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에세이 15. 구급대원 현장 출동 체험기 2

in #kr6 years ago

오늘은 구급대원 현장 출동하는 구급차 동승 실습의 마지막 날이다. 이것으로 총 32시간의 구급차 동승 실습을 마무리하게 된다. 이제 재난안전본부에서 상황실 실습 4시간과 필기시험만 합격하면 지도의사 자격증을 획득하게 된다.

오늘은 총 3건의 실습이 있었는데 임팩트 강한 사건이 하나 포함되어 있다.

그 동안 적었던 글들이 진라면 순한맛이면 이번 글은 매운 불닭볶음면의 소스를 2개 정도 넣은 강렬함이기에 심히 자극적인 내용을 원하지 않는 분이라면 읽지 않으시는 게 좋을 듯 하다.......

#. 75세 남성

오후 1시경 신고가 들어왔다.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 환자가 어지러움을 호소하여 119에 신고를 했다. 어지러움으로 응급실에 많은 환자가 내원한다. 어지러움을 일으키는 원인을 파악해보자면 중추신경 이상, 전정기관 이상, 혈관 이상, 약물 등에 의해서 발생할 수 있다.

중추신경계 이상으로는 소뇌에 뇌경색이 생기는 경우로 소뇌는 인체에서 미세운동과 균형을 조절해 주는 기능을 한다. 여기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 막히거나 터져서 뇌졸중 (=중풍) 이 생기면 심한 어지러움, 구토, 두통 등을 유발할 수 있다.

전정기관의 이상은 흔히 이석증이라 부르는 질환으로 귀 안의 균형을 담당하는 기관에 물리적인 자극인 가해지면서 배멀미, 차멀미를 유발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혹은 이 기관에 바이러스나 모종의 염증이 생겨서 전정신경염이 생겨도 어지러움을 느끼게 된다.

혈관 이상은 기립성 저혈압 같은 경우로 과로나 스트레스로 컨디션이 안 좋을 때 혈관의 수축능력이 저하되어 앉아있다가 갑자기 일어서는 경우 중력에 의해 하지로 피가 쏠리면서 두뇌로 충분한 양의 피가 가지 않아 "핑" 도는 느낌과 어지러움이 생길 수 있다. 이 때 혈압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에는 실신을 하는 경우도 생긴다.

약물에 의한 어지러움은 혈압약 같은 것으로 인해 인위적 저혈압이 유발되며 상기에 기술한 기전의 기립성 저혈압이 생기기도 하고 진통제 같은 약들은 약물 자체의 부작용으로 메스꺼움과 어지러움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렇게 어지럽다고 응급실에 오게 되면 우선 중추신경의 이상이 없는지부터 하나하나 신체검진, 뇌 MRI 등을 통해서 감별해 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신고가 들어와서 환자의 나이를 들었을 때부터 "이 환자는 응급실에 가서 검사를 해봐야겠구나" 라고 견적이 바로 나왔다. 이에 환자와 보호자를 인근 가까운 종합병원 응급실로 데려다 드리고 귀소하였다.

#. 18세 여성

사실 이 글을 모두가 읽을 수 있는 스팀잇에 쓰는 게 맞는 지 나도 윤리적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하지만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이 주제에 대해서 사회 구성원 모두가 반드시 고민해 봐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무거운 마음으로 글을 적어본다.

오후 3시경 신고가 들어왔다. 상황실에서 신고내용을 알려주었다.

"추락이에요"

119 대원들이 작성하는 중증외상환자 응급처치 세부상황표에 보면 중증 외상의 기준으로 외상 기전이 성인의 경우 6m 이상에서 낙상, 차량이 전복되거나 차체가 30cm 이상 찌그러진 경우, 자동차 대 보행자 사고 등 외상의 기전이 위험해 보이는 경우 중증외상환자로 의심하여 처치 및 이송하도록 되어 있다.

신고 시 상황실에서 "추락" 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은 높이가 6m 이상을 의미하며 보통 건물 2층 이상의 높이를 의미한다. 이런 경우는 인체의 뼈가 외력에 의해 충분히 부러질 수 있으며 내부 장기의 파열 또한 가능하여 과다출혈을 유발할 수 있기에 환자의 처치가 늦어질 경우 사망할 수도 있어서 출동 시부터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간다.

신고가 들어온 것은 학원가가 밀집되어 있는 길이었다. 현장에 가까이 다가가니 사람들 수십명이 몰려들어 웅성웅성 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군중의 가운데에는 교복을 입고 있는 머리가 긴 여학생이 얼굴을 땅에 묻고는 사지가 뒤틀린채로 엎드려 있었다. 그리고 아스팔트 바닥에는 피가 조금씩 스며나오고 있었다.

아........ 뛰어내렸구나......

주변에는 경찰관 두 명이 어찌할 줄 모르며 서 있었다. 아마도 119와 경찰에 같이 신고했는데 경찰관이 먼저 도착한 것 같다. 구급대원이 환자의 맥박을 짚었다.

"선생님, 맥박이 없는데 어떻게 할까요 ??"

환자는 위의 인형처럼 사지의 관절이 정상적인 가동 범위에 있지 않았다. 환자의 상태를 평가하기 위해 몸을 돌렸는데 사지의 관절이 따로 움직이는 게 피부에서 느껴졌다. 육안으로 봤을 때 양 팔꿈치와 양 허벅지에 개방성 골절이 있었고 안면부로 바닥에 떨어져서 그런지 얼굴은 사람의 얼굴의 형체를 유지하고 있지 않았다. 더 이상의 자세한 묘사는 하지 않겠다. 당시의 상황을 전달하기에는 여기까지로 충분한 것 같다.

