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말모이를 보고

in #kr5 years ago (edited)

말모이 영화를 봤다. 예전 <1947년 조선말 큰사전> 머리말을 보며 "꼭 한번 영화로 다루어졌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영화로 드디어 나왔다. 추가적으로 참고하면 좋을것 같아 몇가지 적어본다.

영화에 나오는건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이 주된 내용으로 나오는데, 조선말 사전의 편찬 작업이 계획된건 1910년 부터였다.

1910년 주시경 선생님 등 주축이되어 시작하였다. 다만 주시경 선생님은 연구와 강의로 몸이 쇄약해 지며 1914년 7월 27일 자택에서 38세에 급사하셨다. 이후 김두봉 선생이 물려 받아 진행하였으나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주시경 선생님은 국어 교육을 민족의식에 고취하며 많은 후학을 양성하였다.

1928년 다시 조선어 사전 편찬회를 창립하였는데, 초기 조선어학회와 조선어 사전편찬회가 두개가 되어 진행했다. 한곳은 맞춤법 표준말들의 기초 공사를 맡고, 하나는 낱말을 모아 그 듯을 밝히는 일에 힘을쓰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조선어학회가 사전편찬회의 사업을 넘겨 받게 되었다.

조선어학회는 처음부터 국어학 연구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 우리글인 한글을 통해 민족사상을 고취하자는 목적이었다. 일환으로 1926년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을 맞이하며 '가갸날'이라고 정했는데 오늘날의 한글날이다.

영화에는 김판수(유해진)가 사전을 지킨것으로 나오지만 이는 가공된 내용이다. 사실은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압수되었던 원고는 원래 일본 고등법원으로 가도록 되어 있었으나 일본이 패망하면서 갈곳을 읽ㅎ고 경성역 창고에 화물더미가 되어 산처럼 쌓여있었다. 천운이다.

그리고 아래는 저렇게 만들어진 사전의 머리말이다. 시대의 명문이다.
시간 나실때 한번 읽어보시면 좋을것 같다.

『우리말큰사전』 머리말 (조선어학회)

말은 사람의 특징이요, 겨레의 보람이요, 문화의 표상이다. 조선 말은 우리 겨레가 반만년 역사적 생활에서 문화 활동의 말미암던 길이요 연장이요 또 그 결과이다. 그 낱낱의 말은 다 우리의 무수한 조상들이 잇고 이어 보태고 다듬어서 우리에게 물려 준 거룩한 보배이다. 그러므로 우리말은 곧 우리 겨레가 가진 정신적 및 물질적 재산의 총목록이라 할 수 있으니 우리는 이 말을 떠나서는 하루 한때라도 살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말은 조선 사람에게 너무 가깝고 너무 친한 것이기 때문에 도리어 조선 사람에게서 가장 멀어지고 설어지게 되었다. 우리들이 항상 힘써 배우고 닦고 한 것은 다만 남의 말, 남의 글이요 제 말과 제 글은 아주 무시하고 천대해 왔다. 날마다 뒤적거리는 것은 다만 한문의 자전과 운서뿐이요 제 나라 말의 사전은 아예 필요조차 느끼지 아니하였다. 프랑스 사람이 와서는 프랑스 말로써 조선어 사전을 만들고 미국 영국 사람이 와서는 각각 영어로써 조선어 사전을 만들고 일본 사람이 와서는 일본말로써 조선어 사전을 만들었으나 이것은 다 자기네의 필요를 위하여 만든 것이요 우리의 소용으로 된 것이 아니었다.

제 말의 사전을 가지지 못한 것은 문화 민족의 커다란 수치일 뿐 아니라 민족 자체의 문화 향상을 꾀할 수 없음을 절실히 깨달아 이 수치를 씻고자 우리 문화 향상의 밑천을 장만하고자 우리가 우리 손으로 조선 말 사전의 편찬사업을 처음으로 계획한 것은 융희 4(서기 1910)년부터의 일이었으니 당시 조선 광문회에서 이 일을 착수하여 수년 동안 자료작성에 힘을 기울였던 것이다. 그러나 사정으로 인하여 아깝게도 열매를 맺지 못하였고 10여년 뒤에 계명구락부에서 다시 시작하였으나 이 또한 중도에 그치고 말았었다.

이 민족적 사업을 기어이 이루지 않고서는 아니 될 것을 깊이 각오한 우리 학회는, 이에 새로운 결의로써 기원 4261(서기 1928)년 한글날에 조선어사전편찬회를 창립하였다. 처음에는 조선어 학회와 조선어사전편찬회가 두 날개가 되어 하나는 맞춤법 표준말들의 기초공사를 맡고 하나는 낱말을 모아 그 뜻을 밝히는 일을 힘써 오다가 그 뒤에는 형편에 따라 조선어 학회가 사전편찬회의 사업을 넘겨 맡게 되었으니 이는 조선어 학회가 특별한 재력과 계획이 있어서가 아니라 다만 까무러져 가는 사전편찬회의 최후를 거저 앉아 볼 수 없는 안타까운 심정과 뜨거운 정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포악한 왜정의 억압과 곤궁한 경제의 쪼들림 가운데서 오직 구원한 민족적 정신을 가슴 속에 깊이 간직하고 원대한 문화적 의욕에 부추긴 바 되어, 한 자루의 모지라진 붓으로 천만 가지 곤란과 싸워온 지 열 다섯 해만에 만족하지 못한 원고를 인쇄에 붙이었더니 애닯도다. 험한 길은 갈수록 태산이라 기어이 우리말과 글을 뿌리째 뽑아 버리려는 포악무도한 왜정은 그 해 곧 기원 4275년(1942)의 시월에 편찬회와 어학회에 관계된 사람 30여명을 검거하매 사전 원고도 사람과 함께 홍원과 함흥으로 굴러다니며 감옥살이를 겪은 지 꼭 세 돌이나 되었었다.

