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에게 무엇을 좋아하느냐 물으면

in #kr6 years ago

누군가 나에게 무엇을 좋아하느냐 물으면 음악이라고 말했다. 악기에 재능이 있거나 노래를 잘 불렀기 때문은 아니다. 이는 오히려 내 자신의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다. 타고난 성격이 소심한 탓에 여러 친구 사이에서 이야기 나누는 것이 싫었다. 그들이 싫은 것은 아니기에 한 명씩 따로 만나서는 이야기를 곧잘 했다만, 이상하게 많은 친구들 사이에 끼는 것은 싫었다. 무리에서 떨어진 나는 구석에서 이어폰을 꽂거나, 혼자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것이 버릇이 되어 어느새 취미가 되었고, 배워서 평생 음악을 하고 살 수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 생각했다.

문화콘텐츠학과라면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배울 수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대학에 왔지만, 이곳에서는 음악을 전혀 가르쳐주지 않았다. 혼자 음악통론이니, 화성학이니 공부하려 해 보았지만 혼자서는 아무래도 무리였다. 어찌할 도리가 없어 생각난 사람이 사촌 형이었다. 학부 1학년으로서는 부산대 음대 창설 이래 최초로, 자작곡 단독 공연을 한 사촌 형은 기억에 남는 말을 해주었다.

“기본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음이 흐르고 그게 또 동시에 어우러지는 거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음이 나오게 하는 것의 기본적인 힌트를 음악통론에서 얻을 수 있고, 동시에 어우러지게 하는 것의 기본적인 힌트를 화성학에서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그 길로 다시 음악통론과 화성학을 공부하니,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얼마 뒤, 악기하나 다룰 줄 모르는 채 컴퓨터로 음악 몇 곡을 작곡해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남들은 몇 시간이면 만들어내는 정도의 곡을 만드는데 3개월이 걸렸다. 나는 정말 소질이 없었고, 자신도 없었다. 이 쯤 되니 음악이 싫어졌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려다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잃은 것이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한동안 그렇게 음악을 듣지 않고 살았다. 일부러 ‘오늘부터 듣지 말아야지.’한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레 생긴 싫증은 그것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의지보다 강하게 나를 다스렸다. 헌데, 음악을 듣지 않고 무리에 섞이다보니 여러 사람 사이에서 이야기 나누는 것도 곧잘 하게 되었다. 자연스레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고, 음악이 아닌 다른 것에 행복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음악을 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자, 음악이 다시 좋아졌다.

‘프리즘’을 통해 빛을 분해하면 여러 색깔이 보인다. 여러 색깔이 모여서 빛이 되고, 빛으로 비롯된 대상의 색이 계속 변하며 우리는 눈으로 뭔가 알아차릴 수 있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각개 음이 모여서 화성이 되고, 그것이 변하며 음악을 만들어 낸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자신의 의지가 투영되거나 혹은 그렇지 않은, 모든 것들이 삶을 구성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의 합집합에서 우리는 기뻐하고, 노여워하며,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즐거워하기도 한다.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순간은 절대 어떤 단편적인 사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누군가 나에게 무엇을 좋아하느냐 물으면 음악이라고 말한다. 악기에 재능이 있거나 노래를 잘 불러서는 아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가 음악을 싫어하지 않아서라는 이분법적인 이유도 아니다. 단지 나는 음악을 듣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 좋다. 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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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하늘에서 나와 사람에게 깃든 것이며 허공에서 나와 자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사람으로 하여금 느껴 움직이게 하고 혈맥을 뛰게 하며 정신을 흘러 통하게 한다. ... 악학궤범 서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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