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서점을 이야기하는 책들

in #kr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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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있는 공간에는 언제나 책과 서점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이 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많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줄어듦과 동시에 서점이 늘어나는 시대에 자꾸만 지금의 책과 서점의 방향을 고민하는 이야기를 담은 책들이 출간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책을 소비하는 독자들 중 다수가 글을 쓰거나 책을 만드는 생산자 혹은 그에 관심 있는 사람들로 좁혀지는 것은 아닐까. 취향의 타겟은 좁혀지는 데, 그 숫자는 늘어나는 걸까 줄어드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지금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현실은 어떠하고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을지가 궁금해진다. 그리고 꽤 많은 책들이 이렇게 저렇게 그들의 이야기를 엮어내고 있다. 올해는 유난히 책과 서점에 관련된 책들을 많이 읽었다. 그중에서도 성공한 서점 전략 같은 것들이 아닌, 지금도 여전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세 권이 인상적이다.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과 '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 그리고 '앞으로의 책방'. 각기 다른 형태에 몸 담고 있는 사람들의 인터뷰와 생각들이 모아진 서점과 책 출판에 관련된 이야기들은 다른 듯 묘하게 닮아있다.

그들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삶과 비지니스 사이


글을 쓰면서 자비로 독립 출판을 하는 사람도 있고, 집과 사무실을 공유하며 1인 출판사를 운영하는 사람이 있으며, 대형 서점에서 일하다가 독립하여 개인 서점을 차린 사람도 있다. 각기 다른 상황과 계기로 책과 서점이라는 존재에 애정을 갖게 되면서 이것을 자신의 삶에 들여놓은 사람들이다. 책은 엄연히 비지니스이지만,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배고픈 삶을 위해 현실의 욕심을 모두 버리는 떠남이 아니라, 현실을 좀 더 잘 살아내기 위한 또 다른 선택이자 균형이다.

돈 없이 살아도 괜찮다는 것이 아니라, 조금 적게 벌어도 원하는 방식대로 돈을 벌고 싶다는 마음가짐이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없겠지만, 이 '업'이 사양산업인 걸 모르고 발을 들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책을 읽는 사람과 서점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알고도 뛰어든 사람들이다. 그러면서도 하나같이 종이책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주장하는 걸 보면, 보이지 않는 신기루에 대한 확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산다'는 가치가 통하지 않게 되었다. 개같이 벌어도 정승처럼 살 수 없게 되었으며, 개 같은 과정을 더 이상 겪고 싶지 않게 된 것이다. 먹고살려면 비지니스는 당연히 중요한 것이지만, 이들의 삶과 비지니스가 별개였던 것에서 비지니스를 삶 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삶의 방식'을 선택한 것과도 같다.








아직,


처음에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을 읽었을 때 나는 약간의 짜증이 났다. 꿈과는 다른 출판 업계의 힘든 현실을 자각하는 것 그 이상의 퍽퍽함과 고단함이 책의 모든 페이지에서 묻어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일본은 우리의 독립출판 현실보다 무엇이 나은가를 보려고 고른 책에서 '나도 아직 못 찾았다.'는 결론을 마주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안타깝게도 누구 하나 명쾌하게 잘 살고 있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유명한 작가의 인터뷰에서도 먹고사니즘을 걱정하고, 달라지는 환경 속에서 적응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서울 3년 이하의 서점들'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사업을 하다가 혹은 직장을 관두고 나와서 차린 서점의 돈벌이가 어떠한지는 물으나마나 한 것이 되어버렸다. 이전과 비슷하게만 벌어도 매우 성공한 셈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각자의 사정은 고만고만했다. 그래도 괜찮다는 식의 태도가 여유 있는 삶의 선택인지 자기 위안인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무언가를 선택하는 만큼 포기한 것이 있을 테고, 불안한 여정을 시작한 두려움 속에 그래도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다짐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지 그저 유추해볼 뿐이다.








책만 팔 수 없다.


말 그대로 책만 팔아서 서점을 운영하기는 쉽지 않다. 심지어 책 판매가 수익의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조차 어렵다. 모두가 이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어떻게 하면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책에 쉽고 즐겁게 관심을 가질 수 있을지 고민한다. 굿즈도 팔고 커피나 맥주도 팔고, 강연과 워크숍, 전시를 기획하기도 한다. 책을 선택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블라인드 북이나 상담을 통한 추천처럼 또 하나의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낸다.

