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

in #kr6 years ago

요즘은 통 드라마를 보지 않는데 예전에 보고 너무 좋아서 두고두고 생각이 나는 드라마가 있다. 바로 이선균, 송지효 주연의, 그 외에도 훌륭한 연기를 한 배우들이 나오는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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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공감이다. 결국에는 외로움이고 결국에는 그 외로움에 들어오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익명성이 우리들에게 제공하는 자유와 그 자유에 대한 우리들의 책임을 묻는, 하지만 묘하게 그들을 붙들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안부 인사같은 드라마였다.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치면서 우리가 아무런 조건없이 '좋은 하루 보내요', '오늘 하루 수고하셨어요'라고말할 수 있는 상대는 누구일까? 가족에게 말하기엔 내 마음의 애정의 크기만큼 다하지 못할까봐, 여태껏 안그러고 살다가 하기 멋적어서, 사실은 그럴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살다보니 그렇게 되고 말았고, 그렇다고 이웃에게 친구들에게 이말을 전하기엔 우리들이 이미 너무 많은 시간들을 그런 적 없이 보내와서 새삼 그러기가 힘들다. 그래서 우리는 SNS를 한다. "좋은 하루 보내요~" 좋은 사람이 보고 기분 좋을 만큼, 내 마음의 깊이나 크기 따윈 재볼 필요도 없이 가볍게... 나에게 그들에게 수고를 강요하지 않고 그저 기분 좋게...

우리의 사생활을, 사방으로 뚫려 있는 틈 사이로 익명의 그들이 은밀히 24시간 노려보고 있다. 대중과 소통하기 위한 유명인들, 내 삶 속에서 끝없이 고군분투 하는 내 자신이 적어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내 사람들'과 내 삶을 공유하고자 하는 일반인들.그런데 우리가 사는 오늘은, 이 SNS라는 것이 매일 아침 아침 준비를 하기 위해 엄마가 두부사러 들르는 집앞 수퍼가 되었고, 이른 아침 신선한 우유를 집집마다 배달하는 우유 아저씨의 트럭이 되었고, 날마다 직장인들이 커피를 사러 들르는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이 되었다.

이제는 내가 굳이 원하지 않는 사람과 친구가 되는 것에 어느새 무감해졌고, 익명의 다수에게 내 일상을 보이는 것에 담담해졌다. '관종'이 아니라도, 대중의 영향력을 이용해서 유명해지고자 하는 연예인 지망생이 아니더라도 우리 손안의 스마트폰이 알아서 우리를 그들의 공간으로 안내해주고 그들을 보여준다.

'이번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는 SNS 안에서의 수많은 '그들'에 의해 이야기가 출발하고, 전개되고 마침내는 결론에까지 이르게 한다. 물론 현우와 수연이라는 인물이 전체의 중심에 서 있지만, 그들에게 머물러 오랜시간 굳어있던 것들이 마침내는 꺼내어지고 벗겨진다.

표면적으로는 부부간의 문제가 드러나지만, 두 사람의 문제에 깊이 관여하고 말하는 모든 익명의 그들의 삶을 볼 수 있기도 하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그들의 삶과 이야기는 적나라하게 현우와 수연의 이야기에 끼어든다. 그리고 아주 적극적인 방식으로 관여하고 개입한다. 바로 현우와 수연의 관계에서 가장 필요했던 '행동하고 다가가는 자'들이 나타났던 것이다.

물론 SNS를 통해 얼굴 없이 만나고 소통하는 이들의 가장 좋은 예를 보여준 드라마이므로 그 순기능만을 갖다대며 극찬할 마음은 없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과 타협되지 않는 내가 가진 어떠한 면에 대해 얼마나 스스로 객관적이 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관계'에 대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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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꽤 인상깊었던 영화 '우리들'에서는 너무도 사랑스러운 아이 '선'이가 어떠한 방식으로 학교에서 학교 바깥에서 '그들'의 친구가 되는 것에 실패하는지를 보여준다. 가난하지만 부모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 남동생을 돌보면서 선이가 보여주는 그아이 안의 사랑이 같은 또래 아이들과의 '관계' 안에서는 철저히 유린 당한다.

선이는 친구가 되고싶은 어린 마음에 자기자신을 너무 쉽게 포기한다. 새로운 친구를 만날 때마다 그 친구에게 집중하느라 나를 지켜내지를 못한다. 그러다보니 선이에게 새로운 관계는 항상 힘겹다. 공격을 받으면 쉽게 무너진다, 그리고 다시 상처 받는다.

그렇지만 사랑이 많은 선이는 멈추지 않는다. 사랑할 준비를 하고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수연이 다른 사람을 만날 때에나, 이혼 후 현우가 다른 사람을 만나 유혹을 느끼며 수연을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때에도, 서로 다름에 대항하며 자아 찾기를 반복하던 서로를 향한 자신들만의 독선이 있었다. 선이가 친구가 되고 싶어서 끝없이 자기를 지워갔던 것과는 반대로 말이다.

우리가 가지는 모-든 관계의 부정합은 이러한 잘못된 방향으로의 자아찾기, 혹은 자아찾기의 실패에서 나온다. 선이는 자라며 그 방법을 터득 할지도 모른다. 이미 극단으로 흘러 독선으로 가득한 우리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우리들의 자아를 찾아야 할까. 매일 매일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 보며 살아가는 우리들, 내 안에 나 스스로를 가두고 살고 있으면서도 마치 이것이 내 전체의 삶인양 SNS를 도배하는 사람들. 그럼에도 온라인에서 전하는 따듯한 인사에 위로받는 우리들.

