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모금의 끄덕임] 어떤 하루

in #kr7 years ago (edited)

설레였다.
13년만인가? 총 동문회라니..
어릴때에 못가본 기억덕에 꼭 가보고 싶었던.
그들만의 리그처럼 느껴지던 총동문회....
그냥 한 학교의 졸업생들이 그냥 모이는 자리가 아닌
한 업계종사자들만이 모여서 현재의 트렌드를 얘기하고 생각을 주고 받는다?
흥미로운 자리일수밖에.

게다가 같은 스쿨 출신이라는 유대감을 가지고서 귀담아들을수 있는
철학과 소신을 가진 선배와 후배를 만날수 있을거란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나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바텐더 스쿨출신이다.
그것도 13년전에.

바텐더 사관학교라고 불리우는 그 곳.
지원후 면접을 통해 합격이 되어지고 지각3번은 결석1회로 간주.
결석을 3번할 경우 영구 지원불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그리고 창작칵테일까지 탄탄한 커리큘럼을 가진 곳.

호텔경영학과 전공하는 학생들의 필수 코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뭐...
예전의 얘기는 다음에 풀어보기로 하고

그날은 굉장히 바쁜 하루였다.
날씨는 하루 종일 꾸물거리다가 빗방울이 조금 흩날리는.
바람은 꽤나 강하게 불어서 머리가 신경쓰였다.
'뭔놈의 바람이 이렇게 불어대냐...ㅅㅂ..'
'날씨정말 그지같네.'

담배를 한대 물고싶었다. 아주 잠깐.
가만보면 담배는 어느 순간 순간의 버릇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날씨에 결혼이라니...너도 참...
친한 동생의 결혼식장.
결혼식은 여느 결혼식과 다름없는 평범한 결혼식이었다.

새신랑의 노래가 시작되기 전에는.

새신랑은 본인의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김진호의 '가족사진'
직접 준비한 젊고 아름다운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
서로를 향하던 그들의 사랑이 한 아이에게로, 한 소년에게로,그리고 한 청년에게로 향해 있었다.
신랑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하신지 오래되었다고 들었는데 이런걸 준비하다니..
남의 결혼식장에서 내가 눈물이 울컥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가족사진'은 듣지도 부르지도 말아야지.

한남동에 도착을 했는데 장소를 찾을수가 없었다.
길눈이 밝은데도 불구하고 한남동은 밤과 낮의 얼굴이 너무 달랐다.

주위를 몇번 서성인 후에야 들어간 동문회장.
낯익은 얼굴 몇명.
그외엔 전부 모르는 사람.
20180304_153827.jpg

이미 시작된 총 동문회겸 허울좋은 낮술파티는 벌써 절정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서울의 수많은 바에서 온 바텐더들은 이미 서로 알고 지내는 사람이 많았던지라
나만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물론 내가 너무 빠른 기수이기도 했다.
그날 나의 동기 두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후배님들이셨으니..

게다가 내동기들은 그날 참석해주신 선생님을 뵌적이 없었으니 더더욱 그 자리가
어색할수밖에...

20180304_155015.jpg
두통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많이 마시진 않은거같은데...'

와인에 위스키들까지 다양하게 준비가 되어있었지만 취하고 싶지는 않았다.

20180304_153822.jpg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한참이나 소비되어진후에 다들 나가는 분위기가 되었고
일찌감치 밖에 나가서 동기를 기다렸다.(집이 같은 방향이라..)
2차를 간다고 한다.
잠깐 인사만 하고 가자는 말에 끌려간 2차.
좋아하지도 않는 막걸리가 나오고 일면부지의 선생님까지. 공기가 너무 불편했다.
딱히 먼저 말을 내밀기도 불편하긴 마찬가지.

나는 어느새 불편한 자리에 앉아서 일어날 타이밍만 보고 있었고 시간은 더럽게 안갔으며
비는 그칠줄 모르고 내리고 있었다.

모든게 그지같아지기 시작했다.

'그래 지금이다!' 오른다리를 세웠다.

"너 이리로 와봐라~"
"네!?"

선생님이셨다. 몇몇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시던.

옆자리에 앉았다.
"난 너의 얘기가 듣고 싶었다. 어디서 어떻게 지내니?"
부드러운 어조로 말씀하신 질문은 두통을 잠시 잊게 했다.

이런저런곳에 있는 이런 사람임을 말씀드렸다.

내게 말씀하시길
"이제 너의 위치가 가장 중요할때다. 이제 선배들은 많이 없을것이고 후배들은
늘어가고, 니가 선배들을 찾아다녀야할때구나. 니가 후배들을 보듬기위해 선배들을
찾아야 하는 시기가 되었네"

그랬다.
난 어느샌가부터 선배가 되었고 대부분의 나의 선배들은 공인중개사로, 보험설계사로.
낮에 사는 일반인이 되어 있었다.

그들에게서 더는 현재 선배로서 들을수있는 위로따위는 없었다.
나를위한 위로의 시간과 공간이 없어진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방황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방황하는 것에서도 위로를 받아왔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혼자라는게 익숙한지 오래였으니.

동문회를 빙자한 낮술파티에서 나는 큰 선배를 만나게 되었고
위로를 받고 기분좋게 집에 갈수 있었다.

누군가의 옥탑방이 되고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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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y thank for share @coolguyred

이제 위로받기보다 위로를 해주셔야 할, 배우기보다 가르쳐주셔야 할 누눈가의 선배가 되셨네요. 바라시는대로 누군가의 좋은 옥탑방이 돼 주실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늘 열려있는 옥탑방이 되어보려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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