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끄적끄적 밀린 일기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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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가 꼭 눈처럼 오네! 호호호!"
베란다 창을 열며 반가운 마음에 소리쳐 본다.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깜짝 놀랐다. 비가 뽀송뽀송 눈처럼 날리다니 참 신기한 노릇이다. 송이송이 흩뿌리는 눈송이같이 폭신하게 내린다. 비가 서 있다고 표현한 김용택 시인과 쏠선생님에게 이 비를 꼭 보여드리고 싶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바람이 멀쩡히 서 있는 비에다가 분탕질을 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오늘은 바람에게 큰 선물을 받은 듯 하다. 오! 나에게 시를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2

어느날인가부터 남편은 보리밥을 먹자고 노래를 하더니만 급기야 보리를 엄청 많이 사오고야 말았다. 쌀과 현미, 렌틸콩에 보리를 섞어 밥을 해 먹기 시작했는데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오늘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 "보리밥 먹으니까 방귀가 더 잘 나오지?" 헉. 이건 또 무슨... 보리먹고 방귀대장 '뿡뿡이'가 되고 싶은 거였나 보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바로 핸폰을 들어 이 글을 쓰고 있다.)

3

나의 아름다움을 위해 너는 죽어야 한다. 끝없는 탐미주의. 나의 아름다움을 위해 너는 나를 찬양할 것이다. 허황된 낭만주의.

4

나는 겁쟁이이다. 항상 좋은 것만 보려고 하고 좋은 것만 이야기하려고 한다. 세상일이 꼭 그럴수만은 없을 건데 내가 세상을 절반 만큼만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가끔은 내 반쪽의 시선을 의심하는 날이 온다. 상처를 이야기하고 아픔을 드러내는 일. 나라고 마냥 매일이 즐겁고 좋기만 하겠냐만 상처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왜냐면 나는 눈물이 너무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도 꺼내기 전에 눈물부터 터져버리니 참 난감한 노릇이다. 더 이상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5

근력이 안 올라오니 조급증이 대신 올라오기 시작한다. 아, 왜 이렇게 회복이 더딜까. 근력운동을 할 때마다 토가 나오려고 한다. 그중에서 가장 힘든건 어깨 운동인데, 조금 하다보면 굳은 어깨 때문에 고역이다. 복싱 동작도 어렵고, 숄더프레스를 할 때는 어깨에 무거운 돌을 짓누르는것 같다. 조금씩 어깨 운동만 따로 해봐야겠다. 제일 싫어하는 운동에 집중하게 되는 날이 올 줄 알았다. 운동에 편식은 금물이다.

6

세상에 세상에 십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간 기분이다. 공모를 마쳤다. 쓰는데 공을 들인 시간보다 고민을 하는 시간이 길었던 만큼 정신적인 부담감이 컸었다. 끝남과 동시에 두통과 심장 두근거림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끔해졌다. 조금 더 시간을 두고 교정을 볼까도 했지만 정말 몰라몰라몰라를 외치며 온라인 접수 버튼을 눌렀다. (왜냐면 나는 내 글을 읽는게 참 지겹다!) 집에 먹을게 마땅치 않아 라면을 끓여 맥주를 마시고 신나게 놀고 있는데 남편이 상금이 얼마냐고 물었다. 글쎄! 그런건 중요하지 않아라며 놀다가 문득 몇명에게 상금을 주는지가 궁금해져서 찾아보다가 발견한 공모서식! 공모서식에 맞추어 작성하고 파일명을 형식에 맞추어 지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모신청자체를 인정해주지 않는단다. 아! 그럼 파일 업로드하는 화면에 공모서식에 맞추었냐고 좀 물어봐주지...! 혼자 궁시렁대다가 공모서식 파일을 겨우 찾아 다운받았지만 정확한 서식이 안 써있다. 적어도 글자체와 크기, 간격이라도 언급을 해주던가...! 아놔 몰라몰라몰라! 원래 파일에서 내용을 복붙해 굴림, 12로 마무리하고 담당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다행히 이 파일로 접수해준다 하는데 솔직히 서식에 맞게 했는지 자신이 없다. 제발 공모신청만이라도 되어라. 제발!! 이렇게 한발을 슬쩍 빼놓는 꼼수!

7

작년에 이어 큰아이가 올해도 하이킹을 다녀왔다. 1년에 두차례씩 다니는데 이번엔 하루 16킬로씩 3일을 걷고 왔다 한다. 25킬로 짜리 7리터 배낭을 등에 지고 걸었으니 군대를 미리 가본 셈 치라 했다. 아이는 '태양의 후예'를 보고 난뒤 유시진처럼 장교가 되고 싶다고 했다. 유머코드가 자기랑 딱 맞는 유시진한테 반했다고 했다. 오늘 우연히 작년 하이킹을 같이 간 아이의 엄마를 만나 잠깐 이야기를 했는데 그 분의 딸아이가 큰 아이의 유머가 굉장히 재미있다고 했다고 한다. 음... 장교가 되려면 무슨 방법이 있는지 알아봐야겠다. 왜냐면 나도 유시진의 농담에 반했기 때문이다. (혹시 아시는 분?)

