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읽고 싶어지는 문장들 #4] 반듯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좋은 거지요.

in #kr7 years ago (edited)

안녕하세요 도러블이에요
책이 읽고 싶어지는 문장들 4번째.
오늘의 책은 바로 이거에요

#4 백의 그림자 - 황정은

  •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매체를 통해 많은 불행들을 전해듣지만
    그 불행들은 상투적인 표현들로 이차 가공되면서
    그 단독성을 상실하고 일종의 정보들로 추락하고 만다.
    너무나 많은 불행이 있고 우리는 그 불행에 무뎌진다.
    같은 방식으로, 소설가는 '불행의 평범화'에 맞서서
    '불행의 단독성'을 지켜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그 무슨 발랄한 현실의 일탈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유일무이한 불행들에 대한 소설가의 예의다.
    <문학평론가 신형철>

불행한 사람들에게 사랑은 사치일까요?
이 소설은 비현실적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 누구보다 현실에 근접해있는 작품이에요
여기 나오는 인물들은 불행하지만 사랑하는 걸 포기하지않아요.
전 황정은 작가가 만들어내는 특유의 분위기를 좋아해요.
햇빛이 잘 비치는 창가에서 읽으면 좋을 것 같은 책입니다.

<1> 반듯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좋은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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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씨는 갈비탕 좋아하나요.
좋아해요.
나는 냉면을 좋아합니다.
그런가요.
또 무엇을 좋아하나요.
이것저것 좋아하는데요.
어떤 것이요.
그냥 이것저것을.
나는 쇄골이 반듯한 사람이 좋습니다.
그렇군요.
좋아합니다.
쇄골을요?
은교 씨를요.
......나는 쇄골이 하나도 반듯하지 않은데요.
반듯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좋은 거지요.
그렇게 되나요.

<2> 그처럼 공허하기 때문에 나는 저것이 사람 사는 것하고 어딘가 닮았다고 늘 생각해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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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뜨로슈까는요, 라고 무재씨가 강판에 무를 갈며 말했다.
속에 본래 아무것도 없는거예요. 알맹이랄게 없어요. 마뜨로슈까 속에 다시 마뜨로슈까가 있잖아요. 마뜨로슈까 속엔 언제나 마뜨로슈까, 실로 반복되고 있을 뿐이지 결국엔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있던 것이 부서져서 없어진 것이 아니고, 본래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것 뿐이죠.
무재 씨, 그건 공허한 이야기이네요.
그처럼 공허하기 때문에 나는 저것이 사람 사는 것하고 어딘가 닮았다고 늘 생각해왔어요.

<3> 사람은 기대할 만한 것이 못 되지만, 복권은 기대해 볼 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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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기대할 만한 것이 못 되지만, 복권은 기대해 볼 만한 것입니다.

<4> 괜찮아요,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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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라고 무재 씨가 말했다.

목소리는 작게 들려오는데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차 앞쪽으로 돌아가 보았다. 무재 씨가 두 손으로 턱을 괴고 범퍼를 들여다보는 듯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무심하게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이었는데 가까이 다가가자 미안해요, 라고 의기소침하게 말했다. 뭐가요. 뭐가 미안해요, 라고 묻자 이렇게 되어서 미안해요, 라고 무재 씨가 조그맣게 말했다.

뭐가 미안해요, 라고 다시 말할 뻔했으나 그런 말로는 무재 씨를 자꾸 조그맣게 대답하게 만들 뿐인 것 같아서 괜찮아요, 괜찮아, 라고 말하며 무재 씨의 등 뒤를 돌아서 자동차 측면으로 검고 넓게 펼쳐진 벌판을 향해 섰다.

그리고 작가의 말

여전히 난폭한 이 세계에
좋아할 수 있는 (것)들이 아직 몇 있으므로
세계가 그들에게 좀
덜 폭력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이 세계는
진작부터
별로 거칠 것도 없다는 듯
이러고 있어
다만
곁에 있는 것으로 위로가 되길
바란다거나 하는 초
자기애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고
다만
따뜻한 것을 조금 동원하고 싶었다
밤길에
간 두 사람이 누군가 만나기를 소망
한다
모두 건강하고
건강하길
/황정은

황정은을 좋아해서 그가 쓴 모든 소설을 읽었어요
언젠가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소개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작가의 말처럼 모두 건강하고 건강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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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문구들이 와닿네요 :)

좋은하루보내세요
@dorable

@dorable님의 여행기도 들려주세요~!

ㅎㅎ 여행기... 써보도록 노력해야겠어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사람은 기대할 만한 것이 못 되지만, 복권은 기대해 볼 만한 것입니다. "라는 문장이 먹먹하게 다가오네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챙겨 읽어볼 국내 소설이 많은 거 같아요.

책의 문장이 woochi님의 마음에 닿았다니... 참 보람있게 느껴지네요^^
한국에서도 계속 좋은 소설들이 나오고 있는 것 같아요 :)

소설은 잘 읽지 않아서 작가님들을 잘몰랐는데 눈에 확들어오네요 황정은 작가님의 책을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팔로우하고 갈게요 다른 책들도 추천해주시면 좋겠네요 잘보고갑니당^^

맞팔했어요 ^^ 재밌게 읽어주셔서 기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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