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꺼내보는 스톡홀름에서의 아픈 기억

in #kr6 years ago

2017년 4월 첫째 주는 내가 단단히 발목이 잡힌 시간이었다. 나는 스웨덴에서, 같이 논문 투고를 준비했던 선배는 한국에서 마무리 작업을 하느라 여러 날 밤잠을 설쳤고 7일 새벽 즈음 모든 작업이 마무리되었다. 최종본이 나오고 나니 해방감보다는 피로가 나를 짓눌렀다. 바로 침대로 향했다. 계속되는 휴대전화 진동음이 나를 깨울 때까지 나는 그렇게 쓰러져 잤다. 그리고 성가신 소리에 못 이겨 눈을 떴을 때, 세상이 바뀌어 있었다.

테러 추정 공격이 일어났다는 뉴스 기사 알림이 화면을 채웠다. 몽롱한 상태로 뉴스를 읽기 시작했다. 왠지 익숙한 거리가 보였다. 자주 갔던 슈퍼마켓이 있는 백화점 건물이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스톡홀름 시내가 눈에 들어왔다. 믿기지 않았다. SNS에서는 서로가 안전함을 알리는 포스팅과 친구나 가족을 찾는다는 글이 쏟아졌다. 아직 용의자는 체포되지 않았다는 뉴스, 시외로 나가는 모든 교통이 통제된다는 공지, 급박했던 상황에 대한 목격자 인터뷰만이 반복되었다. 이제 이건 꿈도, ‘남의 나라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날 시내로 나갈 생각은 하지도 않았음에 감사하고, 주변사람의 안부를 묻고, 한국 가족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연락해야만 하는 그런 상황이었다. 물론 이것은 1차 피해를 입지 않은 운 좋은 나의 이야기였다. 같은 시간 누군가는 절망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만 했다.

테러 공격은 사람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인재이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그런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테러가 주는 당혹감은 천재지변에 더 가깝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있는 동안 스톡홀름에서, 아니 스웨덴에서는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희망을 가져보았다. 비교적 이민자와 난민에게 개방적이고, 지난 여러 번의 테러 공격을 운 좋게 피해갔기 때문이라는, 지금 생각해보면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은 이유 때문에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 그런 약한 믿음은 산산조각 났다. 그것은 언제나 ‘나의 일’일수도 있는 것이었다.

스톡홀름 테러는 내 생각에는 두 가지 서로 다른 현상의 도화선이 되었다. 한 가지는 시민의 연대의식이다. 테러 현장 주변의 식당과 카페 여러 곳이 영업을 중단하고 시민들에게 음식과 차, 대피 공간을 마련해줬다. 스톡홀름대학교도 피난처 제공은 물론 학생들의 정신적 상담을 지원하겠다는 메일을 보내왔다. 대중교통 통제로 발이 묶인 통근자들을 위한 무료로 우버와 에어비앤비를 제공한다는 글도 꽤 많이 눈에 띄었다. 누군가 나서지 않아도 각자가 자기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혼란을 최소화하고 고통을 나누려고 했다. 그 모습은 정말 인상 깊었다. 또 하나의 도화선은 난민, 이민, 다문화에 대한 논의였다. 많은 이가 분노했고 ”그들을 모두 추방하자“고 했다. 반대편에서는 그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다른 테러 때처럼 "스톡홀름을 위해 기도하자(Pray for Stockholm)"고 했다. 필요한 것은 기도가 아니라 시민 안전 강화를 위한 무언가라는 재반박이 이어졌다. 테러 사건과 관련된 뉴스의 댓글 란에는 이런 의견 충돌이 만연했다. 난 뭐라고 입장 표명을 하는 것이 좋을지 잘 몰랐다. 그냥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많이 읽어보려고 했다. 답이 쉽게 나오진 않았다. 테러 현장이었던 올렌스(Åhlens) 백화점 한쪽벽면은 위로, 격려와 연대를 표하는 메모, 꽃, 인형, 촛불이 채웠고, 다른 공간에서는 그 만큼 이민자, 난민에 대한 적대감도 더 노골적으로 표출되었다.

남은 자들의 삶은 재빨리 일상으로 복귀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날 이후 필자가 더 노골적인 인종 차별을 경험했거나, 내 신변에 더 위협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단기 체류 이방인으로서, 나는 항상 그 사회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변화를 덜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꽤 지난 지금은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의 충격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서로를 돕겠다고 나섰던 모습에 대한 놀라움, ‘위험해 보이는 타인’에 대한 논쟁의 기억만 희미하게 남는다. 도대체 나와 그 도시 사람들에게 그날의 기억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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