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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95%) De Profundis (4)

in #kr5 years ago

[56] 그러나 그리스도의 모든 삶--그러니까 슬픔이나 기쁨이 전체적으로 의미와 표현에서 하나가 될 수 있지만--은 전적으로 목가적이다. 비록 그것이 빌린 성전의 베일을 빌리는 것과 지상의 표면에 어둠이 다가오고, 돌이 무덤의 문으로 굴러가는 것으로 끝나더라도 말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그를 동지들과 함께 하는 젊은 신랑으로 생각하며, 그가 실제로 어디선가 자신을 묘사하는 것처럼, 푸른 목초지와 시원한 냇물을 찾아 양들과 함께 골짜기를 헤매는 목동처럼, 음악으로 신의 도시의 성벽을 만들려는 것처럼, 또는 세상을 너무 적게 사랑하는 사랑꾼으로 생각한다. 내게 그의 기적은 봄이 오는 것만큼 매우 아름답고, 무척 자연스럽다. 그는 존재만으로도 고뇌에 찬 영혼들에게 평안을 가져다 줄 수 있고, 그의 옷자락을 만지거나 손을 만지는 이들은 고통을 잊게 되며, 그가 삶의 한복판을 지나갈 때 삶의 미스터리에 대해 아무것도 보지 못한 이들이 이를 분명히 보았고, 모든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가 사랑의 목소리를 처음으로 듣는 기쁨을 느끼고, 이를 '아폴로의 류트와 같이 듣기 좋은 것'이라 발견하게 될 수 있다. 또는 그가 다가오자 악한 욕망이 사라지고, 누군가의 칙칙한 다만 죽음의 한 형태였던 삶이 그들을 부를 때 무덤에서 부활하듯 다시 살아났다. 또는 그가 산비탈에서 가르치자, 많은 이들이 배고픔과 갈증과 세상 근심사를 잊게 되었고, 고기 앞에 앉아서 그의 말을 들은 그의 친구들에게 형편 없는 음식은 훌륭한 것으로 보였고, 물에서는 좋은 포도주 맛이 났고, 온 집안에는 나르드 향기와 달콤함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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