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침묵의 금기를 깨다.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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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개인적인 문제로 머리가 좀 무겁습니다. 3년전에 동문 상조회를 우연치 않게시작하게 되었는데 내부적으로 문제가 생겼나 봅니다. 외국에 살고 있어서 정기모임이나 경조사에 직접 참여는 못하지만 회비 내는 일과 간단한 위로의 말로 대신하고 있는 제가 이제 입장이 달라져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좀 들어주실 수 있나요? (다음은 제가 경조사 커뮤니티에 올릴 글의 일부입니다.)


오랜만에 소식을 전해본다.
한국이 그립고, 친구도 그립고... 나는 늘 그렇게 그리운 처지에 놓여 있구나.
올해는 유난히 추워서 고생들이 많겠네. 건강들 잘 챙기고 있지? (중략)
나는 이 문제가 특정인의 문제라고만 생각하고 싶지는 않구나.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기행과 만행으로 표출되는 꼰대정신이 우리 친구들에게도 침투해 있다는게 안타깝고 슬프기 그지 없구나. (중략)
굳이 애쓰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얻어지는 사회적 위치라는게 발생하지. 그건 우리가 지위를 남용하거나 권력을 휘두르라고 있는건 아니겠지.연륜과 지혜로 곤궁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고, 수고로움으로 얻은 경제적 여유를 베풀 줄 알며, 타인의 입장과 상황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약자에게 사회적 복리를 돌릴줄 아는 여유. (중략)
작게는 우리 친구들 관계에서 말한마디, 행동 거지 하나, 크게는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이들에게 행하는 질서있는 행동. 그런면에서 볼때 며칠동안 있었던 사건들에 대해 대처하는 우리의 모습이 결코 아름답다라고 말할수는 없겠구나. 나를 포함해서 말이지.(중략)
내가 먼저 침묵을 깨기로 한것에 대해 양해를 부탁한다.
나는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친구인 xxx를 상조회에서 강제 탈퇴시킬 것을 공식적으로 요청한다.(중략)


침묵하는 자

어제 스팀잇에 논란이 되었던 글을 대했을때 하고 싶은 말은 많았으나, 역시 살던 대로 입을 다물고 내 갈길을 가기로 했었습니다. 나는 늘 그렇게 침묵하는 자의 편에 서서 살아왔습니다.

언젠가부터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일이 어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사회 구조나 체제를 비판할 때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살면서 내 친구와 내 이웃을 비판해 본적은 거의 없습니다. 층간소음 문제가 생겼을 때도 저렇게 뛸만한 이유가 있겠지, 끼어들기 얌체운전자에게도 무슨 급한 사정이 있겠지, 공공장소에서 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도 못 배워서 그러겠지. 누구에게든 비난의 화살을 돌려본 경험은 별로 없습니다.

뒷담화를 혐오하고 가식적 관계를 터부시하며 오로지 진심과 이해를 관계의 정수로 여기기 때문에 인간적으로 미성숙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과는 자연스럽게 관계를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내가 친구를 잘라내야 하는 시점에 서게 되니 내 살을 도려내는 듯 아픕니다. 그런데도 내가 이 일을 공식적으로 거론하게 된 데에는 침묵의 금기를 깨야 한다는 당위성 때문입니다.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전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미투 운동(#MeeToo 나도 피해자다)이 우리나라에서는 문단내 성폭력 고발과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이어져 한국 사회 전반으로 퍼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남성중심사회에서 흔히 용인되어 왔던 일상적인 성희롱과 성추행 또는 성폭력 사태를 고발함으로 그런 행위가 용인되어서는 안 될 폭력임을 자각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번 남자동문의 경우 동문내에 알리고자하는 여자동문에게 명예훼손죄를 운운하며 자기 잘못을 뉘우치기는 커녕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 엄포를 놓았다고 합니다. 실제로 우리 나라 법이 일단 타인에 대한 비판적 표현을 하기만 하면 허위, 진실 여부를 불문하고 죄의 구성요건에는 해당되므로 명예훼손 고소, 고발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고소 공방이 이어지면서 결국은 남자동문이 여자동문에게 간단한 유선상 사과로 일단락 되어졌지만 씁쓸함을 감출수가 없습니다.

