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하구

“저기 좌쌍마에 리조트 하나 세우면 죽이지 않겠냐?”

해가 질 때쯤이면 내가 자주 하는 말이었다. 눈앞엔 아름다운 한강 하구, 그 뒤로 넓은 평지와 산지가 펼쳐져있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 북한이다.

판문점을 제외하면 내가 있는 관측소가 가장 가까웠다. 적의 동태를 그토록 깨끗한 화질로 볼 수 있는 관측소는 별로 없다. 심지어 날씨가 좋으면 맨 눈으로도 보였다. 하는 일은 하루 종일 그들을 관찰하고 특이 동향을 보고하는 일, 유사시 아군 포병 화력을 유도하는 일이다. 명예로운 일이다. 복무 중에 귀순자도 한번 잡았으니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다. 내 인생 가장 자랑스럽게 여길만한 일이다. 그 시작만 빼놓으면.

정확히 기억한다. 2017년 6월 9일 금요일이었다. 조금만 더 버티면 주말이었고, 심지어 월요일은 보상휴가였다. 3일의 꿀맛 같은 휴일을 어떻게 보낼지 상상하며 ‘룰루랄라’ 업무를 하고 있었다. 누군가 문을 열었고, 작전장교였다. 밖으로 나오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왜 전화를 하지 않고?’

뭔가 이상했다. 순순히 따라 나갔다. 대대장이 담배를 아무데서나 피우지 않고 흡연장에서 피우고 있다. 대대 참모들이 흡연장에 모여 앉아있다. 기분이 이상했다. 대대장은 담배 3대를 연달아 피웠다.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대장이 입을 열었다.

“인사야, OP 좀 갔다와라.”

왜 내가 가야하는지 생각했다.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지만 우선 대답은 해야 했다.

“예, 알겠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기존 OP장이 문제를 일으켜 보직해임 되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지금 바로 가라고 했다. 내 인생에 그렇게 급격한 삶의 변화는 다신 없을 것이다. 낯익은 얼굴들과 짧게 작별인사를 하고, 숙소에 들러 간단히 짐을 꾸리고 바로 관측소로 떠났다.

관측소에 도착해보니 사방엔 풀이요, 앞엔 강이요, 그 앞엔 북한이었다. 그리고 옆엔 나를 노려보는 대원들. 막막했다. 얼마나 별나면 지휘관을 보직해임 시켰을까….

“최전방 지휘는 처음이라 너희 도움이 많이 필요하다. 잘 부탁한다. 잘해보자.”

먹히지 않았다. 특히 불성실했다. 지시를 해도 들을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도 개선할 의지가 없었다. 모두가 그렇게 행동하니 처벌하게 되면 임무수행이 불가했다.

처음엔 그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도통 이해할 수가 없어서 억지로 면담을 하다가 의외로 속 이야기를 하는 대원을 만났다. 알고 보니 그들도 막막했던 것이다. 그곳엔 TV도, PX도, 하다못해 연병장도 없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떠올랐다.

“이 밤, 그 날의, 반딧불을….”

관측 근무는 매우 지루하다. 가만히 쳐다보다가 특이사항이 보이면 캡쳐해서 전송하는 것이 전부다. 특이사항도 하루 이틀은 신기하지만 한 달 두 달 보다보면 별 것도 아닌 것처럼 기계적으로 캡쳐하게 된다. 그래서 노래를 틀어주었다. 가끔 신청곡도 받고.

아이유 노래를 정말 많이 들었다. 특히 해가 질 무렵 벙커에서 나와 해지는 전방을 바라보며 듣는 밤편지가 좋았다. 다들 좋아해서 많이 틀었다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턴가 강제로 아이유만 듣게 한 것 같기도 하다. 노래를 틀면 한마디씩 하게 되었고, 취향에 대해 이야기 하다보면 인생이 들리고 계급장이 사라지고 군복이 사라져 사람이 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서로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참을 떠들다 해가 질 무렵이면 꼭 밖에 나왔다.

“저기 좌쌍마에 리조트 하나 세우면 죽이지 않겠냐?”

이 말 앞엔 한강 하구와 노을과 우리가, 또 아이유의 밤편지가 흘렀다.