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스턴교"를 아십니까?
"리빙스턴교"를 아십니까?
'인제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라는 지역을 가지고 속담처럼 내려오는 이 말은 서민들의 삶에서 나온 것이 아닌 어느 유배된 임금님의 말에서 유래된거라고 하네요.
강원도 인제군에 가면 아시는분은 다 아시겠지만, '리빙스턴교'라는 다리가 있습니다.
이 '리빙스턴교'는 속칭 '빨간다리'라고도 불려졌었으며, 지금은 상판이 없어지고 교각만 남아 있습니다.
이 '리빙스턴교'의 유래는미군의 리빙스턴이라는 중령이 6·25전쟁 당시 북한군에 밀려 후퇴를 거듭하다가 인제읍 합강3리에 이르러 인북천을 건너지 못하고 많은 희생을 치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때 부상을 당한 리빙스턴 중령은 당시 인북천에 다리가 없어 부하들의 희생이 너무나도 컸으며, 자신도 본국으로 송환되어 임종하기 직전에 아내에게 안타까움을 전하며, 다리를 세워달라는 유언에 의해 아내분이 사비로 리빙스턴교를 세웠다는게 이때까지의 정설이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랄프 호클리 미2사단 6·25전쟁 재향군인회장이 "리빙스턴은 중령이 아니라 당시 미 제196포병연대 리빙스턴 소위였다"고 밝힘으로써 "리빙스턴교의 유래를 재조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고 합니다.
호클리 회장에 따르면 미 제196포병연대는 51년부터 54년까지 인제에 주둔했으며, 부대 소속 리빙스턴 소위는 52년 9월 22일 양구 펀치볼(현 해안면) 북동쪽 854고지에서 북한군에 의해 2명의 병사와 함께 살해당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후 미 10군단 포병부대는 포격연습장을 인제에 설치하고 리빙스턴 소위를 추모하기 위해 '리빙스턴 포격연습장'이란 이름을 붙였으며, 이 후 포격연습장이 폐쇄된 후 자연스럽게 다리로 옮겨져 리빙스턴 소위를 추모하게 된 것 같다"고 증언했습니다.
유래가 어찌되었던간에 67년전 바로 오늘 우리나라에서 전쟁으로 인한 많은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 것 같습니다. 또한, '리빙스턴교'를 바라보면, 이러한 많은 희생이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그분들의 피와 땀은 오늘의 우리입니다.
고마운 분들이죠.
네... 댓글, 업보팅 감사합니다. 리빙스턴교가 많이 바뀌어서 시간내서 한번 가볼 생각입니다.
몰랐던 사실이네요. 흥미롭게 잘 읽고 갑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강원도 인제쪽 국도로 가다보면 이런곳이 있더라고요. 지금은 공원처럼 만들어놓았더라구요.
이땅에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합니다.
네 댓글 감사합니다.
글읽기전에 제목만 보고 사이비종교인줄 알았습니다. 잘보았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제목이 좀 그랬나요? ㅎㅎ
글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