미투운동이 점점 성 대결 양상을 띠면서 법적 공방으로 가는 현 상황이 우리 동문내에서도 같은 양상으로 보여졌던 겁니다. 결국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방안의 제시나 타동문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지 못하고 사건은 마무리 되어질 상황입니다. 굳이 미투 운동에 빗대어 보지 않더라도 남자동문의 태도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용납할수 있는 선을 넘어선 상태라고 판단합니다.

침묵의 금기를 깨다

미투운동이 성폭력 피해에 관한 문제의식을 이끌어내고, 대중은 이걸 진지하게 받아들여 기존 성폭력 관점을 깨는 선순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대다수의 미투운동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관점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간과되어서는 안될것이 바로 대중의 관점입니다.

다시 침묵의 이야기로 넘어가야 할것 같습니다. 나조차도 법적 싸움 운운하는 두 친구의 싸움을 말리기 조차 어려웠습니다. 왜냐고요? 그 누구의 편에서 서서 목소리를 낸다는 행위 자체가 내가 살아가는 방식과는 맞지 않아서 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시점에도 앞으로 몇시간후 내가 상조회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는 시점에서도 나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침묵하는 대중이, 동문들이 모두 문제를 등한시하거나 관심이 없거나 동조하기 않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삶속에서 침묵하는 방식으로, 조금은 수월하게 살아갈수 있는 방식을 택한 것일 뿐이므로 그들을 원망하거나 비난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침묵하는 다수중의 하나에서 금기를 깨고자 하는 이유는 문제의 해결 방법 때문입니다. 경고가 아닌 퇴출을 공론화 시키고자 하는데는 그러한 이유가 있습니다. 부정을 부정하다고 외치는 과정에서 좀더 강력한 방법으로 동문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것이 첫번째 목적입니다. 두번째는 절차를 통해 얻어진 강제적 벌칙을 통해 부정의 싹을 도려내는 것이고요, 세번째는 향후 재발의 싹까지 처단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고발자가 되고자 함은 아닙니다. 그저 하나의 마중물이 되기를 바랄뿐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건전한 모임,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시작점이 될거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여러 가지 우려는 떨칠 수가 없습니다. 나의 숙성되지 않은 생각으로 저지른 행동이 과연 우리 모두를 위해 잘 한 것일까? 그냥 이대로 시간이 흘러 해결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까? 아무래도 며칠밤은 다리 뻗고 자기 어려울것 같습니다.

무엇이 문제였으며, 어떻게 바꾸어 나갈것인가에 대해 언론과 시민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집요하게 관심 가져주시기 부탁드린다.
(서지현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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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꾸준한 포스팅을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텀블님!

아직 뇌가 섹시하지 못한 저는 어떤 댓글을 달아야할지 한참 고민하게 되는 글이네요....

저도 제 목소리를 잘 내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낼때도 있어요! 모두가 나서지 않을때.. 모두가 그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데도 나서지 않을때는 냈던것 같아요! 에빵님도 그런 상황인것 같은데..맞나요? 그래서 분명 잘하신 행동일것이라 생각됩니다!ㅎㅎ에빵님 뇌는 언제봐도 섹시^^

감사합니다! 맞아요. 누구하나 나서지 않는 상황입니다. 홍열님, 뇌 말고 바디가 섹쉬하고프다니까요 ㅋㅋㅋ 요즘 운동 안 하고 있어요. 구차니 ㅠㅠ

운동 안해도 완전 짱짱이잖아요! 다 알거든요~~~

타인의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하는건 쉽지 않은것 같습니다
특히나 그 대상이 자신보다 힘이 있다면 더더욱 힘들죠
저도 웬만한 불의는 다 참는 스타일(비겁한.. ㅠㅠ) 이라
딱히 뭐라 드릴 말씀은 없지만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랍니다

아~ 솔직하십니다. ㅎㅎㅎ 사람은 자기 스타일로 살면 됩니다. 화이팅!

네 어쩌겠어요 이렇게 생겨먹은걸..
생긴대로 살아야죠 ㅎㅎ
화이팅입니다~!!

