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나는 하얀거탑] 권순일 환자의 사망을 둘러싼 법정 공방과 의학적 소견

in #kr6 years ago (edited)

저는 요즘 다시 만나는 하얀거탑을 이제야 보고 있는데요, 법정에서 권순일 환자의 죽음과 관련해서 쟁점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거기서 양측에서 주장하는 '췌장암과 폐전이'와 관련된 내용들이 실제로 근거가 있는 이야기인지 한번 집고 넘어가 보겠습니다.

권순일 환자는 극중에서 췌장암으로 진단되어 김명민 (장준혁 역)에게 수술을 받고 수술 후에 폐색전으로 사망하였습니다. 이에 유가족들이 김명민 및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하였고 법정 공방을 오랫동안 벌였습니다.

@verygoodsurgeon님이 [다시 만나는 하얀거탑] 삐딱하게 감상하기에 췌장암에 대해 알기 쉽게 소개해주셨으니 참고바랍니다!

당시 쟁점이 되었던 의학적 근거의 펙트체크를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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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췌장암에서 폐전이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폐전이 의심 병소의 폐생검은 불필요했다."

김명민 측이 주장했던 내용입니다. 이선균 (최도영 역)이 권순일 환자를 처음 진찰하였고, 췌장암이 의심되어 김명민에게 전과 시킬때, '폐생검을 해보라'고 당부를 했지만, 김영민은 이를 무시했죠. 하지만 결국에 부검에서 폐전이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어 논란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일단 췌장암에서 폐전이가 매우 드문건 사실입니다. 췌장암은 간전이가 가장 흔하며 뼈나 복강으로 전이를 하며 폐에만 전이를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부위의 전이 여부를 알아보는데 소홀해서는 안됩니다. 췌장암의 치료는 수술 가능 여부가 관건이며, 수술이 불가능하다면 치료 목적이 완치가 아닌 완화치료로 바뀌게 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타장기에 전이가 있다면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게 됩니다.

미국종합암네트워크의 가이드라인에서는 전이가 의심되는 경우에는 '조직학적 확진'을 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타 병소의 전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생검은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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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폐병소가 1cm 미만일 경우 폐전이의 가능성이 떨어진다."

이 역시 김명민 측이 주장했던 내용입니다. 권순일 환자의 수술 전 CT에서 폐에 0.9cm 의 결절이 발견되었고, 김명민은 이를 과거 결핵을 앓았던 흔적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결국 이 병소는 폐전이로 밝혀지긴 했지만, 김명민 측은 당시 결절의 크기가 작아서 임상적으로는 폐전이 보다는 다른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 맞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진단에 있어서 크기와 암 여부는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연구들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CT 상의 결절의 크기를 가지고 암 진단에 참고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크기가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한 연구에서는 수술결과와 결절의 크기를 가지고 대조를 해보았는데, 당시 수술했던 1cm 미만의 결절 중 84%가 악성이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연구에서도 폐수술로 제거한 5mm 미만의 결절 중 42%가 악성이었다고 하니, 실제로 CT 에서 결절의 크기가 작다고 해서 암 가능성이 떨어질 것이라고 속단해서는 안되겠습니다.


3. "요즘은 폐전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수술을 강행하는 공격적인 접근이 대세이다."

권순일 환자는 수술 후 합병증인 폐동맥색전증으로 사망했습니다. 만일 수술을 하지 않았다면 수술 후 합병증도 없었겠죠. 그래서 유가족은 만일 폐전이를 알았다면 수술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환자가 그렇게 죽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반면, 김명민은 폐전이가 있었다 하더라도, 근치적 수술 (암이 있을것이라고 의심되는 모든 부분을 제거하는 수술) 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끼리도 의견차가 있을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일반적으로 타 장기에 전이가 있는 경우는 4B기 라고 정의하며, 근치적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서 항암화학치료나 방사선치료를 시행하게 됩니다. 가끔 장폐색 등의 증상이 있을 때, 그 증상을 해결해주기 위한 간단한 장수술만 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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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폐에 1개의 전이만 단독으로 있을 때, 이것도 근치적으로 제거하려는 노력이 있어왔습니다. 대장암의 경우 이미 가이드라인에 폐 단독 전이일 때 원발병소와 전이병소 모두 제거하는 수술을 하고 이후 항암치료를 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췌장암은 워낙 폐전이 단독으로 발견되는 경우가 적어서 이를 가지고 분석해서 연구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적은 수이지만 일본에서 폐전이를 근치적으로 제거해서 보고한 바가 있었고, 6명의 폐전이 병소를 수술적으로 제거하고 지켜보았을 때, 6명 모두 5년 이상 생존하였고, 그 중 2명만 재발을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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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 수술 후 환자들이 장기간 생존하였다.
(Table 2 from Okui M, et al. The Korean Journal of Thoracic and Cardiovascular Surgery, 2017)

이러한 근거를 바탕으로 임상의들이 4기라도 상황에 따라 혹은 임상연구 하에 근치적 수술을 시도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물론 현재 췌장암 4기에서 표준적 치료는 항암화학요법 및 고식적 목적의 치료입니다.


이 의료사고 에피소드를 보면서 시청자들은 막연히 병원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고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조금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하얀거탑에서 묘사되는 의사결정 과정과 실제 병원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암수술을 하기 전에는 드라마 처럼 급하게 빨리 일정을 잡아서 수술하기 보다는 오히려, 몇주간의 검사와 치료설계 기간을 갖은 후 치료를 하게 됩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영상 검사 수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접근성도 굉장히 좋아서, 췌장암에서 CT, MRI, 전신 PET 정도는 보통 다 합니다. 그런 검사를 하고 나서도 애매한 경우에는 다른 과와 컨퍼런스 등을 통해 회의를 거쳐서 의사 결정을 하게 됩니다.

드라마 처럼 친구끼리 그냥 대충 의견 충돌하다가 막 내맘대로 수술해! 이런 경우는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Reference

  1. National Comprehensive Cancer Network. Clinical Practice Guidlines in Oncology, 2017.
  2. Munden RF, Pugatch RD, Liptay MJ, Sugarbaker DJ, Le LU. Small pulmonary lesions detected at CT: clinical importance. Radiology. 1997 Jan. 202(1):105-10.
  3. Ginsberg MS, Griff SK, Go BD, Yoo HH, Schwartz LH, Panicek DM. Pulmonary nodules resected at video-assisted thoracoscopic surgery: etiology in 426 patients. Radiology. 1999 Oct. 213(1):277-82.
  4. Okui M, Yamamichi T, Asakawa A, Harada M, Horio H. Resection for Pancreatic Cancer Lung Metastases. The Korean Journal of Thoracic and Cardiovascular Surgery. 2017;50(5):326-328. doi:10.5090/kjtcs.2017.50.5.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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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 전문적인 이야기라 다 이해하진못했지만
핵심은 실제 병원에서 수술의 결정하는 과정은 훨씬 철저하고 신중하게 한다는 말씀이죠!?

네 맞습니다! ㅎㅎ 그리고 환자/보호자 입장에서도 조금 덧붙이자면, 혹시 암 수술을 권유받는다면, 수술 전에, 수술 전후 어떤 치료가 추가적으로 있을지, 혹시 수술 외에 다른 방법도 고려하고 있는지를 잘 상의하고 결정하시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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