전통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책의 용도를 다양하게 하려는 노력도 엿보인다. 가방 속에 가지고 다니면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에서부터 함께 소비하고 즐길 수 있는 컨텐츠로서의 책들, 집 안의 인테리어로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게 디자인된 책들까지 어떻게 우리의 일상을 파고들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야말로 소장을 위해 헌 책을 맞춤용 액자에 끼워 판매를 하는 서점도 있다.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는 "작품은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돌처럼 생각하는 게 좋아요."라고 말했다. 어디에 있건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것을 자연스레 소중히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모두에게 똑같이 가치 있고 고귀한 글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각자가 개별적인 과정을 통해 지극히 취향적인 책을 '자연스럽게 소중히' 여길 수 있도록 적절한 여백과 힘 빼기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몽상 속 피어나는 현실


'앞으로의 책방'은 다른 책들에 비해 좀 더 뜬구름을 잡는 책이다. 가상의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을 인터뷰하고, 책방보다 더 많은 책을 쌓아놓고 살아가는 사람의 집을 찾아가며, 상상 속 서점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책방이라는 것을 물리적인 공간으로 정의하지 않고 책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런데 묘한 건, 책의 이야기가 조금씩 이 뜬구름과 현실의 교차점으로 향한다는 것이다. 상상 속 서점은 소설에 나오는 물건을 작가에게 의뢰하여 작품을 만들어 경매에 붙이고 책과 함께 판매한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이지만, 말이 될 수도 있을 법한 느낌이 든다.


"공상은 현실의 반대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상의 연장선 위에 현실이 있습니다. 현실을 바꾸고 싶다면 공상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앞으로의 책방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닌 듯하다. 말이 되는 이야기만 해야 하는 프레임 속에서 살아오다 보니, 어느새 상상하는 방법을 잃어버렸다. 나보다 한 발 앞서간 사람의 경제사정은 빠삭히 알면서도 주변에 휩쓸린 내 마음은 모르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현실을 한탄하면서도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 씁쓸하다. 어차피 안될 일이라도 내 안에서는 내 멋대로 몽상해볼 수 있는 것 아닌가.

단숨에 책을 읽어내리면서 나도 몽상 속에 존재하는 나만의 책방을 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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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들이 살아남기 힘들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다변화 (언급하신 이벤트들, 카페/펍 화 등) 로 특색을 갖추어야 소규모 책방들이 살아남지 않을까요.

네 책이나 책문화를 즐기게하는 요소들을 다양하게 갖추는 것이 저도 좋다고 생각해요. 더 개별적으로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런던 골즈보로 북스라고 희소성을 바탕으로 성공적인 서점 비즈니스를 운영중인 곳도 인상적이더라구요. 츠타야도 그렇고.. 서점의 변주는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런던의 서점은 찾아봐야겠네요. 좋은 기획을 하는 서점들을 더 많이 알고 싶어요:)

요즘은 책을 잘들 안보던데 독서하는 시간을 가져야할듯 하네요.

전체로 보면 줄어드는 듯 한데, 취향을 가지고 보는 사람들이 나름 또 있기도 한 것 같아요.

돈 없이 살아도 괜찮다는 것이 아니라, 조금 적게 벌어도 원하는 방식대로 돈을 벌고 싶다는 마음가짐이다.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미 사양산업에 접어든 '서점'을 인정할 수 밖에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일을 조금 더 해보려는 다양한 사람들
그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 왜 이리 애달프면서도 좋을까요. 이젠 비즈니스가 삶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다는 말이 와닿아요.

저도 저만의 책방을 꿈꾸는 몽상가입니다. P님글 너무 좋아 자꾸 조르게 되네요. :D

조금씩 다른 삶의 방식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서점은 어떤 식으로든 찾게 되는 공간이 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고물님이 꿈꾸시는 책방도 찬찬히 공유해주세요. :)

굿즈도 팔고 커피나 맥주도 팔고, 강연과 워크숍, 전시를 기획하기도 한다. 책을 선택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블라인드 북이나 상담을 통한 추천

요즘 독립출판서점에서 각 컨셉을 잡아서 많이 하고있는거 같아요, 전 전자책은 불편해서 잘 못보겠더라구요 ㅎㅎㅎ 사진에 있는 책도 서점에서 본거같아요~ 예전에 P님께서 여행책방서점을 꿈꾸신다고 하신거같은데, 몽상에서부터 현실로 이뤄지길 응원드립니다 ^^

감사해요 뽀애님. 여행책방 이야기한 것도 기억해주시다니ㅠㅠㅎㅎㅎ 서점이나 책에 대해 좀 더 오래 세심하게 관심가져보려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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