소신있게 하고 싶은 거 하세요 에빵님 ^^
이제까지 제가 글로 접했던 에빵님은 도리에 어긋나는 일은 절대 하실 분이 아니니 분명히 가치있는 결정을 하시리라 믿어요 ㅎ
어떤 선택에도 반대 급부가 있기 마련이니.. 넘 고민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
좋은 것을 말하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면.. 이미 멀어진 사람들 아닐까요? ^^

ㅎㅎ호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사는 스타일입니다. 동물원님 응원을 보니 힘이 불끈 솟는군요! 감사합니다!

본인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데요!
대단하다고 봅니다.
에너자이저님의 생각대로! 응원합니다!

넵! 제가 조금더 고민해보고 실천할게요. 감사합니다.

그래서, 법 이전에 평판이라는 것이 더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법은 구멍이 너무 많습니다. 평판은, 관리하기가 정말 까다롭습니다. 평판이 스팀잇처럼 표시가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니... 이런일이! ㅎㅎㅎㅎㅎㅎ 혼자 막 웃다가 ㅎㅎㅎㅎ 다크님~ 이상하게 다크님 글이 회색처리되고 댓글도 안 보이는 괴이현상에! 이상하다... 왜 그럴까 살폈더니 밤새 다크님이 차단상태로 ㅎㅎㅎㅎㅎ 무슨 일이죠? 왜 핸폰이 자유의지를 발현한거죠? ㅋㅋㅋㅋ 겨우 살려놨어요. 다크님은 내 스팀잇 생명줄 같은분인데 ㅎㅎㅎㅎㅎ

오늘도 응원 감사드리고요. 저 거기에 글 올리고 반응 살피는 중이랍니다!

서지현 검사의 행동을 두고 용기있다 말하는 것도 어떤의미에서는 위선이 아니였을까 생각이 드네요. 왜 용기를 내지 않으면 해야할 말도 할 수 없으며, 어렵게 꺼낸 이야기를 두고 용기있는 행동이었다 응원해야 하는지...
언젠가는 용기 없이도 당당히 외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에빵님의 금기를 깬 선택에 박수를 보내며 더 나은 방향으로 잘 마무리 되기를 바랍니다.

맞습니다. 누구나 잘못된걸 말할수 있는 사회가 아름다운 사회지요! 이터나라이트님의 응원에 힘입어 용기 아니 제가 할수 있는 일을 해보렵니다. ㅎㅎㅎ 감사합니다.

저도 평소엔 침묵하는 편이라.. ㅠㅠ.. 언제나 옳은 말을 하는 거에도 용기가 필요한 법이죠. 에빵님이 용기를 내 옳은 판단을 내리셨음을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낭만그래퍼님! 침묵의 달콤함을 끊어보겠습니다.

좋은글 리스팀 할게요! 저도 과거에는 '둥글게' '부드럽게' '포용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배워왔고, 사회에서 그렇게 강요하기도 했던것 같아요. 그러나 사실 세상에는 분명히 '가해자'와 '피해자'가 존재하고, 그 과정에서 평화를 원한다며 침묵하는것 자체가 방관죄이며 가해자에게 힘을 보탠다는걸 알게되었죠.
그 침묵을 깨신 에빵님께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어떤 사람의 생명을 살린거나 마찬가지일 것이고, 이후 2차 3차 피해를 막은 엄청난 일을 하셨네요.

리스팀 감사합니다. 옳으신 말씀이예요. 우리가 충성과 복종을 강요받는 시대가 있었죠. 시대 흐름에 맞게 에빵이가 업그레이드된건가요? ㅎㅎㅎㅎ 응원도 감사합니다. 원더님도 화이팅!

참 힘든 결정 하셨네요. 어떤 문제가 생기면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하지만, 막상 그렇게 하기는 참 어려워요. 그게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잘 압니다. 잘 하셨어요.
많은 고민 끝에 도달하신 결론인만큼 바른 결정 내리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분간 힘드시겠지만 잘 이겨내세요.

브리님. 어제 글을 못 올렸어요. 마지막 편집 중입니다. 이후 파장에 대해서 여러가지로 예상해중입니다. 글의 수위를 조절해볼까해서요. 아~ 스팀잇보다 어렵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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