8

외출하면서 핸드폰을 놓고 갔다. 운동을 마치고 볼일을 보고 집에 와서 보니 알림엔 아무것도 떠 있지 않았다. 아침에 알림 확인을 이미 해버린 이메일 두개만 오도카니 들어와 있다. 하나는 애들 학교 주간 뉴스레터이고 다른 하나는 와인가게 프로모션 광고 메일이다. 슬프다. 와인이나 사러 가야하나보다.

9

보려고 미루어둔 영화들이 너무 많다. '보고 싶은 영화리스트'에서 적어도 이틀에 하나씩은 지울수 있기를 바래본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남편이 딱 5일 정도 출장을 갔으면 좋겠다. 그가 출장을 가고 나면 커다란 킹베드에 노트북을 올려 놓고 뒹굴뒹굴 자세를 고쳐가며 영화를 하룻밤에 세편 정도는 볼수 있을 것이다. 맥주는 딱 네캔 정도만 사 놓고, 하루 1캔씩 마시면 좋을 듯하다. 인생 모 있나, 싶다.

10

오늘은 운동끝나고 식사를 같이 하겠냐는 사람에게 노를 하고 얼른 집에 돌아와 나에게 주는 작은 선물을 펼쳤다. 행복하다. 나는 참 단순한 내가 좋다.


여기서 잠깐! 퀴즈!! 쏭가님 따라잡기!
오늘 제가 준비한 '저를 위한 선물'은 무엇일까요? 힌트는 답을 알고 나면 눈물이 또르르 할 정도로 흔한 것입니다. ㅎㅎㅎㅎ 제일 먼저 맞추신 분에게 1스달 보내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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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빵님의 하루를 보는 맛이 쏠쏠 하네요 ㅎㅎ
식사를 안하고 오셨고 단순하다고 하셨으니 먹을 거 같긴 한데..펼쳤다고 하시니.. 펼치는 음식이 뭐가 있을까 싶다가 눈물이 또르르 나는 음식이면 흐음 한식같기도 하고.. 맥주랑 같이 드실 거 같기도 하고..
흐음..좋아하시는 한국 감자칩?ㅋ 보리밥이랑 같이 먹을 두부전?
아 모르겠어요.ㅋㅋㅋ

하루 아니고, 4일치입니다 ㅎㅎㅎ 오! 가장 근접하신 답인걸요! 순간 맞추시는 줄 알았는데, 아깝게도 땡!
맥주랑 같이 먹은 것도 맞고, 보리밥이랑 같이 먹은 것도 맞는데! ㅋㅋㅋㅋ

동그랑땡?

ㅋㅋㅋㅋㅋㅋㅋ 방향을 너무 꺽었어요. 땡! 동그랑땡 ㅋㅋㅋㅋㅋㅋ

치맥?ㅎㅎ

떙! 와우!!! 이 기분이군요 ㅎㅎㅎㅎㅎㅎ ㅋㅋㅋㅋㅋㅋ 이거였어!

근력운동은 힘들죠! 조급해 마시고 천천히... 인생 오늘만 살고 그만둘건 아니잖아요^^

백팔배 얼마나 오래 하실려나 제가 매의 눈으로 지켜볼겁니다 ㅎㅎㅎㅎ

글이 이렇게나 재미난데, 정작 에빵님이 지겨워하시다니! 에빵님 제가 촉이 좀 좋은 편인데요, 왠지 공모에서 입상하실 것 같아요 +_+ 그리고 마지막 저의 정답은 햄버거요...♥ (이유는 제가 햄버거 덕후이기 때문에!!)

제가 쓴 글은 몇번 읽다보면 지쳐요. 나중엔 쳐다도 보기 싫을 정도로 전 그렇더라고요 ㅋㅋ 답은 햄버거 아닙니다! 그것보다 더 불쌍한겁니다 ㅋㅋ

피자?ㅋㅋㅋ
저는 치킨 을 선물로 줘야겠습니다 ㅎㅎㅎ

피자는 아닌데요, ㅋㅋㅋ 치킨도 아니고, 그것보다 더 슬픈겁니다 ㅠㅠ

맥주는 일일음료인거 아시면서 ㅋㅋㅋ 땡!

글 잘 읽고 갑니다! 금요일 선물은 4캔에 1만원짜리 세계맥주가 최고인 것 같습니다ㅎㅎ

어멋! 진짜 천국이군요. 어떤 맥주인가요? 정말 싸네요.

하하.. 남편의 영화를 못보게 하나요?ㅋㅋ
입상하시면 공개공개!!

영화를 못 보게 하는건 아니고요, 각자 노는데 방해될까봐서요 ㅋㅋㅋ 공개할일은 없을것 같아요!

저도 참 단순해지고 지고 싶어요~~~~!!
너무 생각이 많아요.ㅠㅠ
그런데 어떨 땐 참 사소한 것에 감동하고 좋아하는 거 보면
단순한가 싶기도 하고..ㅋㅋ

'나에게 주는 작은 선물'은 빵~!!^^

사소한것에 의미를 두는 삶이 풍요롭죠. 선물은 빵아닙니다! ㅋㅋㅋ

케이크!

ㅎㅎㅎㅎ 땡입니다~ 아하! 더 낮춰야해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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