미국 응급의학회 (The National Association of EMS Physicians (NAEMSP) Standards and Clinical Practice Committee and the American College of Surgeons Committee on Trauma) 에서 제시한 외상에 의한 CPR 중단 기준에 구급대가 현장에 도착했는데 환자의 맥박이 없으면 CPR 을 시행하지 않도록 가이드라인이 되어 있다. 왜냐하면 외상에 의한 심장마비인데 현장에서 맥박이 없다면 살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의학의 최선진국인 미국에서도 살릴 수가 없단다. 실제로 나도 응급실에서 다년간 일하면서 중증 외상환자의 심장마비는 어떤 치료를 했어도 단 한 명도 살린 기억이 없다.

그래서 구급대원에게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지 않도록 말했다. 살릴 가망도 없거니와 여기서 심폐소생술로 인체에 더 손상을 가하는 것은 같은 인간으로서 윤리적으로 할 짓이 되지 못한다.

문득 눈에 띈 것은 환자의 몸에 걸쳐져 있던 무릎 담요였다. 이 더운 날씨에 무릎 담요라니. 주변을 둘러보니 학원가였다. 대략 상황이 눈에 그려지지만 지금은 사고 경위보다 일단 환자를 현장에서 수습하는 게 우선이었다. 주변에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군중에는 아직 초등학생들도 있었고 중,고등학생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더 이상의 환자의 외관 노출은 어린 학생들에게 후유증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환자를 싣고 바로 인근 대학병원 (본인이 수련받았던 병원) 으로 출동하였다. 응급실에서 의료진이 환자를 맞이했는데 예전에 일했던 병원이라 의료진을 알아서 내가 상황을 설명하였다.

잠시 후 응급실에 내원한 경찰들에게 현장의 상황을 물어보니 고3으로 추정되는 학생으로 인근의 고등학교 교복이라고 한다. 또한 주변 학원가를 탐문해 보니 현재 기말고사 기간인데 학원 수업 중 화장실에 간다고 나간 여학생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건물 옥상에서 신발 한 켤레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얼마나 삶이 힘들었으면 이 어린 학생이 뛰어내릴 결심을 하게 만들었을까. 환자의 상처로 추정컨대 땅을 보면서 뛰어내린 것으로 보인다. 무릎담요는 아마 바닥을 보지 않기 위해 얼굴을 가리고 뛰어내린 것이 아니었을까.......

무엇이 이 학생을 옥상에서 뛰어내리게 했을까.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 ??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 ??
좋은 대학에는 왜 가야 하지 ??
부모님이 스트레스를 줘서 ??
선생님이 스트레스를 줘서 ??
친구 관계가 원만하지 않아서 ??

우리나라 10대~30대의 사망률 원인 1위가 자살이다. 자살에 대한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1위라고 한다.

이 학생의 죽음에 우리 사회는 아무 책임이 없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대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실천에 옮기기 전에 주변에 관심을 구하는 행동을 한다.

' 나 외로워요'
'누가 관심을 가져주세요'

우리 주변에도 알게 모르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있을 지도 모른다. 주변을 돌아보고 배려하는 여유가 있었다면 우리의 이웃들이 이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우리 사회가 사람을 착취의 대상이 아닌 함께 삶을 영위해야 할 이웃으로 보고 대우했다면 우리 사회가 이처럼 각박해지고 자살률 1위인 사회가 되었을까.

고인이 된 학생을 응급실에 인계하고 우리는 소방서로 귀소하였다. 돌아오는 내내 찝찝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사실 자살을 위해 건물에서 뛰어내린 사람도 이미 응급실에서 여러명 봤었고 뛰어내리는 장면을 현장에서 라이브로 직접 목격한 적도 있지만 암환자의 임종과 다르게 스스로 삶을 마감한 경우는 마음이 항상 무겁다.

이 학생의 부모는 응급실에서 경찰과 구급대원의 연락을 받고 어떤 생각이 들까. 아침에 인사하면서 집을 나갔는데 저녁에는 따뜻한 온기를 잃은 채, 부모님이 태어날 때 주신 인체의 형상을 온전히 유지하지 못한 모습으로 다시 만난다면 그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무너질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앞으로는 수험 스트레스 없는 곳에서 편안히 쉬시길 바랍니다.
꽃다운 어린 나이에, 세상은 넓고 즐거운 일도 많은데, 이렇게 일찍 삶을 마무리하도록 만들어서 미안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인간다운 모습이 남아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남아있는 사람들끼리 노력하겠습니다.

ps. 출동 1건이 더 있었지만 이것은 다음 번에 다른 주제로 찾아뵙겠습니다.
여러분. 힘들 때는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보세요. 그래도 아직 세상에는 따뜻함이 남아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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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본다는 그것.... 안타깝습니다..

리스팀가즈아!

감사합니다

사고던 질병이던 젊은 연령대의 임종은 언제나 마음이 아프네요ㅠ

그런장면을 실제로 보다니 ㅠㅠ
자살률 1위의 오명을 언제 벗을까요
아이들은 성적과 친구가 생의 전부라고 생각한답니다.
사실 인생은 너무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는데 그런걸 알려주는 사람도 경험도 없죠 ㅠㅠ

우리 사회가 사람을 착취의 대상이 아닌 함께 영위해야 할 이웃으로 보고 대우했다면 우리 사회가 이처럼 각박해지진 않았겠죠

맞습니다ㅠㅠ
저출산 현상도 근본적으로는 오랜시간의 착취가 누적되어 발생한 현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시각을 바꿔야 안타까운 일들이 줄어들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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