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문상 다녀오는 길

in #kr7 years ago (edited)

직장동료를 문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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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말하면 다들 비웃을테지만, 나는 그리 친밀하지 않지만 장례식장에 안 가긴 좀 그런 애매한 관계에선 부고 알림을 받으면 입에 침부터 고인다. 육개장, 수육, 맥주 반 컵.

선배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한 분의 시모상이래서 경상도 북부 어드매 문상을 갔다. 내 얼굴에 다소 억지스런 침통한 표정을 띄우고 절을 세 번 한다. 그 삶에 대해 전혀 궁금하지 않을 쪼글쪼글한 얼굴의 영정사진을 향해 두 번, 우향우 해서 남자 상주들에거 한 번. 돌아서면 저 뒤의 테이블과 그 위의 뻔한 음식들이 반갑다. 허겁지겁 먹던 중에 상주와 얼굴을 마주하게 되면 다시 예의를 갖춰 침통한 표정을 띄운 뒤 만족스레 수육이며 마늘, 청양, 새우젓이며 밥과 국을 퍼먹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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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그러니까 그 중에 내 직장동료인 맏며느리는 표정이 그리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홀가분한 기분이 문득 비친다고 해야하나. (다행스럽게도) 상주의 시모는, 치매를 앓으며 요양원을 입퇴원하는 절차를 몇 번이나 거치며 상주의 슬픔을 미리 거둬가버린 덕분이리라.

그 절차는 아래와 같이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망인 스스로가 며느리와 자식을 생각하는 아름다운 마음에서 자의로 요양원을 입원한다. 그러나 친모를 생각하는 효자 맏아들의 아름다운 마음이 시부모를 직접 수발해야하는 맏며느리의 은근한 거절을 이겨낸 탓에 퇴원하게 된다. 또, 수발에 지친 며느리의 지청구에 못이긴 아들은 다시 울면서 친모를 요양원에 모시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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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맛있는 음식만큼이나 왠지 무감각한 내 마음이 부끄러웠던 차에 상주의 홀가분한 표정은 내 가책을 덜어내기엔 충분했다. 의례적인 인사, '이렇게 바쁘신 와중에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경황이 없어 대접이 소홀함을 사과드립니다.' 와 그에 걸맞는 응답, '아닙니다. 고인을 잃은 슬픔이 너무 크시겠습니다. 뭐라 드릴말씀이 없습니다.' 정도의 뻔한 인사를 주고 받은 뒤 건물을 나섰다.

직장동료들이 단체로 모여 간 문상이라 귀갓길의 내 차에는 불청객 2명이 타고 있었다. 혼자였으면 누군가에게 전화해서 시덥잖은 말을 주고받았거나 근처의 산을 배회했을 것이다.

집이 가까워 오면서 빽빽히 불 밝힌 아파트에 불빛 숫자의 3배, 4배 만큼의 삶, 그 삶만큼 다양한 죽음이 있음을 생각했다. 도로 위를 흘러다니는 작은 불빛들에도 마찬가지. 내 찌질한 삶도 그 중 하나, 있어도 되겠다고 자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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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함은 좋지만 그게 3천원 값어치는 아니었다, 그래서 석달째 세차를 하지 않았다. 돈 벌어먹고 살려고 남들에겐 바르게 살라고 수없이 외치며 정작 나는 항상 주변을 힐끔거리며 일탈을 찾는다. 법률과 규칙, 도덕을 외치며 주차장 바닥에 슬며시 커피빨대 껍질을 흘려놓고 120km로 국도를 달린다. 오늘은 이런 내가 좀 덜 부끄럽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수많은 헤드라잇 불빛들과 아파트의 거실등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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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정말 솔직하네요..ㅎㅎ 잘 읽고갑니당

주변 지인들에게 드러낼 수 없는 다소 부끄럽지만 공감할 수 있는, 찌질한 마음들을 써보려고 합니다. 자주 찾아뵈면 좋겠네요. 댓글 감사합니다.

글이 솔직담백합니다 ^^ 잘 읽었어요 멋진 수필을 읽은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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