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면 보이는 풍경들 #2

in #kr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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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


2km

달리기의 무서움(?)을 몸소 겪고 나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지금 필요한 건 목표와 기초체력이었다.
목표 없이 뛰는 건 광범위한 시험 범위만큼이나 막연했기에 우선적으로 목표가 필요했다. 산책로를 따라 1킬로 거리쯤 주민센터가 하나 있는데 그곳을 1차 목표로 정했다. 갈 땐 반드시 뛰어가고 올 땐 걸어도 된다는 규칙도 만들었다.
이제 필요한 건 기초체력. 그러나 다른 운동이었다면 달리기로 기초체력을 다졌겠지만 달리기의 기초체력은 무엇으로 단련해야 할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근력이 부족한 건 근력운동으로 어떻게 한다지만 부족한 폐활량을 늘리는 방법은 달리는 것뿐이었다.
달리기는 모든 운동의 기초에 해당되는 운동이다. 달리기의 기초를 단련한다는 건 결국 달리기의 본 운동을 단련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쉽게 말해 힘들어도 계속 뛰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잘 달리기 위해서는 결국 계속 뛰어야만 했다.


3km

목표가 정해졌다고 힘든 달리기가 쉬워질 리 없었다. 그래도 목표와 규칙을 정하고 나니 페이스는 알아서 조절됐다. 남은 거리에 맞춰 체력과 호흡을 조절하게 된 것이다. 물론 호흡과 체력 모두가 부족해 걷는 것보다 조금 빠른 속도였지만 그래도 달리기는 달리기였다. 호흡은 가빴고, 다리는 부들부들 떨렸다. 당장에라도 멈춰 서고 싶었지만 한번 깨진 다짐은 다음에도 쉽게 깨지는 법. 이를 악물고 겨우 버텨 주민센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첫 완주인 셈이었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지만 계획했던 목표를 달성했다는 기쁨은 컸다. 겨우 1킬로의 짧은 거리였지만 첫 완주의 맛은 달콤했다. 물론 달리는 동안의 고통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애초에 체력관리 차원에서 시작한 달리기도 아니었다. 아픈 몸을 주체 못 해 시작한 운동이 편할 리 없었다. 달린다는 느낌보다 그저 고통을 참고 버티는 것에 가까웠다. 그래도 다행히 나는 참고 인내하는데 꽤 일가견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 일이다. 친구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친구는 잠시 들를 곳이 있다며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승낙했고, 그 자리에서 친구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 친구는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당시에는 휴대폰 같은 문명 기기도 없어 연락을 취할 방도도 없었다. 결국 나는 손발이 꽁꽁 얼 정도로 추운 겨울, 두 시간을 넘게 친구를 기다려야 했다(친구는 결국 만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미련한 짓이었지만 그 추운 겨울 두 시간을 길에서 버틴 걸 보면 인내심 하나는 타고났을지도 모른다.

퇴근 후 산책로에서 달릴 때면 나는 어김없이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계속 참고 고통스럽게 달리느냐, 아니면 멈추고 편안해지느냐. 어떤 선택을 해도 내게 나무랄 사람은 없었지만 선택은 항상 어려웠다. ‘지금에라도 멈출까’, ‘조금만 더 뛰고 쉴까?’ 같은 생각을 수십 번씩 반복하고 나면 어느새 주민센터 앞에 도달해 있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어떤 선택도 하지 못한 체 1킬로를 뛰었다. 그렇게 나의 버티기 식 달리기는 한 동안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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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면 보이는 풍경들 #2
wirtten by @chocolate1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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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세요. 달리기 정말 좋은 운동이지만 쉽지도 않은 운동인데. 앞으로도 계속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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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동안 엄청 추웠겠다;;; 으...동상 안걸렸을려나

아...달리기...정말 저도 마음껏 달려보고 싶은 심정입니다.
헬스장에서 무식하게 힘주는 운동만 하다보니, 유연성도 떨어지고, 몸은 더 무거워지는 듯하네요...밸런스 맞춰서 운동해야 하는데...

암튼 정말 대단하십니다. 덕분에 저도 달리기에 도전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러닝머신에서 조금씩 속도 올려서, 운동장으로 나가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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