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습작] #1 이발소 할머니 (하)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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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가을은 유난히 풍요로웠다. 하늘은 높고 맑았으며 집집 마다 마당에 심어 놓은 감나무엔 빨간색 홍시가 주렁주렁 달렸다. 까치들은 끼니 걱정없이 높나르며 파란 하늘에 까만 수를 놓았다. 그해 가을은 전국적인 대풍년을 맞아 들썩들썩 축제분위기였다.

전국에 흩어져 살던 일가 친척들이 추석을 지내기 위해 장손인 우리집에 모두 모였다. 평소 왕래가 드물던 먼 친척들도 그해 추석엔 많이도 찾아왔다.

그렇게도 풍요로운 추석날 아침에 엄마는 돌아가셨다.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임종을 지켜보았다. 어린 나는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한방에 엎드려 엄마를 멀리 보내야만 했다.

장례식은 엄청나게 소란스럽게 시작했다. 너무나 분주해서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엄마가 복이 많아서 이 많은 사람들을 다 불러들인거라고 큰소리로 떠들어댔다. 이내 마을 아주머니들이 몰려들어 음식을 차리기 시작했고 추석 차례를 지내기 위해 미리 준비한 음식들이 내어졌다. 따로 준비할것도 없이 그대로 장례식 풍경이 되었다. 마치 영화 세트장처럼 미리 누군가가 세팅해 놓은 듯 말 그대로 스탠바이 상황였다. 넘쳐나는 음식과 높은 인구 밀도에 숨이 막힐듯이 답답했다. 무엇보다 참기 어려운건 사람들의 시끄러운 말소리였다. 제발 입좀 다물어 주라고.

그때까진 그랬다. 장례식 둘째날 벙어리 할머니가 찾아올때까지는.

할머니는 대문으로 들어서기 전부터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한다.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바닥에 털썩 주저 앉는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할머니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 할머니는 아주 천천히 발을 구르기 시작한다. 두발을 쭉 뻗은채 주저 앉아 한발씩 번갈아 가며 바닥에 비벼댄다. 동시에 두손도 번갈아 가며 눈물을 훔쳐낸다. 마치 장난감 사달라고 조르는 어린애 마냥 동동구르며 큰소리로 울어댄다. 어버버. 어버버. 할머니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고 길어진다. 어버----버. 자기옷을 쥐어 뜯기 시작한다. 가슴팍께부터 허리께로 옷을 쥐어 흔들며 가슴을 치고 또 친다.

사람들은 일제히 눈을 찌뿌리며 누군가 이 상황을 진정시키기라고 눈치를 주고 받는다. 동네 아주머니 몇분이 달래도 보고 억지로 끌어도 내려 했지만 영 속수무책이다. 할머니에게는 수퍼파워라도 있는 양 엉덩이 한줌조차 들썩여 지지 않는다.

이제 우리집에서 들리는 소리는 오직 할머니 곡소리뿐이다. 리듬을 타는 소리도 아니요 반복해서 내는 소리도 아니다. 끊임없이 부르짖으며 절규한다. 흡사 짐승의 소리 같고 고막을 긁어대는 고역의 소리다. 그때까지 눈물을 꾹꾹 삼키고 있던 늦둥이 나의 울음이 터진건 그때부터다.

할머니와 난 밤새 주거니 받거니 울어댄다. 할머니는 마당에서 나는 안방에서. 몇번을 까무룩하며 밤새 울부짖는다.

다음날 장지로 출발하는 꽃상여가 도착했다. 알록달록 어여쁜 색깔은 엄마가 외출할때마다 찾아 입는 예쁜 원피스 같고 기분 좋을때 콧노래를 부르며 바르던 립스틱같다. 엄마는 찔레꽃이란 노래를 자주 불렀는데, 친척들 모두 찔레꽃 색의 옷을 차려입고 상여 끝에 줄을 선다. 찔레꽃잎은 아롱아롱 낱으로 날아올라 끝없이 흩어진다. 찔레꽃잎이 흩어질수록 상여 꽃은 더욱 창연하고 도도하게 빛이 난다.