세상이 변해도 너무 변했어...라는 말로 그 영향력을 외면하기에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힘은 너무도 강렬하다. 독불장군이 되기에 세상은 너무 투명하고 오지랖쟁이가 되기에 그들의 관계망은 너무나 촘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피엔딩이었다.

결국 현우는 수연을 이해했고, 서로 마주보며 웃다가 손을 맞잡고 걸어간다. 백만가지가 넘는 인간 감정의 회로를 우리가 다 어떻게 그려내겠냐 만은, 모든 관계가 그러하지만, 부부관계는 오죽할까. 하나의 문제가 '짠~'하고 터지고 '떡~'하니 답을 내는 드라마가 참 귀엽다. 어디 불륜만이 문제겠는가.

어린 선이가 그 작은 사회 속에서도 수만가지 감정의 회로에서 방황했듯이, 이미 마흔을 넘은 현우에게는 수천만가지 방황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물 하나하나가 이유있는 우리들의 변명인것 같아서 참 좋았다. 그리고 해피엔딩이라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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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신바 같이 공감과 이해를 원하는 사람들의 또다른 자아표출 공간이 SNS인 것도 같습니다.. 어쩌면 일상으로부터의 무난한 이탈공간이자, 스스로 원화는바에 가깝게 새로이 쌓아올릴수 있는(실제와 다르더라도..)자아재구축의 현장인 듯도. 자아와 타아와의 만남 그리고 이해가 누적되어, 해피엔딩의 결말이 실제 이어지기를.. ^^ 잘보았습니당~

갑자기 진지하신 벨류님...

자아재구축중이신 듯...쿠쿠

고고씽~

네? 저원래 명상과 사색 그리고 댓글 물길질에 익숙한 그런 사람이랍니다 ㅋㅋㅋㅋㅋ ^^ 어푸어푸(물속 호흡소리임)~~^^

저원래 명상과 사색 그리고 댓글 물길질에 익숙한 그런 사람이랍니다<- 저를 묘사하신줄..

풍덩풍덩~

그런 해피엔딩만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답글 감사해요^^

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꾸준한 포스팅을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나이를 먹고 먹어도 참 신기한게 엄청난 방황을 합니다. ' 특히 사람관계에서는 말이죠.

그 당시의 방황을 나이가 먹은후에 생각해보면 왜 했을까? 라는 생각도 하지만 똑같은 방황을 또 하곤 하죠.

저 드라마는 꼭 챙겨보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드라마 추천해주신거 같네요!~

네 꼭 한 번 보시라고 권해드려요. 이선균이야 다 알고 연기 잘하는지, 다들 연기를 너무 잘하드라구요~^^

관계라는 게 나를 지키면서 다른 사람과 원만한 타협이 되어야 하기에 힘든 것 같아요. 지난번에 올려주신 시처럼 주고 받는 서로 상처받고 위로하는 관계가 되길 원하지만 사실 마음처럼 되지 않지요.

사람이 갖가지 성격 / 가치관 / 상황이 다 다르기 때문에 .. 내가 그 마음이어도 상대가 그 마음이 아닐 수도 있고 말씀대로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

가족도 왜 잘 안되잖아요. 여기저기 많은 인간관계가 있어도 다들 가슴 속에 사리 하나쯤은 담고 사는게 아닐까요? ㅎㅎ 나만 그런게 아니라는거죠...

아내에게 소개시켜줘야 겠습니다. 좋아하겠는데요?
이번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ㅋ

ㅋㅋ 제목처럼 그렇게 시원~~하게 하는게 없어요 제목보고 낚인 케이스 ㅋ

SNS를 통해 관계 맺고 만나고... 어떻게 보면 의미없어 보이지만 다르게 보면 사람과의 관계가 이뤄지는 곳인 것 같아요.

동의해요. 그게 상호작용일 때, 그리고 진심으로 소통할 때... 어느 쪽이든 일방적이 되어버리면 그것이 SNS라 하더라도 힘들어지죠.

저도 재미나게 봤던 드라마였어요.... 서로의 힘든점을 이해하고 소통하고 아무리 잘나가는 사람이라도 그런 소통과 공감없이는 언제라도 눈돌리게 되고 파국을 맞는다는 그런 느낌... 아직 결혼도 안한 솔로이지만 사회생활과 걀혼 생활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본 드라마였어요 ^^

드라마가 딱 하나만 다루지 않았어요. 누가 봐도 공감 가능했다는^^

제가 좋아했던 드라마네요. 아~ 왜 좋아했는지 기억은 잘 ㅋㅋㅋ 요즘은 돌아서면 잊어버리곤 해서요 ㅠㅠ 기록하는 습관을 가져야겠어용! 음식은 좀 하셨어요? 전 아무것도 안했어요.

전 원래 아무것도 안해요 ㅋㅋ 드라마 보고 끄적끄적 해놨던거 저도 올렸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저도 이번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 정말 재밌게 봤어요. 가정의 의미나 결혼이라는 제도, 사랑, 용서 등 많은 주제가 감동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게 담겨 있는 것 같아요. 저는 SNS라는 현상에 주목해서 보진 못했는데 글을 읽고 새로운 생각을 해 보게 됐네요. 잘 읽었습니다^^

네 생각보다 많이 보셨더라구요. 웰메이드 드라마는 다 알아 보시는 듯^^

부부 관계는 정말 복잡 미묘한 것 같습니다. 배우자는 모든 삶을 공유해야만 하는 반쪽이니까요^^

맞아요. 단순한 인간관계와는 차원을 달리하죠. 그래서 다들 같이 살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어떤 사람은 다시는 보기싫어 헤어지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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