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과 탄핵의 의미

in #kr8 years ago (edited)

박근혜에 대한 탄핵이 결정되었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새로운 갈림길에 들어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희망 쪽에 한걸음 더 다가갔다고 봅니다.

애초 박근혜 정권은 '역사의 복수'로 탄생했다고 봅니다. 대한민국은 박정희 정권을 거치는 강제적인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아주 빠른 속도로 산업을 일으켰습니다. 이 과정에 박정희의 역할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는 강제적으로 사회의 역량을 뽑아내 경공업과 중공업 등 사회의 몇개 영역에 집중적으로 투입하였고, 그 결과는 (사회 다수의 엄청난 희생을 강요하면서) 다행스럽게도 성공적이었으며 80년대 경제 호황을 거치며 전국민이 산업화의 열매를 따 먹었습니다. 물론 이를 통해 빈부격차가 심해지긴 했지만 사회 전체의 경제적 역량이 상승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박정희는 부하의 총에 맞아죽었지만, 세뇌교육과 경제 발전 플랜의 성공으로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에게 박정희 때문에 먹고 산다는 '부채의식'을 남겨놓았습니다.

반면 그 강제적인 산업화의 댓가로 우리는 민주주의를 잃었습니다. 4.19 혁명 이후 87년까지 근 30여년을 산업화의 열매를 따기 위해 민주주의를 희생한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80년 광주민중항쟁의 희생과 87년 국민항쟁을 거치면서 민주주의를 회복하기는 했습니다만, 굉장히 불안한 민주주의였죠. 공화당에서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을 거쳐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세력이 나라를 통째로 거덜내는 IMF를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불과 1.6%의 차이로 패배를 할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어찌되었든 우리는 김대중과 노무현이라는 대통령을 통해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절차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이 들어섰습니다. 이명박은, 사실 사람들이 조금만 정신을 차렸다면 사기꾼에 거짓말장이이고 노련한 기회주의자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놈의 부동산이 사람들의 판단을 막았죠. 그가 대통령이 되면 천정부지로 올라간 부동산 값을 지켜줄 것 같았던 겁니다. 결국 이명박이 대통령이 된 것은 불로소득으로 만들어낸 부동산 소득을 잃고 싶지 않다는, 혹은 아직 아파트를 못 샀지만 자기도 아파트를 사면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욕심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봅니다. 사실 그 당시 정신 멀쩡한 30대 후반의 지인이 이명박을 지지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랬었습니다. 물론 당시 야권에 후보가 그에게 대적할만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도 큰 이유이긴 하지만, 이명박 지지율이 그렇게 높지만 않았어도 검찰로부터 그렇게 쉽게 면죄부를 받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그래서 4대강이 만들어지고 한식 세계화를 한다고 자원외교를 한다고 수십조의 돈이 빠져나가고... 그 결과를 사람들은 눈 앞에서 보면서도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이명박 시절에 국민들이 유일하게 잘 했던 것은 2008년 촛불 시위를 통해 이명박이 하고 싶었던 계획을 1년 정도 무산시켰다는 겁니다. 집권 초 1년이었으니 사실은 2-3년치 계획에 영향을 미쳤고, 이명박이 뭘 함부로 못하게 만들었죠. 이명박은 국가를 어떻게 요리해먹을지 철저하게 연구하고 청와대로 들어왔을테니, 만약 그 1년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정말 거덜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명박 정권이 끝나갈 때쯤에서야 이명박을 보며 '저 놈이 진짜 도둑이었나베' 하면서도 보수 정권의 지지율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번엔 부채의식과 '자존심'이 작동했습니다. 대선후보로 나선 '이정희'가 '다까끼 마사오'를 외치는 순간 박정희한테 가지고 있었던 부채의식이 불타오르기 시작한 겁니다. 박정희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 그 동안 기성세대가 만들어온 사회적 성과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 인식되면서 나이든 분들이 카톡으로 선거운동을 시작하는 계기가 됩니다. 그 결과는 50대, 60대 투표율이 80%를 넘는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대선 부정은 어느 정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만 여기서는 더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박정희 신화는 마치 국민 모두가 진 빚처럼 한국사회의 발목을 잡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박정희에 대한 부채의식이 어르신들을 투표장을 이끈 거지요. (그 계기를 만든 이정희와 통합진보당은 정치적 하수라는 걸 여실히 보여주었죠.)결국 우리는 민주주의를 억압하면서 손쉽게 산업화의 열매를 따먹은 댓가를 '박근혜'라는 독재자의 딸(Strongman's Daughter)로 갚은 겁니다. 말 그대로 '역사의 복수'를 당한 셈입니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말은 진리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4년 후, 그 선택의 결과가 광화문에서 탄핵을 외치는 20만명, 100만명, 200만명의 시민으로 나타났습니다. 박근혜의 정치적 자산은 아버지입니다. 아버지에 대한 세간의 비판을 풀어보겠다는 것이 박근혜의 정치적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박근혜가 그걸 거덜낸 겁니다. 오늘 그녀는 정치적으로 사망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결국 쫓겨날 겁니다. 더 이상 정치적으로 자신을 유지할 자산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바닥은 드러났고, 너무나 많은 증거들이 널려 있어서 발뼘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남은 것은 그녀가 얼마나 더 철저하게 망가진 모습을 보일지, 그 과정이 깔끔할지 지저분할지만 남은 상황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상황이 종료되면, 한국은 역사상 아버지와 딸이 대통령이 된 역사를 가지는 동시에, 독재정치를 한 아버지 대통령과 딸 대통령이 모두 비극적으로 대통령직을 마감하는 역사를 가지게 됩니다. 박정희에 이어 박근혜가 실패하는 순간 아마도 소수의 사람들을 빼놓고는 더 이상 박정희의 치적을 과도하게 포장하지 못할 겁니다. 박근혜가 쫒겨나는 순간, 국민들에 의해 쫒겨난 대통령 이승만을 '국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사라질 겁니다. 사실 한국사회는 박정희가 한국 사회를 일으켰다는, 산업화에 대한 정신적 빚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기회를 통해 '독재자'는 반드시 쫒아난다는 역사적 선례를 만들 것 같습니다.

마침내 우리가 역사에 진 빚을 한번에 털어낼 수 있는 기회가 온 겁니다. 그리고 그 기회는 아이러니하게도 독재자의 딸인 '박근혜'가 만들었습니다.한국 사회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내면서 역사에 진 빚을 풀 수 있는 기회, 그것이 박근혜 정권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풀 것은 풀고 갚을 것은 갚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우리 앞에 다가왔습니다. 60년간 한국 사회를 좀먹고 있던 낡은 세력을 일소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나아갈 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짧게는 3~4개월, 길게는 앞으로 1년! 대한민국의 50년을 좌우할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이것이 2016년 12월 9일 오늘 탄핵된 박근혜정권의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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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분석이네요. 잘 봤습니다.
이제는 박근혜 재임 중 벌어진 모든 것들에 대해 철저하고 깨끗하게 밝혀내야 합니다. 아울러 친일의 잔재까지도...상처가 크고 아프더라도 지금 도려내고 치료하지 못 한다면, 우리는 또 다시 미래에 더 큰 고통을 감수해야 할 것 입니다. '좋은 게 좋은 거다.', '그 정도 했으면 적당하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어디 있냐?' 는 말이 나오지 않기를 바랄 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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