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면 보이는 풍경들 #1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작년 이맘때쯤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다. 허리가 아파서 무작정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시작한 달리기였다. 조깅이나 러닝 같은 멋들어진 말을 놔두고 달리기라고 말한 건 정말 달리기 정도의 수준이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무작정 뛰기 시작한 지 1년. 여전히 달리기 수준에서 머물고 있지만 1년이라는 시간 동안 꾸준히 달렸다. 뭔가 근사하고 감성적인 문장으로 나의 달리기를 이야기하고 싶지만 내가 달리는 길은 그리 감성적이지 않았다. 스쳐 지나가는 수목이 아름답지도, 땀을 씻어주는 시원한 바람이 반갑지도 않았으며, 숨은 여전히 가쁘고 다리는 무거웠다. 나의 달리기는 지독히도 현실적이었다.
0 km
어려서는 체력은 좋았다(말 그대로 어렸기 때문에). 놀이 삼아 해온 축구나 농구에서도 체력이 좋아 제법 잘 뛰어다녔다. 그러나 그건 어렸을 때고, 달리기 시작한 나이는 어느새 서른의 후반으로 기울어진 나이였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로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몸은 체력이라고 부를만한 것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몸이 조금씩 아파가는 것도 다 운동을 하지 않아서 그런 거 같았다.
당장 운동을 시작해야 했다. 마음 같아서는 농구나 축구 같이 재미있는 걸 하고 싶었지만 사람 모으는 게 쉽지 않았다. 거기에 운동이 끝나면 필연적으로 함께한 동료들과 술 한 잔 할 게 뻔했다. 운동 끝나고 마시는 술은 세상 맛있는 술이니까.
천천히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이 필요했다. 시간이 많이 들지 않고, 사람에 얽매이지도 않으며 매일 할 수 있는 운동. 포 떼고 차 떼고 나니 남은 건 달리기뿐이었다.
달리기는 내 두 다리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운동이라 생각했다. 운동량도 많았고, 별다른 장비가 필요 없어 돈도 들지 않았다. 꼭 누군가와 함께 할 필요도 없었고, 원초적인 운동이었기에 특별한 기술 없이도 무리가 없었다. 물론 달리기가 단순하기는 하지만 쉬운 운동은 아니다. 그걸 깨닫게 된 건 차후의 일이었다.
잠시 옛날이야기를 하자면 고3 시절, 학교에서 열린 오래 달리기 대회가 있었다. 수능이 끝난 뒤 남은 시간을 이용한 작은 이벤트였는데 거기서 난 거기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선천적인 러너의 자질이나 체력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당시는 말 그대로 이벤트였기 때문에 2인 1조로 참가해야 했고, 나와 함께 팀을 이뤘던 친구는 소위 말하는 운동부였다. 체력은 두말할 것도 없었고, 운동부에서도 달리기가 빠르기로 유명한 친구였다.
나는 그 친구의 페이스에 맞춰 뛰었고, 겨우 그 친구를 따라가는 게 전부였지만 그 덕분에 일등을 할 수 있었다. 헛구역질이 올라올 만큼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1 km
달리기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특별한 장비가 필요 없다는 점이다. 갑작스레 운동을 시작해도 장비부터 사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다. 그래서 중간에 그만둬도 “너는 왜 장비만 사고 운동은 안 하냐?”라는 타박을 듣지 않아도 됐다. 물론 뭐든 제대로 하려면 돈이 든다. 그건 달리기도 마찬가지지만 전문 러너도 아닌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내게는 평소 신고 다니던 단화와 반바지면 충분했다.
퇴근 후 가까운 산책로로 나갔다. 안양천 옆으로 만들어진 곳으로 생긴 지는 오래됐지만 뛰거나 걷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무런 계획도, 목적도 없이 일단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났을까 갑자기 온몸이 요동쳤다. 단순히 숨이 가쁘다거나 몸이 힘든 일차원적인 증상이 아니었다. 온몸을 탈곡기에 돌린 듯 뼈마디 쑤셨고, 등이며 어깨에 통증까지 동반됐다. 급기야 팔다리까지 저려오니 힘이 빠져서 더는 뛸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멈춰 섰다. 달리기 시작한 지 불과 5분 만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유는 단순했다. 제대로 된 준비운동도 없이 바로 뛰어 생긴 근육통과 부족한 폐활량에서 오는 산소결핍이었다. 평소 운동과는 담쌓고 살던 내가 준비운동도 없이 갑자기 뛰기 시작하니 멀쩡한 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었다.
달리기가 단순히 다리와 심장으로만 하는 것 같지만 알게 모르게 온몸의 근육을 다 사용하는 전신운동이다. 아무리 폐활량이 좋다고 해도 몸을 지탱할 근육이 없다면 오래 달릴 수 없다. 장거리 러너들이 필히 근력운동을 하는 것도 다 이 같은 이유에서였다. 물론 내게 오래 달릴 만한 근육 따위는 전혀 없었다. 나는 그 사실을 전혀 몰랐고, 그 대가로 일주일 동안 근육통에 시달려야만 했다.
나의 첫 달리기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제대로 뛰어보지도 못하고 5분, 500m를 달린 게 전부였다. 달리기를 너무 우습게 본 결과였다.
달리면 보이는 풍경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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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조금만 달려도 숨이 차고 토할 거 같고 그래요.
1년 동안 꾸준히 하셨다니 많이 좋아지셨겠죠? 저도 꾸준히 해보려고요. 요가를.
예전보다는 조금 나아진 거 같아요. 브리님은 요즘 요가 어떠세요? :)
1년간 꾸준하게 뛰셨다니 대단합니다.
어쩌다보니 일년이나 됐더라고요. ㅎㅎ
정말 부지런하시네요. ^^ 언제 또 달리기까지…
달리기가 중독성이 있지 않나요? ㅋㅋ 전 그랬던 거 같아요. 시작이 엄청 어려웠는데 계속 달리게 되는…
저는 그러다가 멈출 수밖에 없었지만….ㅠㅠ
바람을 가로지르며 달릴 땐 세상 잡념이 사라지고 너무 좋았던 기억이 나네요.
건강 꼭 잘 챙기시고요^^ 편안한 주말 되기길 바랍니다.
맞아요! 중독성 있어요. 진짜 미친듯이 힘들게 뛰고 나서 멈춰 섰을 때 약간의 쾌감 같은 게 있는 거 같아요. ㅎㅎ 몸도 개운해 지는 거같고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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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달리기를 하고 있다는거 기억하고 있답니다 ㅎㅎㅎ
요즘 달리기는 커녕 근력운동으로 겨우겨우 하는데 ~대단대단
무슨 말씀을! 풋살 자주하면서 ㅋㅋㅋ
꾸준히 달리셨다면 엄청 느셨을 것 같은데요. 전 저질체력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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