그간에 동지 두 분은 원통히도 옥중의 고혼으로 사라지고, 마지막의 공판을 받은 사람은 열 두 사람이요 끝까지 옥에서 벗어나지 못한 다섯 사람은 그 실낱 같은 목숨이 바람 앞의 등불같이 바드러워 오늘 꺼질까 내일 사라질까 하던 차에 반갑다 조국 해방을 외치는 자유의 종소리가 굳게 닫힌 옥문을 깨뜨리어 까물거리던 쇠잔한 목숨과 함께 흩어졌던 원고가 도로 살아남을 얻었으니 이 어찌 한갓 조선어 학회 동지들만의 기쁨이랴?

서울에 돌아오자 곧 감옥에서 헤어졌던 동지들이 다시 모여 한편으로는 강습회를 차려 한글을 가르치며 한편으로는 꺾이었던 붓자루를 다시 가다듬어 잡고 흐트러진 원고를 그러모아 깁고 보태어 가면서 두 해 만에 이제 겨우 그 첫 권을 박아 5백 한 돌인 한글날을 잡아 천하에 펴내게 된 것이다. 그 내용에 있어서는 다시 기움질을 받아야 할 곳이 많으매 그 질적 완성은 먼 뒷날을 기다릴밖에 없지마는 우선 이만한 것으로 하나는 써 조국 광복 문화부흥에 분주한 우리 사회의 기대에 대답하며 또 하나는 써 문화 민족의 체면을 세우는 첫걸음을 삼고자 한다.

돌아보건대 스무 해 전에 사전 편찬을 시작한 것은 조상의 끼친 문화재를 모아 보존하며 저 일본의 포악한 동화 정책에 소멸됨을 면하게 하여 써 자손 만대에 전하고자 하던 일에 악운이 갈수록 짓궂어 그 극적 기도조차 위태한 지경에 빠지기 몇 번이었던가? 이제 그 아홉 죽음에서 한 삶을 얻고 보니 때는 엄동설한이 지나간 봄철이요 침침 칠야가 밝아진 아침이라 광명이 사방에 가득하고 생명이 천지에 약동한다. 인제는 이 책이 다만 앞 사람의 유산을 찾는 도움이 됨에 그치지 아니하고 나아가서는 민족 문화를 창조하는 활동의 이로운 연장이 되며 또 그 창조된 문화재를 거두어들여 앞으로 자꾸 충실해 가는 보배로운 곳집이 되기를 바라 마지 아니한다.

끝으로 이 사업 진행의 자세한 경과는 따로 밝히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다만 이 사업을 찬조하며 후원하여 주신 여러분에게 삼가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바이다.
조선어 학회, 『조선어큰사전』 1권,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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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저도 한번 보고 싶군요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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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관람해야 하는뎅...ㅠㅠ
관람 후 다시 포스팅 찾아올께용~♩♬
행복한 화욜 ♥ 보내셔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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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혹은 사극)를 보고 그 내용을 되돌아보면서 실제 역사적 사실을 찾아보고 참고하는 것은, 매우 좋은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좁게는 영화 자체를 사실로 보는 것은 다소 위험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넓게는 그 주변 시기의 시대적 상황을 체크하여 이해도가 많이 올라가게 되는 것 같더라구요.

저도 최근에는 "남한산성" 영화를 보면서 실제 사실을 되짚어보면서 영화에서 다르게 다뤘거나 생략되어진 부분에 대한 많은 공부를 하고 유익하더군요.

자료 감사합니다. 좋은 시간 보내세요.

네. 객관적 사실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전제 될때 과거를 통해 좋은 교훈을 얻는것 같아요. ㅋㅋ 투자도 내가 뭘했는지 객관적으로 써놓거나 혹은 복기하지 못하면 마냥 합리화다 잃기만 하는.. 비슷한것 같아요

항상 써주시는글 감사하게 읽고 있어요. ㅋㅋ

너무 가깝고 친해서 도리어 멀어지고 설어지게 되었다니...
영어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당시엔 또 한문 때문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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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가야겠어요.

네 ㅎ 머리말과 같이 보면 좋을것 같아요.

『우리말큰사전』 머리말을 쭉 읽어 보니
자기 나라의 말조차도 빼앗끼지 않으려 목숨을 걸고 지켜야만 했던 나라가 우리나라였다는게...늘 지켜야만 하는 약소국의 비애같아 슬프지만 그래도 한국인이 강인함을 느낄 수 있는 글이였습니다.

시대의 명문이라고 생각해요.

뜨아아아아아~앙~!
말모이 관람 후 포스팅 다시 찾아왔어용~♥♩♬

어마어마하게 정리 잘해주셨네용~!
감사합니다~♥
2019황금돼지해(^(00)^)~복 많이 받으셔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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