있었는데 이제는 오른쪽 아래쪽도 막혀있는게 보인다. 아무래도 환아가 움직이고 이동하는 과정 중에 이물이 움직이며 오른쪽 기관지도 막은 것으로 추정된다. 어쩐지 환아의 산소포화도가 오르지 않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환아는 오른쪽 위쪽 폐로만 산소교환을 하고 있다.

의료진 모두 해결책을 알고 있으나 선뜻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이 환아는 기관지내시경으로 폐를 꽉 막고 있는 이물을 제거하지 않으면 살 길이 없는데 시술이 가능한 병원으로 이송하는 사이에 심장마비가 올 수도 있다. 이송하자니 위험하고 이송 안 하면 확실하게 죽는다.

진퇴양난의 상황을 부모에게 설명하였고 부모는 이송하기로 동의하였다. 이제 환아의 생명은 이송 중 동승 의사인 나에게 위탁되었다. 전속력으로 달리는 구급차 안에서 기도삽관 되어 있는 환아에게 손으로 앰부백을 짜면서 ZZ 병원으로 무사히 이송하는 게 나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이송 중에 심장마비가 발생하면 심폐소생술을 시행해야 하는 것은 부가적인 임무이다. 이송에 필요한 시간은 대략 30분. 한 아이와 가정의 운명이 걸린 이송이 시작되었다.

구급차가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울리면서 ZZ병원을 향해 달려간다. 시내를 가로질러서 달리는데 다행히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라 차량이 많지는 않다. 낮 시간이었다면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이지만 불의의 사고만 없다면 30분이면 갈 수 있을 듯 하다. 덜컹거리는 구급차 안에서 나는 구부정한 자세로 환아의 입에 고정되어 있는 삽관 튜브를 오른손으로 잡고 왼손으로는 앰부백을 짜고 있었다. 동승한 간호사님은 환아의 머리를 고정하여 흔들리지 않게 잡고 있었다. 환아 위치가 의자와 거리가 멀어서 나는 허리를 계속 구부리고 갈 수 밖에 없었다. 차량 탑승자의 안전을 고려한다면 당연히 안전벨트를 매야하지만 안전벨트를 매면 환아에게 처치를 할 수 없기에 안전벨트는 언감생심이다. 만일 이러다가 구급차가 사고라도 나면 나도 졸지에 중증외상환자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눈 앞에서 한 생명이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에 서 있는 상황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상황까지 걱정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환아의 입 안에는 패스트푸드점에 비치되어 있는 빨대 정도의 삽관 튜브가 테이프로 고정되어 있었다. 이 아이에게는 이 얇은 튜브가 이 세상의 마지막 끄나풀이다. 이송 중 덜컹거리는 구급차 안에서 만일 이 튜브가 기도에서 빠진다면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할 수 있다. 그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응급의학과 전문의인 내가 동승해서 이송을 하고 있지만 달리는 구급차 안에서 다시 기도삽관을 하기란 매우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만일 나도 실패한다면 그것은 정말 죽음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오른손으로 삽관 튜브를 잡고 있는 나도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다.

구급차 안에 비치된 디지털 시계와 환아의 상태를 보고하는 모니터를 수시로 확인하고 있다. 다행히 산소포화도는 XX 병원 출발 시보다 거북이 걸음처럼 느리긴 하지만 서서히 오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안심할 수 있는 수치는 아니긴 하다. 환아의 혈압을 체크해야 하는데 나와 간호사님 모두 환아에게서 손을 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함께 동승한 부모님에게 혈압계를 꺼내달라고 요청하였다. 흔들리는 구급차 안에서 아이 아빠는 엄마의 허리를 부여잡고 엄마는 구급가방 안에서 혈압계를 꺼내서 의료진에게 건네주었다. 이 아이는 훗날 본인을 살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

문득 구급차 안에서 주변을 살펴보는데 엄마와 아빠가 손을 꽉 잡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불교에서 '겁'은 무한히 긴 세월을 의미한다고 한다. '둘레 사십 리 되는 성 중에 겨자씨를 가득 채워놓고 천인이 3년마다 한 알씩 가지고 가서 모두 없어질 때' 혹은 '둘레 사십 리 되는 바위를 천인이 무게 3수(銖)되는 천의(天衣), 즉 잠자리 날개보다 더 얇은 깃털로서 3년마다 한 번씩 스쳐 돌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의 기간' 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부모에게는 30분의 시간이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질 것이다.

초반에는 처치에 정신이 없어서 느끼지 못했는데 환아의 포화도가 조금씩 오르면서 주변 상황에 신경쓸 여유를 갖게 되면서 느끼게 된 것인데 구급차가 주행 중에 가다 서다를 간헐적으로 반복하고 있었다. 운전석을 바라보니 신호가 빨간불이라 서게 된 것인데 앞에 멈춰 서 있는 차들이 비켜주지를 않는다. 신호 대기가 길어질 수록 엄마는 불안해지는지 자꾸 운전석을 처다보게 된다. 지금 정차해 있는 자동차의 운전자들은 우리의 다급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으려나. 본인 가족이 중환자가 되어 구급차에 실려서 이송을 하게 된다면 그 때는 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으려나.

어느 덧 ZZ 병원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직 완전히 이송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병원이 시야에 들어오니 사고 없이 온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병원 입구에서 조심스레 앰부백을 짜면서 카트를 내리고 소아중환자실로 향했다. 엄마는 긴장이 풀렸는지 남편에게 기대어 눈물을 터트린다. 아이가 있는 부모의 입장에서 그 눈물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었다.

