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탈력과 현자타임

in #kr7 years ago (edited)

약 한달 간이었던 것 같다. 한 달 전, 그러니까 작년 12월 초 쯤에는 채굴기 하나가 반쯤 맛이 가서 자꾸 멈추는 지라, 채굴장까지 오가기가 귀찮아 스마트플러그를 사 놓고도 그거 설치하러 가기가 귀찮아서 ‘그거 한대 쉬어봐야 하루에 얼마라고’이런 생각에 며칠이나 꿈지럭 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 때 그 한대가 놀지 않고 열심히 캤으면 지금 그게 얼마인지... 이래서 사람은 평소에 성실해야 된다고 하나 보다.

한 달 간 비트코인을 비롯한 모든 코인의 가격도 오르고, 채굴기 수익도 급증하고, 내가 가진 스팀도 1000개나 많아지면서 마치 뭔가에 취한 것처럼 한 달을 보내버렸다. 아마도 연말 연시의 흥청거리는 분위기와 겹치면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채굴이나 스팀이나 나에게는 부업과 같은 것일 진데, 갑자기 본업에 대한 걱정이 들었다. 뉴스에서야 코인으로 한탕 크게 번 사람들이 직장을 그만두니 하는 이야기가 도시전설처럼 나오지만, 실상 그런 사람이야 얼마 안 될 것이다. 로또에 당첨되면 당장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사람들도 있으나, 조사를 해보니 85%는 다니던 직장 잘 다니면서 로또는 그냥 보너스 정도로 여긴다고 한다. 하긴, 요즘 로또 당첨금이라는 게 예전이야 인생역전이지만, 요즘은 그냥 서울에 집 한 채 사고 여기저기 선심 쓰면 사라지는 정도니...

이 코인 광풍이 지나간 후를 생각해보자. 거품이 꺼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누구라도 이런 분위기가 계속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을 것이다. 더 오른다고 해도 말이다. 결국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 일상이란, 결국 모두가 타고난 자신만의 직업으로 다시 돌아가는 걸 뜻한다.

사람이 돈이 많아졌다고 해서 자기 자신의 정체성이 바뀌는 건 아니다. 평생 노가다를 해서 꽤 재산을 모은 분이 있다. (노가다만으로 부자가 되는 게 불가능해 보일지 몰라도 성실하게 종자돈 모아서 투자로 잘 굴리면 가능하다. 운이 좀 좋았던 것도 있지만...) 이제는 나이도 좀 있고 그런 힘든 일을 안 해도 충분히 놀고먹을 것 같은데도 그 일을 계속 하고 있다. 더 큰 돈 욕심 때문에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냥 그게 자신이 해 왔던 일이니 계속 하는게 아닐까 싶다. 가령, 몇 년 전인가 자산 100억대의 삼성전자 임원이 명예퇴직을 당하자 투신을 한 사건을 보고 모두 이해를 할 수 없다고 하던데, 그런 비슷한 게 아닌가 싶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나 할까.

결국 모두는 이 광풍이 시작되기 전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풍요로움을 얻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돈을 꼴아서 속상한 사람도 분명 생길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과는 별개로 모두 자신이 이어오던 삶을 계속 이으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런 걸 보면 결국 팔자는 타고나는 것이고 사람이 다 자기 사는 길이 정해져 있는 모양이다.

나 역시 지금은 코인으로 대박을 내지는 못했지만, 설령 그렇게 대박이 난다고 해도 내 인생이 전과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돈이 많아진다고 해서 내가 해 왔던 일들을 그만둘 것 같지도 않고, 내 정체성이 갑자기 ‘번 돈을 굴리는데 특화된 투자가'가 될 것 같지도 않다. 사람이 어떤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비록 현실에 치어서 어쩔 수 없이 그럴 수도 있겠으나 결국은 이 세상의 다양한 수요에 맞춰 결국 자기 자신이 적합하게 자리를 잡았음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코인 열풍이 꺼질지 더 달아오를지는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완전 새로운 유토피아가 열리는 것은 아니다. 그저 전의 세상에서 약간의 모양이 바뀌는 것뿐이다. 이럴 때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코인이 자기 삶의 전부인양 몰입했던 사람들은 허탈감이나 우울감이 찾아올 수도 있다. 잃든 따든 말이다. 항상 자기 자신을 잃지 말자. 코인은 그저 코인일 뿐 그 이상의 어떤 것이 아니다.

