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담수첩] 그 시절 놓친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1995년 作
그 때, 1995년.
케이블 TV의 시대가 도래하였고, JP는 자민련을 창당했다. '간 큰 남편' 시리즈가 유행하였고, 삼풍백화점이 허망하게 무너졌다. DJ는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고, 노태우 씨는 연희동 자택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지존파 일행의 사형이 집행되었고, 전두환 씨가 12.12사태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 수감되었다.
영화로 시간여행을 하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와버렸다, 1997년부터 고작 3년을 거슬렀지만 말이다. 이 영화를 끝으로 다시 시간을 되돌려야겠다. 전의 영화 '꽃잎'은 너무나도 가슴에 사무쳤다. '꽃잎'의 이정현도 그러했는데, 홍경인이라는 배우도 어릴 적엔 꾀나 인상 깊은 느낌이었다. 지금 이 영화의 너무나 유명한 한 컷과 더불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의 엄석대로 분한 그는 주먹을 쥐게했었다.
이 영화의 감독, 박광수는 잘 몰랐지만 각본을 쓴 이창동의 이름을 보고서는 그냥 돌아설 수는 없었다.
아마도 1995년 그때의 풍경인 듯 보이는 시위 현장을 따라가며 영화는 시작한다. 구호를 외치고 깃발을 휘날리며 행진하는 무리의 선두에 선 사람들, 그 바로 뒤로 일렬횡대로 줄지어 걷고 있는 사람들이 들고 있는 현수막에서 어렴풋이 <민주노총...쟁취하자>란 글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칼라였던 화면은 흑백으로 돌아서며 한 청년이 손에 든 책에 불을 붙이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두 남자의 시선
'1975년, 많은 사람들이 민청학년사건 또는 인혁당 사건으로 교도소에 갇히거나 사형을 앞두고 있었다. 어디에도 희망의 빛은 보이지 않았다. 그 무렵 수배 당하고 있던 나는 한 노동자의 얘기를 글로 쓰고 있었다. 전태일. 5년 전 자신의 짧은 인생을 살다간 그의 이름을 세상 사람들은 벌써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나는 멀리 있는 봄을 기다리듯 그를 생각하고 있었다.' <영수의 독백>
영화는 극중 문성근이 분한, 영수가 전태일의 발자취를 쫓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역시도 쫓기는 몸이다. 그녀의 곁에는 정순이 있고, 그녀는 공장에 다니며 영수를 보살핀다. 노동환경개선에 관심이 많은 정순은 야학에서 영수를 만났다. 둘이 알은 채를 할 수 있는 건 그들이 안심할 수 있는 그녀의 집 근처뿐이다.
'선생님은 전태일 생각만 하시죠?'
'정순이가 전태일이야.'
대화에서도 드러나듯 그들 남녀 둘 사이에 전태일이란 청년은 큰 존재로 느껴진다. '나의 마음속에는 온통 너뿐이야'라는 선의의 거짓말로 그녀를 달랠 수도 있는 그였다. 하지만 마음속 전부를 전태일이 차지하고 있듯이 너를 생각한다는 말로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주는 그녀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그였다.
교복을 입고 있어야 할 나이로 보이는 소년 전태일은 대구에서 상경하여 청계천 피복공장의 재봉사로 취직한다. 그럴싸해 보이는 직책이지만 여기저기서 불러대는 '시다'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그의 시선에서 본 공장의 노동환경은 부조리함이 가득하다. 가족들의 식사 자리에서 아버지가 일러주신 '노동법'은 그의 뇌리를 스치며 행동으로 옮기기에 이른다, 정규교육조차 다 마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다시 영수의 시선으로 돌아온다. 그가 쫓는 태일의 어머니로부터 태일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어머니는 영수에게 살아생전 태일의 소원을 말해준다. 그 녀석 소원이 많이 배운 친구를 곁에 두는 것이었다고. 태일을 쫓는 영수 역시 다른 의미로 쫓기는 몸이다, 그렇다 그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수배중이다.
영화는 두 남자가 바라보는 시선으로 칼라와 흑백의 화면을 넘나들며 흘러간다. 태일이 노동 현장을 바라보는 시선, 그런 태일의 발자취를 쫓는 영수의 시선. 영화는 보는 우리들로 하여금 관찰자의 입장에 서게 하여 태일이 마주한 당시의 노동환경과, 시간이 지났음에도 바뀌지 않음을 안타까워하는 영수의 마음을 느끼게 해준다.
바보회
태일은 저녁이 있는 삶은 고사하고 주말도 공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물론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그런 그가 시간을 쪼개 근로기준법을 공부하고 '바보회'라는 모임을 결성하여 같은 처지의 노동자들과 함께한다.
