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

in #kr6 years ago

초등학교 4학년부터였다. 3살 터울의 동생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어머니는 일터에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집에 없다는 것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흡사 '자유민주주의의 도래'와도 같은 혁명이었다. 정해진 숙제와 학습지만 끝내면 눈치 볼 필요 없이 마음대로 게임을 해도 되었고, 성장기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금지되었던 과자를 마음껏 섭취해도 되었으며, 심지어는 동생과 함께 온 집안을 쿵쾅거리며 뛰어다녀도 괜찮았기 때문이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어린 자식들을 두고 일터로 떠나는 것이 미안했던 어머니의 배려로, 항상 주방에는 맛있는 음식이 즉시 섭취가 가능한 형태로 존재했다. 그 중 하나가 카레인데, 많을 때는 거의 일주일 내내, 적어도 2주에 한번은 카레가 있었다. 그렇게 먹어도 질리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로 우리 형제는 카레를 좋아했다. 큰 사발 가득 밥을 퍼서 카레를 듬뿍 얹은 다음 TV를 보며 배가 불러 숨쉬기 힘들 때까지 카레를 퍼먹고, 그대로 누워서 계속 TV를 보는 것이 삶의 낙이었다.

그렇게 자유롭던 삶이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에 들어가며 달라졌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꼼짝없이 학교에 붙들려 있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내 삶은 통제되어있었다. 당연히 카레와도 멀어지게 되었는데, 가끔 급식으로 카레가 나오는 날이면 다른 반찬은 하나도 받지 않은 채 급식 판의 모든 공간에 카레와 밥만 채워 먹기도 했다. 고교 시절의 나는 그렇게 살았다.

시간이 흐르고, 나는 자연스레 대학에 진학했다. 입학하고 한 달 쯤 지난 무렵, 동기들과 밥을 먹으러 갈 때였다. 여느 날처럼 '여긴 왜 밥 먹을 곳이 마땅치 않냐.'며 학교 앞을 배회하던 중, 자그마한 카레 전문점 'ひそひそ 도란'을 발견했다. 들어가 보니 카레와 밥이 무제한 리필이 가능했다. '아니 이런 곳이 있었다니….' 한껏 기대감에 부풀어 '치킨카레'를 시켰고, 카레가 나왔다. 건더기가 없이 정말 카레만 있었는데, 그건 푹 삶아서 재료가 다 녹아서 그렇다고 했다.

그 끈적하고 촉촉하며, 달콤, 쌉싸름한 맛은 결국 나로 하여금 밥과 카레를 3번씩 리필하게 만들었다. 대학교에 올라와서 가장 만족스러운 식사였으며, 앞으로 밥 먹을 곳이 생겼다는 안도감마저 들게 했다. 접시를 다 비우니 너무 배가 불러서 호흡이 힘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동생과 함께 양껏 카레를 먹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행복한 기억이지만 나는 씁쓸한 조금 기분이 들었는데, 그건 지난 3년간 동생과 쌓은 추억이 '전무'하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형이라고는 딱 하나 있는데….' 그 날 처음으로 동생에게 안부를 물었다.

싸운 것도, 삐진 것도 아닌, 시간으로 멀어진 마음의 간극을 좁히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 후 'ひそひそ 도란'에 가면 동생 생각이 들어서 동생에게 메시지를 보내봤지만,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성적이 낮은 동생이 걱정이 된 나머지 '죽고 싶지 않다면, 공부 열심히 해라.'는 협박성 메시지로 항상 대화의 끝을 맺었는데, 그 말은 들은 동생은 기분이 나빴을 것이다. 동생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그래도, 그걸 알지만 그래도, 참 별 수 없었다.

몇 개월 뒤, 'ひそひそ 도란'은 영문도 모르게 망했고, 나는 아직까지도 동생과 친해지지 못했다. 정말 아쉽지만, 뭐 어쩌겠는가. 나는 참 자주 갔는데도 망했고, 다시 친해질 마음으로 연락을 해도 시원치 않았다. 세상 일 참 마음대로 되는 것 하나 없다는 것이 새삼 느껴지지만, 푸념을 해도 소용없는 짓이다. 그래도, 그걸 알지만 그래도, 마음속에 아직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동생도 가끔 그 시절을 그리워하지 않을까?’라는 괜한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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