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Essay 001 | 현실감각과 관계들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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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의 대상은 나와 관계를 맺는 사람일수록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사물, 공간보다 더. 그래서 성장과정에서 어떤 환경이 지배적이었는지가 중요하고, 그것이 사람의 성격과 성향,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선택을 결정하기도 한다. 어떤 가정의 상황과 분위기 안에서 자라왔는지, 학교의 친구들은 어떤 타입이었으며 경쟁의 정도는 어떠했는지, 새롭게 만난 사람들은 삶 속에서 어떤 방향을 추구하는지 등등.






알게 모르게 나의 선택과 기분은 동조된다.


그것들은 사소한 물건을 선택하는 기준과 취향에서 시작해서 결정적으로는 '현실감각'에 관련한 방향을 설정하는데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내가 영향받지 않았다고 느끼는 것 조차 지나고 보면, 아무런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을 때도 있다.

비슷한 동네에 산다는 것은 비슷한 경제적 수준을 갖췄다는 것을 의미하고, 같은 전공을 공부한다는 것은 같은 미래를 꿈꾸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같은 것을 공부해서 같은 일을 선택한다고해서 같은 가치관이나 인생의 방향을 지녔다고 착각할 수 있는 자유는 학생때와 그 연장선에 있는 사회초년생일 때가 그 마지노선이다.

오히려, 비슷한 바운더리 안에 있는 것 처럼 보여지는 사이에서 더 큰 간극을 자주 느끼게 된다. 선호하는 음료나 패션스타일은 조금 달라도 심리적 거리감을 크게 느끼지 않지만, 방향과 관점의 차이는 미묘하게도 더 큰 간극을 느끼게 한다. 서로 다른 관점을 교류한다는 것도 결국은 타인의 새로운 생각을 듣고 인정하면서 나는 나대로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겠다는 마음가짐을 전제로 한다. 그 전제가 없는 '다른 관점'은 그냥 방향이 다른 것이다.






방향은 결국 현실감각


다르다고 혹은 비슷하다고 느끼는 '방향'이라는 것은 결국 현실감각에 관한 것이다. 어차피 각자의 인생은 다 각자의 몫이고, 비슷한 방향을 추구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현실감각과 관련된 방향은 분명 결을 달리하고, 모이는 사람을 다르게 만든다.

그 잡지는 왜 잘 팔리는거야? 이해가 안가. 그 말에 나는 마치 그 회사 직원이라도 된 것처럼 옹호하는 나를 발견했다. 예전의 잡지는 당장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들을 나열했지만, 요즘 사람들은 그런 것 보다는 총체적인 경험이나 자신을 브랜딩하려는 차원에서 그런 것들을 더 열광하게 되니 잘 팔릴 수 밖에 없다고 말을 늘어놓았다. 어딘가 말문이 막히는 듯 했다. 설득되지 않는 듯 했고. 내가 그 잡지를 좋아해서가 아니고, 그 잡지를 좋아하게 만들기 위해서 한 말이 아니었다. 다만, 일대일로 얻을 것이 없어보이는 것에 대해 효용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듯한 질문에 어떤 유연한 대답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현실감각을 주고 받았다.






주변을 구성하는 관계들


나의 현실감각과 나의 '요즘의' 주변을 구성하는 관계들을 생각해보면,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동시에 사회가 만들어놓은 프레임을 조금은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돈 없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관점은 아니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면서 돈도 좀 벌어야겠다는 관점이 두드러진다. 제일 어려운게 그거라고들 하지만, 우리 밖을 나온 적이 없는 사람들이 말하는 우려를 적절히 필터링할 수 있는 자기 안의 유연한 확신들이 각자 안에 서로 다르게 들어있다. 그런 사람들은 보면, 어딘가 유대감이 느껴지면서 응원하게 되고, 나도 더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한다.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인생에 해야할 숙제같은 단계를 묻고 또 묻는 사람들. 자신이 이미 강을 건넜기에 너도 어서 강을 건너오라고 손짓한다. 언제 강을 건널지, 혹은 강을 건널지 말지는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어차피 흐르는 물처럼 멈추지 않는 것이 시간인데, 강을 건넜다고 해서 숙제를 끝낸 것 처럼 느끼는 것도 우스워보인다. 하지만, 내 주변이 모두 강을 건너고 내 쪽에 나 하나만 남는다면, 사람은 나도 모르게 초조해지기 마련이다. 모든 일에 있어서 마음의 준비를 완벽하게 끝내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내가 내 발로 건너기 전에 얼떨결에 무언가를 결정하게 되는 일은 이제 좀 그만하고 싶다. 얼떨결에 동조되어 하던 어설픈 선택은 어릴 때 했던 것으로 충분하기에.

결국 사람은 크고 작게 모여야하고, 모이게 된다. 어떤 걸 기준으로 모여야 긍정적으로 즐겁게 지속될 수 있을까. 누구든 모일 수 있지만, 아무나 모이지는 않는 모임의 결이란 어떤 것일까. 개인이 선택하는 기준의 모든 범위를 우리는 모조리 '취향'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선택하게 되는 것들의 방향은 좋아하는 색을 결정하는 것과는 다른 범위의 '삶에 대한 취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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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중에 생각하고 있는것들을 자세히 설명해주셨네요.
@emotionalp님의 글에 공감합니다.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대부분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계신것같아 놀랐습니다.

팔로우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반가워요:)

저도 몇년 전, 마음에도 없던 '얼떨결에 동조된 선택'을 내리고, 제게 무언가를 기대한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준 것에 대해 오랫동안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어요. 도대체 왜 섣부르게 제안을 받아들여서 지속하지도 못할 것을 덜컥 시작했나, 하면서요. 완성을 하지 못했다는 중압감을 느끼는 건 꽤나 괴로웠어요. 그래서 지금 오롯이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일들에 깊은 책임감을 느끼며 나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ㅎㅎㅎ 휘청거릴 때도 많지만요! :) 오늘 몽상가p님의 글을 읽으니 조용한 응원을 받는 기분입니다! 헤헤

많은 사람들이 책임져주지 못할 타인의 삶의 선택에 지나치게 관여하려는 말들을 쉽게 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가끔 하게될 때가 있어서 늘 인지하고 자중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언제나 응원하고 있습니당 :)

숙제가 제가 생각하는 숙제가 맞다면... 나름 숙제하는 재미도 있네요. 데드 라인 있는 건 아니여서 저도 좀 늦었지만, 하고 싶을 때 하니까 재밌어요. xD

숙제는 끝이 없는 것 같아요. 하나를 마치고 나면 다음 숙제가 기다리고 있고 또 그 다음이 주렁주렁 연이어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아무도 내주지 않은 숙제를 제가 스스로 만드는 중이에요. :)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P 님 오늘도 잘 읽고갑니다..ㅎㅎ^^
별 탈 없이 잘 계시죠??
날씨 많이 추워졌는데 감기 조심하세요!

지젤님!! 그동안 바빠서 글은 못썼지만 지젤님 좋은일하시는 거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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