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저작권에 대해

in #kr6 years ago (edited)

che.jpg

©알베르토 코르다

'논쟁이 있는 사진의 역사' 중 발췌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의 초상은 신화적 사진으로서 저작권 문제에서 가장 오랜 전설을 갖고 있다.
(...중략)
코르다의 동의를 구하지도 않은 채 펠트리넬리는 사진의 틀을 바꿔, 원래 체의 양옆에 있던 종려나무와 한 사내를 제외한 포스터를 제작해 수백만 점을 판매했다.
여러 해 동안 이 사진은 알베르토 코르다가 작가로서 언급되지도 않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당시 쿠바는 지적소유권에 관한 베른 협약에 조인하지 않았다.
이 협약은 작품을 복제하는 나라에서 그 전적인 우선권을 작품의 원저자에게 주는 법이다.

하지만 사진가는 우울해하지 않았다.
공산주의 이념을 확고히 신봉하는 그는 자기 사진이 혁명적 대의에 사용되는 데에 행복해했다.
그러다가 기업들이 상업적 목적으로 그 사진을 활용하게 되면서 코르다는 자기 권리를 지켜야겠다고 결심했다.**
2000년에 그는 보드카 광고에 체의 초상을 사용한 렉스 영화사와 영국 광고 대행사 로우 린타스를 제소했다.
코르다가 보기에 이런 상업 논리는 단순한 술 상표을 넘어 광고에 직결된 자본주의의 정반대 지점에서 이상을 추구하던 체의 이미지를 훼손하기 때문이다.
여러 해 동안 보산받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코르다는 오히려 점잖은 조건으로 승소했다.
코르다에게 손해배상으로 7만 달러가 적당하다고 법원은 판결했다.
그는 이 전액을 곧바로 쿠바 어린이 복지 기금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민간 단체에 기증했다.
사실 코르다는 개인의 경제적 이익은 에르네스토 게바라의 위신과 이미지에 부차적이라고 누누이 주장했다.(...후략)"



사진가에게 저작권이란 뗴려 해도 뗄 수 없는 존재입니다.

특히나 인터넷과 디지털 사진이 대중적으로 보급된 후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으니 그 의미가 더욱 중요해졌죠.

위의 체 게바라 사진을 찍은 사진가 알베르토 코르다의 생각과 행동처럼, 저 또한 제가 찍은 사진이 좋은 의미에서 널리 퍼지고 공유되길 바라지 제 경제적 이익과 직결되길 바라지 않습니다.

실제로도 많은 사진을 무료로 제공하고 포스터로 제작하고 언론사에도 그냥 넘기곤 했죠.
사실 사진 사용에 대해 언론사가 돈을 지불하는 경우도 거의 없습니다.
(이러니 돈도 못 벌고 작업을 이어나가지 못하는 상황이 됐...)


경제적으로 힘들어도 이 생각은 바뀌지 않습니다. 정치적 신념도 있지만, 무엇보다 제가 찍어온 사진이 저 혼자만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생각을 자주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특정 현장, 사회 이슈의 현장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건 그곳에 행동하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지 제가 잘나서가 아니니까요.
또한 카피레프트와 오픈소스의 정신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것이라 믿기도 합니다.

이런 마음을 먹기까지는 여러 사건과 개인적 경험이 있었습니다.
이어지는 아래의 글은, 그 중 가장 어처구니가 없고 타격이 컸던 사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때는 2013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철탑 고공 농성을 지지하는 희망버스 현장이었습니다.

현장에선 노동조합 및 시민사회단체와 현대자동차 용역 경비 사이에 거센 물리적 충돌이 있었죠.
심지어는 프레스 완장을 찬 취재 기자들에게까지 물포와 소화기를 내뿜었습니다.
당시 찍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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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배포 후, 수많은 인터넷 기사 뿐 아니라 언론사의 1면에 실리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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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대포를 맞은 사진기자가 속한 언론사의 페이스북 커버 이미지로 쓰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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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에 실린 것에 대한 원고료 10만원을 제외하곤, 이 사진의 사용에 있어 어떠한 돈도 받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사진을 내렸으면 내렸지, 인터넷 기사의 사진에 대한 값은 지불하지 않기도 하구요.
촬영 과정에서 제 카메라도 일부 망가졌고 가방 속에 있던 핸드폰은 아예 침수되어 고장났으니, 중요한 사진을 찍고도 수십만원의 손해만 본 셈입니다.