상여는 동네를 짧게 한바퀴 돌고 버스를 타고 장지로 이동할거라 한다. 할머니는 툭툭 털며 일어나 상여끝에 매달렸지만 이내 마을 아주머니 몇분이서 잡아 끌어낸다. 소리를 지르려고 했으나 나오는건 거친 쇳소리와 쉰소리뿐이라 쉽게 제압 당한다.

사람들은 나를 앞세워 출발을 재촉한다. 그러나 오색창연한 꽃들 때문에 현기증이 나서 걸을 수가 없다. 나는 걸음이 자꾸 뒤쳐져 결국 맨뒤쯤에 서게 된다. 문득 뒤를 돌아본 나는 깜짝 놀란다. 까치 한마리가 마당에 떨어진 홍시를 먹으려고 다가오다 할머니를 보고 푸드덕 파란 하늘에 검은 점을 수 놓는다.

감나무 아래 할머니는 미동도 없이 앉아 있다. 할머니는 아무것도 걸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마치 다시 엄마 뱃속으로 들어갈 것처럼 잔뜩 웅크리고 앉아 있다. 마을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할머니는 서서히 일어난다. 나는 주위 사람에게 무어라 이야기를 하려고 했으나 거친 쇳소리와 쉰소리뿐이라 바람에게 숨을 먹힌다. 나는 아무 소리도 만들어 내지 못하고 꽃잎 속에 파묻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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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언어가 진실을 희롱하고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음식의 맛을 해치는 양념같다는 생각도 들고. 할머니의 터져나오는 곡소리에, 그 민낯의 감정에, 제 마음도 쿡쿡 쑤십니다.

스프링필드님은 어쩜 이리 비유를 맛깔스럽게 하시는지... 감사합니다.

좋은 컨텐츠가 즐거운 스티밋을 만드는거 아시죠?
짱짱맨이 함께 합니다

짱짱맨이 최고!!!! 짱짱맨이 최고!!!!

소중한 사람이 돌아갔기에 슬픔의 크기는 비교할 수 없지만
자식을 여읜 할머니의 슬픔의 크기가 너무커서
헤아릴수가 없네요. ㅠ

이거 그 전편이랑 연결되는 거라서요. 자식이 아니고 유일하게 동네에서 자기를 돌봐주던 "엄마"였답니다. 남이었죠. ㅋ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와... 짠하네요
멋진 소설가가 오셨군요!! ㅎㅎ

ㅋㅋ 부끄럽습니다. 그냥 한번 써본건데요....

잘 보았습니다. 글솜씨가 대단하세요. 감정이입되며 봤습니다.

과찬의 말씀 감사합니다. 말그대로 기억의 습작입니다. ㅋ

이런 좋은 글을 읽으면 저도 글쓰는 능력이 상승되는 느낌이랄까..!!? 글솜씨가 정말 좋으시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글은 처음 써보는거라 계속 쓰다보면 좀 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짠한 이야기네요...요새 눈물이 많아져서 이런글 읽으면 폭발합니다 ㅠㅠㅠ

사실 눈물 흘리며 썼어요 ㅜㅜ

한 편의 영화나 드라마를 본 느낌이네요. 머리 속에 화면이 떠오르게끔 묘사를 잘 하시는 거 같아요.
이렇게 좋은 글을 보면 저도 소설이 쓰고 싶어서 손이 근질근질.. ^^;

브리님이 쓴 소설 보고 싶어요. 저야 글쓰는게 처음이니까 영 어색하고 군더더기 투성인데요... 늘 부끄럽습니다.

할머니는 정말로 어머니를 좋아했구나... 라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참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해가 쨍쨍한 이른 오후인데 어쩐지 우울하고 눈물이 좀 날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ㅜㅜ 이런 슬픈 이야길 읽으라고 권해주신 에빵님께 감사드리면서 다음에는 웃긴 이야기도 해주세요! 라는 부탁도 드려봅니다.

네! 재밌는 추억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ㅎㅎ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님

상편부터 하편까지 읽어내려 왔습니다.
이제부터 에빵님의 텍스트를 좋아하게 될 것 같습니다.

아, 정말요? 감사합니다. ㅎㅎㅎ 절 춤추게 하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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