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도깨비' 그리고 인간의 죽음
2016년 12월에 방영된 드라마 도깨비를 왜 지금에서야 언급하지 의아해 할 수도 있다. 나는 최근에서야 도깨비를 봤다. tvN의 재방송을 우연하게 보게 되었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우리는 수 많은 죽음들을 목도한다. 재력가, 가난한 사람, 비범한 사람, 평범한 사람 등등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죽는다. 드라마 외에도 우리는 평소 많은 죽음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접한다. 특히 뉴스에서 사고로 사망한 사람을 통해서 죽음을 가장 많이 알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무수한 죽음에 대해서 무신경하다. 나와 관계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사람들에 대한 죽음은 나에게 무의미한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 도깨비에서 주인공의 죽음 또는 등장인물의 죽음에 대해 우리는 슬퍼한다. 그 이유는 단 하나다. 그들의 삶의 스토리와 사연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주인공의 죽음에 우리는 안타까워하며 같이 슬퍼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알지 못하는 타인의 죽음에 슬퍼하면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 슬퍼하지 않을까?
‘죽는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 번째로 나의 생이 끝나는 것이다. 드라마 도깨비에서는 내세(천국 또는 지옥)가 존재하지만 우리는 그 존재에 대해서 실제로 알지 못한다. 추측과 상상만이 난무할 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확인되지 않는 다음 생 혹은 내세라는 곳을 믿으며 죽음에 대해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내세가 존재하더라도 혹은 환생을 믿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전생을 기억하지 못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위안은 우리에게 위안이 되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깨닫는다. 우리의 생은 단 한 번 뿐이라는 것을. 다시 없을 이 생을 의미있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두 번째 죽음은 의식적 죽음이다. 평소와 같이 출근하고 퇴근한다. 퇴근 후 동료들과 회식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와 샤워를 마치고 거울을 보았다. 하지만 거울 속의 나는 매우 낯설다. 예전의 나와 무엇인가 다르다. 예전의 나는 꿈이 있었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 거울 속 나는 어떠한가? 거울 속 나는 시간이 내 삶을 이끌고 있다. 주도적인 삶은 없어진지 오래됐다. 아무런 꿈과 삶에 대한 열정도 없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내 삶은 소모되고 있는 것이다. 나 자신에 대한 낯설음을 조우하게 되는 순간 우리는 의식적 죽음에서 비로소 깨어난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무수한 죽음들은 우리의 삶을 더 찬란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우리는 단 한 번 살기 때문이다. 그 사실은 영원불변의 법칙이다. 우리는 이 죽음을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죽음을 통해 무한한 에너지를 제공받는다. 우리는 언젠가 필연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에 나의 삶이 헛되지 않도록 그리고 무의미하지 않도록 죽음이라는 원동력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다. 만약 내가 내일 죽는다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인지 나에게 묻게 된다. 나의 생이 끝나기 전 꼭 이루리라 막연하게 생각했던 꿈을 다시 소생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는 딱 한 번 살기 때문이다.
'죽음이라는 원동력을 온전히 사용할 것' 강렬한 구절입니다. 저도 지금 일하던 걸 정리하고 꼭 이루고 싶었던 일에 매진하기 위해 달려들고 있는 시점입니다. 도현님의 글이 제게 큰 힘을 주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
이 글이 힘이 되셨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지금 준비하고 계신 계획이 잘 될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응원하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맞팔하며 지내요^^
감사합니다 :) 맞팔하고 자주 놀러 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