그래도 저는 괜찮았습니다.
체 게바라를 찍은 코르다처럼요. 무슨 일이 벌어졌나에 대해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알 수 있게 기여했으니 만족스러운거죠.

그런데 그로부터 약 2년 후 어떤 제보를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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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사진이 광고판이 되어 해당 언론사의 빌딩에 걸려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것도 대문짝만하게요. -_-;;;

photo6077694752284846228.jpg

어처구니가 없어 해당 빌딩 앞으로 직접 가서 눈으로 확인하고 찍어둔 후 곧바로 대응에 들어갔습니다.
주변의 사진기자들에게 대응 방법을 물어보고 수소문도 해서 일단 내용 증명을 보냈습니다.
해당 광고판을 내릴 것과 사용한 것에 대한 금액을 지불하라 등등의 내용으로요.

결과적으로는... 절반만 성공했습니다.

해당 언론사에서는 광고판을 내렸고 그냥 없었던 일이 되버렸죠.
마치 인터넷 기사의 사진에 대해 저작권을 주장하면 그냥 사진만 내려버리는 것처럼, 광고판만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습니다.

금전적인 보상은 물론 받지 못했습니다.
고민 끝에 저작권 위원회까지 가 도움을 요청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저작권 위원회의 중재라는 게 실질적으론 강제성도 없고 큰 도움도 안되더군요.
또한 실질적인 소송으로 이어지려면 제 시간과 돈을 쏟아부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돈도 시간도 없는데, 소송에서 이겨봐야 보상금이 적을 것이다라는 위원회의 조언에... 그냥 포기했습니다.


소수의 지인을 제외하곤 이 일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제대로 대응을 못한 것이 부끄럽기도 했고 당시에 그냥 해탈해버렸으니까요.
지금이야 뭐, 이런 일이 있어도 웬만하면 그러려니 합니다.


이 글을 쓰면서 해당 언론사의 이름을 가릴까 말까 고민을 했지만 그냥 기록해두려 합니다.



듣보잡 언론 시사포커스... 이 글이 블록체인에 남아 당신들을 저주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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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는 그런 점을 간사하게 이용하는군요? 어차피 너는 고소도 못할 것이다. 라는 점을요? 으으...열불 나네요.

솔직히 광고판으로 만들 때 미리 연락이라도 주던가 했으면 저렴한 가격 혹은 그냥 무료로 제공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는데, 말도 없이 프린트해서 썼다는 게 제일 열 받는 부분이었습니다. 뭐 당시엔 공적인 커리어도 거의 없던 시절이니 더 얕봤겠죠

언론사에서조차 이러니...
마음 고생 하셨겠어요 ㅜㅜ

멘탈 강화 훈련입니다 훈련...

저작권이 엄청 무서운줄 알았는데 ㅠㅠ 또 이렇게 보면 무섭지 않게 느껴져버리네요 ㅠㅠㅠㅠ

사실 무서운 게 맞긴 해요. 사진이든 이미지든 폰트든 함부러 잘못 쓰면 폭탄 맞는 게 저작권인데 제 경우엔 그 반대로 됐죠 뭐 ㅋㅋ...

우리가 보던 체의 아이콘이 저 사진이였군요. 처음 알았네요. 그나저나 진짜 기레기들은.. 에휴 한숨만 나오는 일입니다.

기자라기보다는 회사 잘못이 근본적인 것 같아요. 기사에 사진 막 가져다 쓰는 풍토는 메이저나 마이너나 다 똑같고...
기자분들에겐 도움도 많이 받았는데 이런 부분에선 뭐...

엄청난 사진을 찍으셨군요.

그나마 저 기업은 사진을 내려주기나 하는군요. 어떤 사진가는 고소를 했음에도 모 기업이 사진을 내리긴 커녕 기업 쪽이 승소했다는 카더라가...

뭐 본인들도 쫄릴 짓 한 걸 아는 거죠. 이런 싸움에선 대개 돈 많은 쪽이 이기는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의미로...

언론사의 경우는 언론사들간의 저작권은 철저히 지키지만 그외는 대부분 무시되는 것 같아요.

특히나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사진/글' 이면 퍼가고 (심지어 거기에 자기들 워터마크 넣음) 입 다무는 게 관행이에요 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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