그가 보는 책의 내용과 현실의 실정은 너무도 차이가 크다. 그 사이의 간극을 좁히려 해 보아도 그의 힘으로는 도무지 역부족이다. 허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나는 바보입니다. 12살, 13살 난 어린 시다들이 먼지 먹고 폐병 들어 일전 한 푼 못 받고 공장에서 쫓겨나갈 때, 나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근로기준법을 보면, 우리도 당당히 인간적인 대접을 받고 살아야 한다고 쓰여 있습니다. 우리 재단사들은 모두 다 바보입니다. 우린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도 언젠가 인간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전 한 드라마에서 '계란으로 바위 치기'란 말을 보란 듯이 깨부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바위는 아무리 강해도 죽은 것이고, 계란은 아무리 약해도 산 것이라는. 그래서 바위는 세월이 가면 부서져 모래가 되겠지만 계란 속에서 태어난 병아리는 그 모래를 밟고 이겨내는 날이 온다고.
모임을 결성하며 떠난 바닷가 백사장에서 태일은 함께 뜻을 모은 동지들에게 결연하게 자신의 의지를 보이지만, 그 후 노래를 부르며 춤추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청춘이며, 상반되어 보이는 그의 모습이 애처롭다.
결연한 의지로 시작한 그였지만, 그를 둘러싼 바위들은 좀처럼 깨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이제 막 둥지로 떨어진 계란과도 같았고, 약한 껍질마저도 깨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누구도 그를 품어주지 않았으며, 자신과 같은 처지의 다른 계란들이 서로의 온기를 나눠주며 서서히 껍질을 깨내며 세상과 맞설 준비를 하고 있다.
아침이슬
세상은 어지럽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깨어있는 자들의 마음도 어지럽다. 허나 그것이 과연 자신들만의 것의 것이었을까, 영수는 그것이 괴롭다. 세상과 맞서 싸운 건 캠퍼스 안 그들만이 아니었다. 청계천에서 절규하며 쓰러져간 청년은 그들에게 또 다른 깨우침을 주었다. 그 시대 지도자에게 공과 과는 있을지언정 그 시절을 견뎌내고 이룩해온 거친 광야의 그들에게는 공만이 있을것이다.
쫓기는 신세의 그가 비를 맞으며 길을 가다, 우산 파는 소년을 불러 세운다. 그리고는 돈을 쥐여주며 경찰서 앞에서 비를 맞으며 경계 근무를 서는 순경에게 건네주라 하며 자신은 그대로 비를 맞은 채 가던 길을 간다. 쫓기는 자가 쫓는 자들이 모여있는 복판을 지키는 사내에게 보이는 아량이라니. 비가 오듯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이처럼 우리는 함께 비를 맞고 있으며 언젠가는 함께 개인 날을 마주하자고 건네준 듯하다, 자신은 조금 더 비를 맞고 걸어야겠다고 말하면서.
미싱은 돌고 도네 돌아가네
미싱은 돌고 도는데 변하는 것은 없다. 공장의 그들도 돌고 도는데 바뀌는 것은 없다. 발을 구르면 군말 없이 돌아가는 미싱처럼 불만 없이 돌아주기를 그들을 제외한 모두가 바라는 것 같다.
공장의 불합리한 노동환경에서 주위 사람들을 챙긴다는 것이 그만 태일을 공장에서 쫓겨나는 신세로 만들어버렸다. 몸은 다른 곳에 있지만 여전히 평화시장에서 고생할 그들을 생각한다. 바보회를 결성하며 다짐했던 굳은 맹세를 태일은 잊지 않았다. 다시 청계천으로 돌아온 그는 또다시 날갯짓을 시작했다.
전에의 어설펐던 운동은 이제 제법 체계적으로 진행된다. 세상에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전하고 노동자들이 뜻을 같이 할 수 있게 알린다. 하지만 도무지 자신들의 입장을 선뜻 받아주는 이들이 없다. 결국 열쇠는 그들이 쥐고 있는데 말이다. 대화는 좀처럼 이어지질 않고 대답 없이 돌아오는 메아리 같은 외침만 있을 뿐이다.
자신들이 못 배운 탓일까 자책하는 이들에게 태일은 새로운 제안을 하게 된다.
불태워진 책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1970년 11월 13일, 그 한마디를 남기고 그는 떠나갔다. 그의 나이는 불과 22살밖에 되지 않았다.