이상 본업을 내팽개치고 한달간 코인에 중독되어 있던 사람의 반성문이었습니다. 다시 본업으로 가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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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던 회사나 일을 그만 두긴 정말 쉽진 않을 것 같아요. 근데 그 전에 코인이나 로또가 대박나서 그런 고민이라도 한 번 해봤으면 싶습니다ㅋㅋ

하하 그렇긴 하네요.
떡줄 사람은 생각도 않고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는... ㅋ

제목이 이해가 안가서요~ 탈력이라는 말과 현자타임이 무슨 뜻이죠? ^^

갑자기 힘이 빠지고 뭔가 해탈한 것처럼 잡 생각이 많아지면서 의욕이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잘 배워갑니다~ 그래도 힘이 빠지시면 안되죠.. 가즈앗!!

역시 현명하십니다. 저는 느껴보지 못할 감정 같습니다.. 코인보다 중요한 가치가 뭔지잘 모르겠습니다ㅠ ㅋㅋㅋ 한참 잘못된걸까요ㅎㅎ어쨌든 본업에 충실해야 코인 투자도 더 잘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생을 즐기시길 바랄께요~

코인도 행복을 주는 여러가지 중 하나일 뿐이겠지요.
코인도 좋지만 다른 행복을 주는 것들도 소홀히 하면 안될 것입니다.

저도 약간 빠져있는 상태인데
저를 돌아보게 만드는 글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ㅋㅋ 회사를 다니면서 스트레스를 받는건 직장 상사나 이런 사람이 자기 목줄을 죄고 있어서고 돈이 많으면 취미로 다닐 수 있어서 놀러다니는 것보다 더 재밌다고 ㅋㅋ 그래서 안 그만두는 것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수 틀리면 회사 사서 상사 갈구고...

그럴 수도 있겠네요ㅋㅋ 굳이 저 인간한테 잘 보이지 않아도 된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회사를 다니면 땅짚고 헤엄치는 느낌이 들 수도요 :)

코인을 새로운 활력소라고 생각하며 보고 있습니다.
관심분야가 여러개면 현자타임이 잘오지 않더군요.

돈 벌게 코인만 있는 것도 아니고
세상에는 재밌는게 많으니 여러가지 관심을 갖는게 좋겠습니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네요
지금 같은 상황에 놓여져 있을 수록
다시금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코인의 시세에 취하여
겪게되는 희노애락이 유쾌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끌거라고
생각하기에...

그리고 막상
돈을 벌었다고 해도
돈을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고민이 없다면......

잘 보고 갑니다.

수단과 목적을 착각하면 안 되겠지요.
돈이 많은데도 불행한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그래도 계속 갔으면 좋겠습니다. ㅎㅎㅎ

현재의 직업이 수요에 맞추어 내가 적합하게 자리잡았음을 증명하는 일이라.. ㅎㅎ 그렇지요?

근데 저는 막..
가슴 두근두근하는 일
몰입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로망이 뿌리쳐지질 않네요.

스티밋은 소통의 재미도 쏠쏠한 것 같아요.
님의 이야기에서 님이 어떤 사람일까 상상도 해보고
아하 이런 생각하셨구나..
공감도되고 ㅎㅎㅎㅎ

쓸데없는 이야기가 길었습니다.

좋은 하루보내세요
축복드리고 갑니다. ^^

갑사합니다.
사람의 생리가 원래 막 빠졌다가도 좀 질리고
그래서 새로운걸 찾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저도 아주 잠시 중독이 되었던 것 같아요.
중요한 건 평생을 날 이끌어주고 내가 이끌어나가야 할 본업인데 말이에요.
본업은 진지하고 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부업(?)은 취미로 즐기듯이 스트레스 받지 않고 가볍게 하면 좋을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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