ZZ 병원의 중환자실에 들어가서 환아를 중환자실 침대에 눕히고 나서야 미션을 무사히 달성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송 내내 손으로 짜던 앰부백 대신 중환자실의 인공호흡기를 연결하고 담당 주치의에게 환아를 인계하였다. 원래 환아를 재우면서 이송하려던 계획, 중간에 상태가 악화되어 다시 응급실로 돌아가서 삽관한 것, 이송 중의 이벤트 등을 상세하게 인계하였다. 마지막으로 기도삽관 및 이송을 하면서 저산소 상태가 20분 이상 지속되어 뇌손상 가능성이 우려되니 나중에 MRI 촬영을 해볼 것도 전달하였다.

인계를 마치고 이송에 사용했던 물품들을 정리하고 중환자실을 나오는데 환아의 엄마,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들이 중환자실 입구에서 대기하다가 우리를 보고는 물어보았다.

가족: 아이는 괜찮으려나요 ?? 이물만 빼면 괜찮아지나요 ??
나 : 네. 이물 때문에 폐가 막혀서 숨을 못 쉰 것이라 이물 빼며는 보통은 좋아집니다. 다만 흡인성 폐렴일 약간 동반될 수는 있는데 그거는 항생제 쓰면서 경과보면 되니까 크게 걱정하실 일은 아닙니다.
가족: 선생님. 고맙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나: 가족분들도 고생하셨어요. 치료 잘 받으세요.

사실 나는 가족들에게 거짓말을 했다. 산소포화도가 60% 미만인 상태로 20분 이상 있었으니 저산소증으로 뇌세포가 손상을 입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솔직하게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아이가 저산소증으로 뇌에 손상을 입어 후유증이 남을 수 있습니다라고 얘기를 해서 미리부터 걱정을 하게 만드는 것이 옳은 것이었을까. 어차피 나중에 주치의로부터 뇌손상 가능성을 들을 텐데 걱정은 그 때부터 해도 늦지 않을 것라고 당시의 나는 판단을 하였다. 그리고 미리 걱정을 한다고 환아가 회복이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불필요한 걱정을 끼칠 만한 말을 하지 않은 것은 지금도 후회는 없다.

무사히 이송을 마치고 서울의 야심한 밤을 구급차로 드라이브하면서 복귀하는 가운데 다시 한 번 구급차 안에서 심정지라는 최악의 사태를 피한 것에 대해 운이 좋았음을 격하게 느끼고 있었다. 구급차 안에서의 16개월 어린이 심폐소생술이라니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비록 의대에서의 학업과정과 인턴, 레지던트의 수련과정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결코 쉽지는 않았으나 나의 얄팍한 의학지식으로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을 이승에 좀 더 머무를 수 있도록 도왔다는 사실에 그간의 고생이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부디 환아가 잘 회복하여 뇌손상의 후유증 없이 완쾌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ps. 다음 날 이송했던 병원으로부터 피드백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환아는 바로 기관지내시경으로 이물은 잘 제거하여 막혀있던 폐는 잘 회복하고 있으나 아직 인공호흡기를 유지하고 있어서 뇌손상 여부는 향후에 평가 예정이라고 한다. 부디 잘 회복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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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하셨습니다.
읽는 내내 저까지 숨이 막히네요.
우리 아이는 그런 경험 없이 잘 크고 있는게 너무 감사하네요.
안 비켜주는 차들 정말 너무 ..... .. 아니 너무 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네요..
마지막은.. 저라도 그럴 것 같습니다. 그 상태에서.. 뭐라 할 수 있겠어요...
고생하셨습니다..

// 이 글을 읽고 나니..제가 다리 다쳤을때(십자인대파열) 응급실 당직 선생님이 괜찮을꺼예요... 했던 말도 공감이 되네요.. 그래도 그 말 듣고 잘??? 잤거든요..수술 안해도 된다고.. :) 결국 담날.. 수술 결정이 나긴 했지만..:(..

응급의료관련 일을 하다보면 윤리적인 문제들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정답은 없겠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방향성은 찾을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래도 십자인대파열은 생명에 지장이 없는 질환이라 다행이셨네요^^

생사가 왔다갔다하는 문제는 항상 어렵습니다ㅠㅠ

으 ㅠㅠ 너무 고생하셨네요. 전원 가는 앰뷸런스에서의 급박한 심경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아이가 무사히 잘 회복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아이가 잘 회복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다른 외상사고도 아니고 별 것 아닌 참외 먹다가 생긴 일이라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ㅠㅠ

고생하셨습니다. 글읽는 내내 그 엄청난 중압감이 느껴졌네요.

고령의 할머니, 할아버지들, 기저질환이 많이 진행한 사람들의 기도삽관과 심폐소생술은 심적으로 크게 부담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직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영유아, 어린이들이 중환으로 응급실에 실려오면 정말 '살려야 한다'는 중압감이 생깁니다. ㅠㅠ

제 의사 경력에서 세 손가락에 꼽을 만한 중압감이었습니다. ㅠㅠ

고생하셨습니다.
얼마 전 휴가 때 고속도로에서 구급차 뒤에 있는데 나란히 1,2 차선 주행하고 있던 차들이 생각 나네요. 룸미러는 아예 보지를 않는건지.

시민의식의 성숙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아마 시간이 걸리겠지요^^

당직 고생했다 ㅠ

찐한 당직이었다ㅠㅜ

와.... 읽는 내내 눈을 떼지 못하고 마음이 너무 놀랬습니다. 어린 아이들에게는 정말 참외도 무서운 과일이 될 수 있군요. 얼른 쾌차하기를 바랍니다. by 키만

네. 아직 씹을 능력이 되지 않는 영아들에게는 딱딱한 음식 (과일, 견과류, 고기) 등은 금물입니다. ㅠㅠ
보호자의 방심이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불러오기도 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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