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II - 엄마 된 딸이 고해성사하듯 미안하다고 말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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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어린 시절, 밤낮없이 일만 하는 우리에게 어느 날 7살 난 딸이 물었다. “엄마는 일이 좋아, 우리가 좋아? 엄마는 일만 사랑하고 우리는 사랑을 안 해줘, 미워.”

우습기도 하고 당황도 되고 어이도 없어서 “사랑이 뭔데?” 하고 물으니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맛있는 것도 맨날 해주는 거야"란다.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들어가서 TV나 봐”라며 안아주고 쪽쪽 입을 맞추며 등을 밀어 쫓아내고는 또 일을 했다.

그 말이 맞긴 하지. 아침밥이 저녁까지 이어지고 짜장면이 주식이 되다시피 시켜먹으며 왜 일만 하는지, 그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는 아이에겐 이해를 시켜줄 세월이 필요했다. 겨우 겨우 빚을 청산하고 빚 없이 살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그때, 일해야 사랑도 밥도 보이던 그런 시간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래도 자식들이 잘 커주는 고마움과 죄책감에 “우리 아이들은 제 혼자 큰 거예요. 정말이지 아무것도 해준 게 없어요” 하는 지인과의 대화를 들었는지 가끔 “엄마, 우린 엄마 없이도 나 혼자 자란 거지” 하며 스스로 대견해 했다.

힘든 일 마치고 들어와 잠든 아이들의 이마를 만져보며 혹시 아프지나 않은지, 밥은 잘 먹었는지, 숙제는 제대로 했는지…. 그저 걱정만 하다 '미안해, 미안해' 하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던 엄마 마음을 어찌 알겠는가. '네가 자라 어미가 되면 스스로 알겠지' 하며 지내온 세월에 어느새 두 아이 모두 엄마, 아빠가 되었다.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소풍 갈 때 맛없는 김밥은 절대 안 싸줄 거야.” 엄마처럼은 모든 게 다 싫다던 딸이 “엄마, 나 요즘 엄마랑 너무 똑같이 사는 것 같아. 일하는 것 빼고는” 하며 깔깔 웃는다.

시집가서 자식을 낳으면 날마다 함께 있어 줄 것이고 공부도 안 시키고 줄넘기도 안 시키고 늦잠 잔다고 혼내지도 않을 거라며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게 할 것이라더니…. 좋은 남편 만나 여유롭게 사는 모습에 고맙고 행복한 건 나인데, 가끔 만나면 슬그머니 뒤에서 안으며 말한다. “엄마, 미안해. 모든 게 다 그냥 미안해.”

목소리만 들어도 기분을 아는 나이가 되고 보니 어느 날은 그 말에 둘이서 마주 보며 웃지만, 어느 땐 마주 보며 등을 토닥거려준다. “사는 게 다 그렇고 그런 거야.”

손녀 딸 “할머니, 우리 엄마 자식교육 잘 못 해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손녀딸에게 축하선물을 사주고 같이 점심을 먹는데, 아이가 나를 부른다. “할머니, 우리 엄마는 자식 교육을 잘 못 하는 것 같아요.” “풋” 하고 웃음이 나왔지만 “왜?”라고 물으니 손녀가 하는 말. “다른 엄마들은 다 일하는데 우리 엄마는 집에만 있고요.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따라 다니며 못하게 해요. 공부는 정말 하기 싫은데 울어도 막 혼내면서 하라고 해요. 부모는 정말 그러면 안 되는 거예요.”

“그랬구나. 그래도 넌 할머니가 이렇게 가끔 놀아주잖아. 영애 엄마는 할머니가 없어서 이런 말도 못했단다” 하며 꼭 안아주니 “그렇긴 해요”라며 웃는다.

먼 훗날 내 딸이 할머니가 되고 또 네가 엄마 되면 엄마의 마음을 그땐 알아주겠지. 내 아이가 지금 내게 고해성사하듯 미안하다고 하는 것처럼….

세월이 지나고 나니 내 인생에서 가장 자유가 넘치고 행복했던 시간은 모두가 함께 복작거리며 살던 가난한 젊은 시절이었다는 것을 느낀다. 딸아이의 행복한 '지금' 시간을 마음에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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