동지들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을 때, 그는 이미 생각했을까. 어쩌면 책하나 불태우는 것이 큰 파장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그는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 책 속에서는 기계들은 찾을 수가 없다. 쓰인 대로 세상이 돌아간다면 미싱이 돌고 돌며 돌아가는 그 사이의 시간을 다른 것으로 채울 수가 있을 것이다. 세상은 책을 쓰기만 했지, 열어보지 않았다. 덮여진 책은 너무도 당연한 모습이었고, 앞으로도 그러해야 했다. 그것이 멈추지 않고 달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업주들은 발을 구르지 않아도 달릴 수가 있었고, 그들의 횡포를 눈 감아 주는 이들이 있었다. 눈을 감고 귀를 닫으니 처절한 절규는 보이지가 않고 들리지가 않는다, 아니 보려고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피맺힌 절규와 함께 떠난 청년 전태일. 세상은 과연 바뀌었을까. 영수가 전태일의 발자취를 쫓으며 집필하던 책이 청계천을 거닐던 노동자의 손에 들려있고, 그런 영수의 시선 끝에 태일이 뒤를 돌아 보며 영화는 끝이 난다.
1995년을 다녀오려 했는데 너무도 먼 과거 속으로 빨려 들어 간 듯하다. 부끄럽게도 전태일이 어떤 의미로 그렇게 가야만 했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어릴 적 봤던 영화의 한 장면만이 너무도 선명하게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시대가 흘러 현대사를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 또한 많이 나뉘어져 있다. 가까이 있음에도 많은 것이 가려져 있었고, 저들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놓고 있다. 또 그 시대를 살지 못했던 이들은 가까이 하기를 거부한 채 밀어내기만 했다.
세상이 어렵던 시절 정의를 찾기 위해 싸운 이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정의를 말하면 바보가 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누구의 잘못일까.
어느 한 쪽에 서 곁눈질로 바라보지 않고 제대로 똑바로 서서 바라볼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본다.






Good post. This movie is amazing
Thank you so much.
좋은 글이네요. 요즘 시대에 다시 한 번 봐도 좋을 영화 같아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포스팅을 위해 세번이나 봤는데 볼 때마다 다른 느낌이었어요.
오랜만에 오셨네요. 전 이 영화는 못 봤고요, 전태일평전은 필독서였습니다. ㅎㅎㅎㅎ
항상 있었습니다. ㅎㅎㅎ조영래변호사가 쓰신 책 맞죠? 필독서라니 읽어봐야겠네요.
그때도 못 봤지만 지금도 그럴 것 같습니다. 보면 암 걸릴 것 같아서... 각자의 밥그릇만 해결되면 시스템에 순응하는 현실에서 앞으로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궁금하군요.
자꾸 암 걸리는 영화만 올려서 미안해요. ㅠㅠ 그 당시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자기 밥 그릇 사수가 가장 중요한 듯 싶습니다. 다음 영화는 김작가님께서 좋아하실 만 한 영화로 보답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좋아하시는 영화 올려주세요. 지금 소개해 주시는 영화들이 시의적절해 보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필요한 작품들이죠. 한 번씩 환기해야 하는데 이렇게 올려 주시면 감사한 일이죠 :)
이제 더는 못가겠습니다. 찾기도 어려워요. 대부분은 구독료를 내는 곳에서 보고있지만 그곳에 없어서 걸러지는 영화들이 너무 아쉽네요. 다음 건 이미 한 번 보았습니다. 아직 결말은 보지 못했지만...두 번은 봐야 글을 쓸 수 있는 것 같아요.
호오... 그렇단 말이죠.
그렇다면...
정말 오래된 영화죠. 아침에 비내리던 장면으로 시작했던게 사뭇 기억이 나네요.
다시 한 번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와 저장해놓고 생각날 때마다 보고 싶는 글입니다..... 올려주셔서 감사해요. 많은 분야가 그렇듯 제가 있는 영역은 여전히 근로기준법이고 뭐고 기계처럼 일해야하는 현실이 허망하네요.
앗,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너무 안타깝습니다. 어딜가나 그런 분야가 있는 것 같아요. 4차산업혁명으로 가는 마당에 아직도 3D직업이 넘쳐나는 현실.
좋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와~~~
추억의 전태일,홍경인이네요!!!
왠지 반가운 이 느낌...
초졸 저리 가라 휘이휘이~~
저 초딩시절보다 국딩의 기억이 더 많답니다. 밀어내지 말아요.ㅠㅠ
용띠클럽들 중에 젤 좋아하는 가수가 있는 사람이에욧!
풉
추억의 용띠클럽...
초졸이지만 국졸의 마인드를 가지신 그대를 더 이상 밀어내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